받아쓰기
존재와 존재 아닌 것을 비교한다는 것은 결국 무성한 말잔치로 끝나게 마련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무슨 뜻에서 '나는'이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까?
만약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의 본질을 아시며,
우리의 행복이 바로 그분 안에 있음을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복을 찾을 만하게 보이는 곳을 단 한 군데만 남겨 두셔도
우리는 그분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른 바 '나의 삶'이 즐겁게 느껴질 동안에는 그 삶을 하나님께 양도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의 삶'을 덜 즐겁게 만들고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된 행복의 원천을 빼앗는 것 외에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실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하든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처럼 섬기느냐 요한처럼 섬기느냐가 문제입니다.
정신적인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덜 극적이지만 더 흔히 겪을 수 있으며 더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정신적 고통은 감추려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더 괴롭습니다.
'마음이 찢어진다'는 말을 하기보다는 '이가 아프다'는 말을 하기가 더 쉬운 법입니다.
그러나 고통의 원인을 받아들이고 직시할 때, 갈등을 통해 성품이 강해지고 정화될 뿐 아니라
고통도 때가 되면 대개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설교를 들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9월18일 설교/내가 누구이기에 (0) | 2011.09.20 |
---|---|
9월11일 주일설교<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0) | 2011.09.13 |
박영선 목사님 설교 -그러나 결국 (0) | 2011.06.24 |
박영선 목사님 설교-하나님과의 브레이크 타임 (0) | 2011.06.24 |
박영선 목사님 가라사대 (0) | 2011.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