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의 일이다.
채 5시도 되지 않았는데 눈이 떠지면서 불현듯 성당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동네 5분 거리에 성당이 있는데 작년에 이사 오자마자 주일 미사를 드린 적이 있다.
성당의 느낌은 조용하다. (교회의 느낌은 시끄럽다. 이 극명한 대비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보통 성당의 새벽 미사는 6시다.
흥얼거리면서 화장까지 완벽하게 한 후 집을 나섰다. 快가 천지 사방에 꽉 차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다.
으으...이 충만함을 어떻게 감사해야 하지?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성당으로 갔는데...싸아하다.
정갈한 마당 한 구석에 있는 성모상. 그리고 굳게 닫힌 문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게시판을 보았더니....약간 게으른 티가 나는 가톨릭은 새벽마다 미사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월요일에는 6시 미사, 화요일에는 10시 미사 이런 식이었다.
마당에 벤치라도 있다면 앉아서 묵상기도라도 하겠는데 리브가를 데려오는 종을 기다리는 이삭처럼 땅바닥에 서서 중얼거릴 수는 없고....
고민하다가... 바로 앞 건물을 보니...평안교회라고 내가 맨날 일하러 가는 집의 할머니 권사님이 다니시는 바로 그 교회다.
권사님 말씀으로는 5시 반에 새벽 예배가 시작한다니 시간 상 늦긴 했지만 문을 열렸겠지 싶어 사뿐사뿐 몇 층인가 걸어올라갔다.
마침 예배가 끝났는지 약간 어두운 실내에는 열 사람 안팎의 신도들이 모여 통성기도도 하고 묵상기도도 하면서 찰랑찰랑
은혜를 채우고 있는 중이었다.
신축 예배당이어서인지 아늑하고 쾌적하고 느낌이 아주 좋았다.
가만 보니 저 앞줄에 우리 권사님이 열심히 기도하고 계신다.
눈을 감고 앉아있으려니 으악,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이고 하나님. 무엇으로 은혜를 갚아야 할지 좀 알려주시어욧!
快는 시간이 갈수록 농도가 짙어져서 기쁨이 꽉 차버렸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나 어떡해! (이 비명은 행복에 겨워서 하는 즐거움의 비명이다)
포근한 아버지 품에 안겨 시간을 누리고 있는데 옆에서 살짝 누군가 건드린다.
보니, 권사님이시다.
아니, 어떻게 아시고?
긴가민가 해서 가만 돌아와 다시 보니 기여~~
반가워하시는 기색이 역력하신, 충청도 사투리가 정겨운 우리 할머니 권사님.
집으로 돌아와 기도문을 다시 작성했다. 작년 11월 14일에 작성한 기도문을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
그 당시의 여러 소원들이 참 애처로웠군....
작가(ㅋㅋ)답게 한글파일로 작성하여 프린트해서 나의 책상 옆 벽에 붙여놓았다.
그 안에 적힌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날마다 충만하기를!
그리고 다시 오늘 새벽.
오늘은 맘 먹고 할머니 교회로 갔다.
단상의 목사님이 들어서는 나를 보시고 '누구일까'하는 표정이시다.
시편 말씀이 참 좋았다. 눈을 반짝거리면서 열심히 아멘하고 있는데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오늘은, 눈을 반짝이고 계시니 기운이 펄펄 나네요!
예배 후, 어두움 속에서 기도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으로 주님의 은혜에 보답할까.
하나님이 나에게 없어지기를 바라는 나쁜 습관 같은 것이 또 뭐가 있을까? 내, 오늘은 그것을 결단코 요절(!!ㅋㅋ)내리라.
밖에 나오니 비가 내린다.
먼저 나오신 한 분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우산을 나에게 건네주려고 해서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교회 나오면, 특히 새벽예배에 나오면 마음이 착해지는 것 같다. 착해지려고 노력한다는 말이징~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뛰는 법이 없는 나는 약간 빠른 걸음으로 비를 맞으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커피타임. 해피타임.
밥이 뜸이 드는 냄새를 맡으면서(그것은 평안의 냄새이다) 수첩을 꺼내 펼쳤다.
그러면서 떠오른 몇 가지가 있어서 지금 고르는 중이다. 살균 표백하려면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므로 신중하게.
FM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이 오늘 따라 더욱 아름답다.
아, 이 아침,
하나님, 감사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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