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에서 펌글.... 청정근이라는 분-목사님인듯-이 기고하신 글이다.)

 

 

 

최근 충격적인 뉴스 기사 하나를 읽었다. 서울 어느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일 년 전에 죽었는데 성도들이 다른 담임을 모셔 오지 않은 채 일 년이 넘도록 영상으로 죽은 목사의 설교를 재생해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쓰면서도 나는 상당한 조심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진실이란 어느 지점에 가장 묵직한 구근을 품고 있는 것인지, 아무리 사실만을 간결하게 요약한다 해도 동시다발로 새끼를 치고 나가는 생각들을 내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그들을 비판하려거나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그들은 어쩌면 자기들이 처한 현실이 충분히 아프고 슬픈 상태일 테니까. 따라서 내 얘기는 그저 그 기사를 대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들을 헤아려 보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우선 객관적인 사실 관계만 확인해 본다면 담임목사가 일 년 전에 사망했다는 것과 성도들이 그의 생전 설교를 영상으로 보는 것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은 특이함과 기이함이었다. '이런 일도 있구나!' 약간은 경이롭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잠간이었지만 <삼국유사>의 어느 기사가 연상되기도 했다. 사실 그 책에도 '기이(紀異)'라는 부제가 달린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때문에 떠오른 연상이겠지만 사실 거기에 실린 기이는 '기이하다'라고 할 때의 그 기이(奇異)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紀든 奇든 상관없이 異에 속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異는 범상하지 않은 것으로서 흥미롭고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異하다는 것은 이 세계의 새로운 단면과 진실을 보여 준다는 데 의미가 있으니까.

그로테스크했다고 해야 할까? 약간 오싹하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것은 간혹 내가 죽은 이의 염습을 위해 입회하곤 하던 장례식장의 지하실 같은 피치 못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난처하고 당황스러운 장소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나는 사실 그 교회가 어떤 구조를 가졌는지 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사에 따르면 예배가 시작되고 설교의 순서가 되면 안내자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하고서는 강대상이 있어야 할 전면 무대에 불이 꺼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스크린으로 죽은 목사님의 설교 영상이 재생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나는 어림짐작으로 이 교회를 하나의 극장처럼 생각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극장은 칠흑같이 어둡다. 오직 영상이 흐르는 전면만이 밝다. 좀 괴팍하게 표현해 보자면 영상이 흐르는 동안에는 살아 있는 모든 활동들을 멈추고 오직 영상만이 살아 있게 해야 한다. 말 그대로 동영상(動映像)이다. 하여 영화관은 나에게 총천연색 벽화가 그려진 무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천년의 세월을 무덤은 내내 고요하지만 벽면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색동옷을 입고 명절을 즐기고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고 먼 여행을 떠나고 결혼을 하고 전쟁을 하고 제사를 드린다. 장엄하고 신비로운 장면이다. 이 모든 일이 무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무덤 밖의 세상과 세상의 번잡하고 피곤한 일들을 생각할 때, 신비롭고 장엄하다.

수년 전 나는 중국의 명나라 시대에 조성된 어떤 황제의 무덤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무덤 속 공간은 상상외로 크고 넓고 높았다. 꽉 밀폐되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공간이 아니라 이렇게 텅 빈 공간이 널찍하게 들어 앉아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백옥으로 만든 황제의 관과 여러 황후와 비빈들의 관이 그 속에 안치되어 있었다. 황제의 평소 생활이 이어질 수 있도록 용도별 내실을 갖추어 놓았다지만 그곳은 그대로 존재해 온 텅 빈 시체의 방이었을 것이다. 그 무덤 속의 세월이 수백 년이다. 무덤 안에서 이 고요한 수백 년이 흐르는 동안 밖에서는 왕조가 바뀌고 나라가 망하고 아예 새로운 천지가 이루어졌다. 나는 그 세월이 끔찍했다. 그것은 또 언젠가 내가 삶을 마친 다음에도 내가 모르고 참여할 수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는 시간과 공간이 계속해서 이어져 가리란 엄연한 진실을 알면서 거기 부재의 자리에 살아 있는 내가 참여하고 입회하는 끔찍함이었다. 무덤 속을 구경한다는 것, 내가 나와 아이들과 가족들을 다 데리고 무덤 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아득하여 난망하였다. 이 아득함과 난망함은 그곳을 떠나서 다음 장소로 옮겨 간 다음에도,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다음에도, 어떤 씻지 못할 것을 묻히고 온 것처럼 내게서 종종 되살아나곤 했다.

미디어가 발달된 오늘날 죽은 이의 영상을 재생하여 본다는 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또 비록 죽지는 않았더라도 설교 영상을 틀어 놓고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흔하다. 이 경우 무대의 불을 끄는지 안 끄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도 그로테스크한 면이 아주 없진 않다. 그 그로테스크를 이루는 요소는 영상에 나오는 설교자의 현실 부재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그로테스크는 그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이다. 정확히 이 두 가지 요소가 괴기스러움의 내용을 이룬다. 그것은 마치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는 관객들 저마다의 욕망과 같다. 욕망이 거대한 극장을 짓고 거기에 모여들고 거기서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동영상을 상영한다. 1부 2부 3부, 어떤 경우에는 6부 7부까지 재생된다. 영화가 끝나고 객석에 불이 켜지면 관객들이 갑자기 되돌려진 현실에 주위가 낯설고 어색함을 느끼듯이, 죽은 이의 설교 영상이 끝나고 불이 켜지면 조금은 낯설고 당황스러운 어색함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이 점 대형 스크린 상에 나타났거나 아니면 방금 전 강대상에 실제로 나타났었거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순전한 내 생각이긴 하다.

나는 이 그로테스크함에서 슬픔을 느꼈다. 그것은 감동적이든 시시하든 한 편의 영화를 몰입해서 보고 난 후의 피곤함 같은 것이다. 영화를 보는 것도 내 삶의 일부분이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내 삶은 멈추었다가 영화가 끝나서야 비로소 이어진다. 이런 식의 삶이란 그것이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가능할 것도 아니지만 또 반드시 그것이어야만 할 필연은 없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욕망은 그것을 고집하게 하고, 가능하게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아니 되도록 이끈다. 이것이 슬픈 일이다. 혹은 영화의 내용과 질을 거론하겠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의 삶이다. 당신들에게 왜 그렇게들 하고 있느냐고 따져 묻는 게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데엔 할 수 밖엔 없는 또 그 특이함과 기이함만큼의 내력이 있었을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성도들은 죽은 담임목사를 굉장히 따르고 신뢰하고 존경했었던 모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일견 의롭고 충성스러운 이야기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요즘같이 뻔뻔하고 약삭빠른 시대에 이런 의리와 인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더러는 신학적인 이론들을 내세우며 이들을 몰아세우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까진 느끼지 못하겠다. 요컨대 이 이야기의 주제는 그런 곳에서 찾거나 그런 곳으로 몰아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그 때문에 그 담임목사가 자살로 생을 마쳤다느니, 자살은 자기 살인의 범죄이니 천국을 갈 수 없다느니, 혹은 그 반대로 자살도 하나의 병임으로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느니 하는, 여러 갈래의 논의들을 나는 다 하나같이 과녁을 벗어난 생각의 잔가지들로 여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 한 사람 목사의 죽음을 기념하고 있는 이 긴 장례의 방식이다. 거기엔 매우 슬프고 아픈 기억의 상처가 당사자에게 그렇듯이 타인의 참례를 불허하는 의도적인 배타성이 들어 있다. 그 내용이 원망이든 그리움이든 그 의도적인 배제가 이 상실을 현실로 유지시켜 나가는 방식의 핵심이다. 물론, 이 장례를 이어 가는 구성원들 간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욕망들 또한 집요하게 얽히고설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현실에 참얼굴을 쉽게 나타내 주는 그런 것일 리 없다. 깊은 상처와 그 슬픔은 대개 잘 깨닫지도 못하고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그들은 말했다고 한다. "질그릇은 깨어져도 보배는 여전하다"고. 참으로 슬프고 진지한 항변이다. 이 항변은 담임목사가 우울증을 앓아 왔고 공황장애가 심했고 게다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내연의 여성과의 관계도 있었다는 복잡한 개인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어서 또한 기이하고 경이롭다. 오히려 그가 그러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도덕의 단순 윤리를 뛰어넘는 진실성을 표현한다.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면 무슨 비밀 집단이나 사교(邪敎) 모임에서 느껴질 법한 맹목과 기이함이겠지만, 그것과는 또 다르다. 죽은 목사는 개인적인 야망을 가진 뒤틀린 카리스마의 축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는 자살하지도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앓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도들에 따르면 그는 오직 성경의 정확한 해설과 그에 따르는 정당한 이해를 가진 신앙인의 생활을 설교해 왔다는 것이다. 그의 목회는 교회가 자기 몸집을 위한 아무런 목적도 가지지 않고 오직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고 구원받는 그것에만 바쳐졌다고 한다. 그로 인한 반대와 위협도 받아 왔다고 한다. 현재의 예배 형태가 유지되는 가운데 그의 부재가 문제될 것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없지만 그가 전한 말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혹 어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분석해서 이런 저런 문제가 있노라고 부지런을 떨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 역시 과녁에서 튕겨져 나간 화살이다. 이 특이한 교회를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이들에게나 다른 이들에게나 도움이 되거나 유익할 것이 없다.

죽은 공명이 산 사마의를 능가한다고 해야 할까? 담임목사가 부재하면서 영상을 재생하는 방식으로 예배를 이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성도가 약 200명이나 늘었다고 기사는 보고한다. 성장과 부흥을 위한 아무런 프로그램과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교회는 현재 정형화된 목회 패러다임에선 매우 특이한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리더가 부재함에도 오히려 전보다 성도가 늘고 있다.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병증의 확산? 뒤틀린 영성에 대한 경도? 병들고 슬픈 사회심리학적인 상태의 반영? 뭐든 좋다. 그리고 아주 틀리지 않은 진단이라 여긴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죽은 김 목사님은 죽어서 오히려 자신이 비판했던 이 시대의 카리스마들과 같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 점이다. 그것은 그의 추구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그가 생전에 추구했던 목회의 방식과 교회의 의미이다. 그것이 엽기적인 후일담으로 사장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아마도 상당 부분 그의 목회가 나의 그것과 유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자살로 생을 마쳤거나, 그의 내면에 타인들은 알지 못할 자기 분열의 고통과 고뇌가 있었을지라도 나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여긴다. 그가 자신의 완벽함을 설교한 것도 아니고 또 그러한 내면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란 또 무슨 괴물일 것인가. 그가 스스로 쓰러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그가 전파한 복음이 정말 참된 생명의 복음이었다면, 이제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 스스로 교회의 길을 찾아내기 바란다. 무덤 속 현실(玄室)같은 슬픈 극장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장례를 끝내고 슬픔을 씻고 탈상(脫喪)하여 광장과 세상으로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제발 다른 이들은 그들의 선택을 기도하며 진득하게 기다려 지켜보기를. 내 보기에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죽음이란 슬픔도 아픔도 모른 채 춤추고 노래하는 벽화 속 세월이 우리들의 교회의 현실을 이룬 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진짜 슬픈 극장은 하나도 슬프지 않은 사랑의 순복음 같은 초대형 극장이 아닐까. 나에겐 그 욕망의 거대 극장과 거기서 상영되는 진지한 코미디들이 더 그로테스크하고 괴기스럽다. 아아, 철모르는 아이들이 노래 부르지 않는가.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
방망이로 두드리면 무엇이 될까
금 나와라 와라 뚝딱
은 나와라 와라 뚝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