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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사심방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3. 4. 9.

 

내 앞에는 꽃만 있다. 아름다울 것이 분명하다, 나의 앞길은.

나 조차 믿지 않는다. 하지만 믿을 것이다. 믿게 되겠지...

 

 

(작년 5월, 이천 부악문원 시절의 산책길에서)

 

오늘 이사심방을 받았다.

방문객은 부목사님, 전도사님, 구역장님.

나는 무엇인가 가득 채워져 그득한 냉장고를 여닫으며 흡족한 미소를 짓는데

손님들은 좀 껄그러운 표정이었다.

하긴.

낡고 더럽고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들어오면서부터 이상한 조짐을 느꼈을 것이다.

이거...쪽박 찬 모양인데 말씀 잘 전해야겠넹?

이렇게^^

천진스러울 정도로 단순한(기가 막히도록 좁아터진) 아파트에 들어서면서 혼돈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신 목사님.

내가 그토록 오래동안 교회 홈피에 나의 빈곤 상태를 중개방송 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설마 하셨던 모양이다.

어쨌든, 복에 복을 더해주시라는 복터지는 말씀을 전해주시고

나는 거의 십년만에 조율한 피아노 뚜껑을 열고 자랑스레(삑사리나는 음이 없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입어"와 "고요한 바다로"를 반주하면서 찬양을 드렸다.

 

다과의 시간.

와...

싱싱하고 커다란 바나나. 내가 어제 딸기 하우스에서 직접 딴 신선 그 자체인 딸기. 엊그제 내 생일에 아들 여친이 선물해준 치즈케이크, 울 남편의 생일 선물인 호두와 피스타치오.... 주스.... 그것이 다 누군가 나에게 선물한 협찬품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초코 머핀과 아몬드 머핀은 놓을 자리가 없어 꺼내지도 못했다는.... ㅋㅋ

 

심방이 끝나니 딱 점심시간이어서 심방 오신 VIP들께 여쭈었다.

점심은 선택하시오, 들.

1. 회

2. 갈비나 고기

3. 오리

4. 추어탕

 

차를 탈 때의 목적지는 횟집이었는데 바퀴가 굴러가면서 목사님이 마음을 바꾸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추어탕집이 있다면 그리로 갑시당, 실은 오후에 또 심방이 있어요...

(그땐 그말을 순진하게 믿었지만 가만 생각하니 아무래도 사실과 다른 느낌이 온다.

내 주머니 형편을 고려하신 배려 차원이었을 것이라는...)

그래서 추어탕 집으로 갔다.

각자 입맛에 맞는 추어탕에 튀김, 만두까지 골고루 먹으면서 친교를 나누는데...

내용은...아무리 생각해도 그다지 신앙적이지는 않은... 그냥 아는 사람 만난 기분? 쫌 재밌는 사람이랑 간만에 식사하는 기분?

 

요즘 그지없이 편하고 참 많이 행복하다는 내 말을

심방오신 분들은 그다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들에게도 복은...역시... 뭔가 대박이 나는 것이지

쪽박 찬 것 같은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믿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불신앙(ㅋㅋ)이 이해되기는 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을 내가 무어라 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그들이 믿는 것은 대관절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은 떨칠 수 없었다.

 

그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기로 했다.

그들이 믿는 것을

나는 믿지 않기로 했다.

 

말은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말은 (믿음에서 우러나온)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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