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나는 9시 반에 시작하는 2부 예배 기도를 맡았다. 하여 9시 15분까지 교회가야 하는데 아드님이 열심을 내어 9시 전에 교회에 도착했다. 본당에 들어가보니 앉아있는 교인들은 단 한 사람도 없네?
단상 앞에는 성만찬 준비가 다 되어있고(하얀 보자기로 덮어놓은) 찬양을 인도하기 위한 몇 사람이 기타줄을 고른다거나 드럼을 쳐본다거나 마이크를 조정하고 있었다.
15분이나 여유가 있기에 얌전히 묵상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서 주보를 펼치니 간지로 <해외선교헌금>봉투가 떡하니 있다.
남편이 내쪽으로 주보를 집어던졌다. (하여튼 공손하게 내려놓지는 않았다)
왕짜증난 얼굴이다.
내가 짐작한 이유 1. 성만찬.
(작년부터인가 성만찬 그릇이 바뀌었다. 빵은 천주교에서 주는 동전만한 아삭이과자로 바뀌었고 그것을 밥공기만한 공용 포도주잔에 살짝 담겄다가 먹는다. 앞에서 장로님이 그것을 교인들에게 주면 교인들이 손에 손을 거쳐서 뒤로뒤로 온다. 그 형식이 너무도 허술하여 도무지 예수님과 성찬식을 떠오르게 하지 못한다. 목사님이 아무리 귀한 말씀을 쉴새없이 낭독해주셔도 귓가에서 그냥 쏙 빠져나간다. 옛날에는 구멍이 뻥뻥 뚫린 동그란 통안에 가득 담긴 깜찍한 작은 유리잔에 포도주를 따라놓았고 엄지손가락만한 식빵을 수북하게 쌓아놓고 하나씩 집어 먹으면서 작은 유리잔의 포도주를 마셨다. 그땐 마음가짐이 달랐다. 성찬식의 형식이 바뀌어졌을 때 남편은 저게 뭐냐, 저게 무슨 성찬식이냐, 하고 투덜거렸다. 나도 속으로는 마땅치 않았지만 그, 가장 빠른 시간에 많은 교인이 할 수 있는 스피드를 엄숙과 경건과 바꾸어버린 교회의 처사가 정말 마땅치 않았지만 속으로 혀만 끌끌 찼다. 이러려면 대체 왜 성찬식을 하는 것이람. 이렇게 성찬식을 대충 때우면서 마음속으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떠올릴 수가 있을까????? 그래서 그 이후부터 그 기가막힌 성찬식을 하는 매월 첫주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겨버린 것이다. 꼴통 아들도 성찬식한다고 하면 더 예배당으로 안 들어오려고 한다. 어디서부터 문제일까???)
2. 간지속에 있던 해외선교헌금봉투.
마누라가 작년부터 미얀마 선교를 감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도 가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눈쌀을 찌푸린다. 일단 간지 속에 무슨 헌금봉투가 들어있기만 하면 그날 기분은 잡쳐버린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거의 모두 돈 뜯어가는 일로 치부하는 듯 보인다.(내가 보기에는) 나도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럴 때 마음가짐을 다시 하면서 선교에 대하여 생각도 해보고 무엇인가 자신의 것을 내서 선교를 같이한다는 의미도 줄 수 있으련만.
(나도 실은 주보 사이의 갖가지 명목의 헌금봉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거 그냥 교회 예산으로 다 해버리면 안되나? 교회에 오면 오로지 예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지 않는것이 좀 이상할 때도 있다. 어쩌면 너무 오래된 관행이어서 사람들은 그냥 넘어가는지도)
예배당에 앉아 가만히 앉아 남편의 얼굴을 살펴보니 그야말로 왕짜증이 난 모습이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쓰려왔다. 속이 상했다.
조금 있으면 예배에서 단상에 올라가 기도를 해야하는데 그만 '상한 심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남편이라면 좀 기분이 좋지 않아도(엄밀히 따지자면 대체 기분 나쁠 이유가 어디있단 말인가. 성찬식과 헌금봉투가 그렇게도 마음을 상하게 한단 말인가? 그런 것들을 좀 신앙적으로, 재해석할 마음의 여유는 일센티도 없는가봥) 조금 있으면 대중기도를 해야할 '그렇게도 사랑한다는' 마누라 마음이 편안하도록 속으로 좀 참고 있겠다!
결국. 기도잘하고 집으로 와서 다시 미얀마선교 워크샵 때문에 친구를 만나 다시 오후에 교회를 가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 어느때는 우리 서방님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스러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자신의 죄를 사함받고 주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칠십 몇년동안 자신의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대로 성질을 부리는 거지? 어느 땐 정말 남편 앉혀놓고 머리를 쥐어박고 싶어. 그리고 조목조목 따져들고 싶어. 당신 구원받은 거 맞아? 당신이 하는 생각과 행동이 마치 백데나리온 빚진 친구의 멱살을 잡는 그 사람과 뭐가 달라! 자기 주변의 사람들,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들 교우들 사랑하는 가족들을 정말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는 없는거야?????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
(생각해보니 친구에게 이런 말로 시작했다.
"주일 아침 교회에 와서 얼마나 감격스러워! 예배드리는 자리가 얼마나 귀해! 죽어마땅한 죄인이 구원받은 기쁨으로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워!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 아무것도 아닌 것들때문에 하나님과의 기쁨의 만남의 자리에서 짜증내고 있다니...." 더 많은 말을 했는데 지금은 잊어버렸다. 안타까움 반, 속상함 반이었을 것이다)
친구와 이런 말만 주고받았다. 그렇게 친구에게 말할 때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나님. 더욱 잘 대할 수 있도록 저를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집으로 가서 예전보다 더욱 잘 대해드렸다. 남편님은 그동안 내 속이 얼마나 썩었는지 1도 모르는 채 싱글벙글하고 있다. 그렇게 편안한 주일이 흘러갔다....
아이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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