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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예수님 실종사건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1. 11.

지난 5월부터 착실하게 다녔던 동네교회에서의 새벽예배를 어제부터 포기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의 이유는 대단히 불행하다. 말씀 중에 예수님이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

삼십분 정도의 말씀 중에서 예화는 4~5개나 되지만(그 목사님은 예화 전달에 설교 시간 2/3, 아니 3/4 는 할애하시고 계셨다)

목사님의 입에서 <예수>라는 단어는 일주일에 몇 번 거론되지 않는다. 뻥같지만 대단히 불행히도 이 말은 뻥이 아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목사님이 예를 드는 수많은 일화들은 (대부분)윤리 도덕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노력하고 조금 더 나를 바르게 세우라는 세상에서의 지당한 명언 격언으로 도배되어 있다. 

정말 나중에는 편지 한 장 써드리고 오고 싶었지만 객기인 것 같아서 지난 주 마지막 예배까지 시종 웃는 얼굴로 앉아 나발의 아내 이름이 뭐였지요, 하면 아비가일, 하고 혼자 대답해서 칭찬듣기만 했다. 

하나님, 제가 얌전히 입다물고 있었던 것 잘한 것인가요, 잘못한 것인가요....ㅠ.ㅠ

 

처음 다닐 때는 나의 은혜가 뻗쳐서(!) 목사님의 기괴한 말씀을 미처 캐치하지 못했다. 

그저 아침에 눈을 뜨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면서 감격했고 부지런히 일어나 새벽 바람을 가르며 교회로 향하는 발길이 나비처럼 가벼웠으며 교회에 앉아 정면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간이 끔찍할 정도로 좋았으며 잔잔히 부르는 찬송에 가슴이 마구잡이로 흔들렸으며 기뻤으며 행복했으며 충만했으며 은혜로웠기에.

목사님의 잔잔한 목소리도 마음에 들었고, 잠시 동안의 기도 시간에 흘러나오는 가스펠도 가사를 음미하면서 은혜의 도가니에서 살았다.

그렇고 그런 예화들이었고 들었던 예화들이 거반이었지만 폭풍이 지나가 얌전해진(^^)내 마음속으로 얌전하게 스며들었고 나는 그냥 그 예화가주는 의미를 예수님 쪽으로 살짝 돌려서 나름 윤색하여 들었기로 그것 또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서 천편일률적인 예화나열식 설교에 그만... 귀를 살짝 닫아버리고 말았다.

예수, 라는 구세주이자 친구인 그 아름다운 이름이 목사님의 입에서 더 이상 나오기 힘들것이라는 판단은 9월이 지나면서부터였다. 그래도 미진한 마음으로 실낱같은 기대로 열심히 교회문턱을 드나들었지만.

그냥 가서 엄마품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교회에 앉아 그 좋은 분위기 속에서 누림을 경험하고만 오기에는 더 이상의 인내가 허락하지 않았기로 드디어 어제부터 과감하게 이전처럼 새벽에 일어나 인터넷 새벽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전향해 버렸다.

그러구러 (어제는 목회자처럼 월요일은 쉽니다를 고수하고^^) 오늘 새벽부터 다시 노트북을 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시간 절약 엄청 되넹.

마음속의 두려움 하나. 그 좋으신(예수 입밖에 내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 세상에 그렇게 온화하고 점잖고 멋진 목사님도 드물것이다) 목사님은 자신의 어마무시한 과오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시는 것 같으니 이를 어떡한단 말인가!

 

그나저나

교회에서 행불처리된 예수님을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