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에 딴 운전면허를 갱신하라는 통지가 온지 꽤 오래되었다.
혹 적성검사 날짜가 지났나 싶어 신새벽에 운전면허증을 꺼내고 통지서를 뜯어보고 준비물인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사진들은, 작고 얇은 상자속에 뒤엉켜 있었다. 오래된 사진 수십 장과 함께 사진관에서 찍은 명함, 반명함 사진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중에는 사십년 전(허걱), 고등학교 졸업 직후 찍은 명함판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이 눈에 들어왔을 때, 나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나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아니 죽은 자처럼, 생명이 없어보였다.
분명 눈에 힘을 주고 입매도 야무지게 올라가있고 꽤나 당당해보였지만 영혼은 없었다.
희망없이 살던 시절이었다. 꿈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이 혼돈 그 자체였다.
겨우 열아홉, 아니 만으로는 열여덟이 채 안되는 소녀였는데!
그 이후의 사진들을 몇 장 끄집어 내어 연도별로 늘어놓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시절에는, 저 시절에는, 저 시절에는...
서툰 화장을 한 퉁퉁한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남편의 티셔츠나 남편의 윈드재킷을 입고 어디든 가던 시절이었다. 옷은 거의 사입지 않았다. 신발이나 가방, 화장품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모든 결핍이 사라진 시절이었다. 밀레니엄 전까지 그러했다.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 전환점은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2000년 부터였다. 매일 출근길 전철에 시달리며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종로의 정독도서관에서 장편소설을 이어갔던, 행복한 시간이 떠오른다.
그 후에도 몇 개의 전환점은 있었다. 2004년, 그리고 2009년, 그리고 그리고 2014년. 그러고보니 5년 단위로군^^
참으로 은혜로운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참 많이 충만해졌고 깊어졌고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옛날 사진을 보며 새삼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하나님, 지금 현재를 나의 생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아무리 떠올려도 지금만큼 행복한 시절은 없었네요.
앞으로 제가 가끔 정신머리없이 주제파악 못하고 징징거려도 그것은 행복에 겨워 하는 투정 정도로 받아주세요.
늘 나를 감격시키는 나의 하나님이여, 이 평안을 누리게 하여주심을 감사드리며 이제 일어서야겠어요.
모처럼 일찍 일어난 울 남편을 위하여 따스한 밥상 올려드리고 집을 나서야겠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기똥찬 나의 하나님께 오늘도 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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