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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설, 2015

현장에서 붙잡힌 년의 생일^^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5. 2. 24.

오늘은 나의 (양력)생일.

결혼하기 전까지 집에서는 굳세게 나의 음력생일을 잘 챙겨주었으나 결혼 후에는 음력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한 신식 남편을 둔 탓에 달력에 시뻘건 똥그래미를 두겹 세겹 그려놓는 짓꺼리를 수십년 하다가 몇 년 전부터는 마음을 비워 양력으로 바꾸었다. 일년에 하루 아무 날짜나 골라 내 생일이라 한다해도 상관없지 않나 싶어.

열 살 이후로 가장 행복했던 생일은 뭐니뭐니해도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선상에서의 생일이었고 열 살 이후로 가장 불행했던 생일은 1980년 4월의 생일이었다. 가장, 이라는 말은 붙이기가 좀 그런 것이 앞으로 가장 행복할 생일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앞으로 가장 불행할 생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잖은가.

아무래도 상관없다.  

새벽, 눈을 뜨자마자 하나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나를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이성제로 감성충만한 기질을 주셔서 중구난방 좌충우돌 엉망진창 대책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하심도 (이제는)감사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게 해주시고 현장에서 붙잡힌 년도 내 자식이 분명하다고 도장 찍어주신 그 사랑과 은혜도 감사하고 꼴통남편(내 휴대폰에 저장된 문구)과 멋진아들(역시 내 휴대폰에 저장된 문구^^)을 주심도 감사하고 지금 현재 이순간을 충만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화를 주심도 감사하고...이렇게 줄줄이 읊다가 하도 많아 몽땅 뭉뚱그려 '리미트 무한대'로 감사드려요, 했다.

그러면서 언뜻 작년의 생일은 어떻게 보냈나 하고 나의 또다른 블로그를 뒤적였더니 엄허나!

(놀래서 긁어왔다. 그리하여 이곳에 붙여놓는다. 그때의 절망적인 상태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릿저릿하군)

 

세상은 붉은 색.

피처럼 끈적하고 비릿하고 섬뜩하고 공포스러우며 아주 가끔 아름답다.

그런 의미에서 나 또한 붉은 기운을 듬뿍 받는다.

어때, 세상과 닮지 않았나?

셀카 찍으며 눈물 흘릴 순 없기에 하는 수 없이 웃었다.

뭐야, 이쁘잖아!

내 생각에 두 살 이후의 웃음은 모두 인위적이야.

태어나면서부터 우는 게 인간이잖나.

 

에릭사티는 이렇게 일기에 썼던데...

"나는 이 낮고 낮은 땅에 왜 왔을까? 즐겁게 지내려고? 형벌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임무로? 휴식 삼아? 아니면 그냥 우연히? ...."

 

오늘 나는 이렇게 일기를 쓰려고.

"나는 아마 실수하기 위해 이 땅에 왔을거야.

즐겁게 지내고 싶었지만, 형벌을 받는 걸 거야.

무언가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임무는 영원히 알 수 없게 끝날 것이고

휴식 삼아 살고 싶었지만

죽을 때까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을꺼야..."

 

이렇게 가슴 무너지는 생일은 또 첨이넹...

 

그러면서도 꽃단장하고 퓨전한정식 먹으러 간다.

가서 원없이 웃겠지?

이것이 바로 인생이징~~

 

하나님, 감사해요. 럭비공처럼 바운드(미래)의 향방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던 일년 전의 생일과 오늘을 비교하니 정말 미칠 것 같네요.

어느 때 보면 나의 하나님은  꽤나 고약하시기도 하셔라. 작년에요, 어떻게 나를 저런 고통의 말을 내뱉게 하셨어요. 세상에!

"아마 나는 실수하기 위해 이 땅에 왔을거야. 즐겁게 지내고 싶었지만, 형벌을 받는 걸 거야........."

이렇게 자조적인 비명을 지르게 하시는 나의 하나님이 정말 미웠어염!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거 맞아? 하면서요. 이게 어떻게 나를 사랑하는거얌!, 하면서요.

현장에서 붙잡혔으니 변명할 말도 없었을 테고, 그저 하나님만 왕창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향해 눈을 흘기면서 하나님의 소갈딱지를 원망하면서 하나님의 얄짤없는 채찍에 아파하면서 날마다 눈물의 골짜기를 헤맸던 시간들을 떠올리니 아이고, 소름이 돋네요.

근데요...지금은 알아요. 하나님은 나의 실수를 일부러 획책(죄송)하셨고, 그것이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셨어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일들의 '합력하여 善을 이루는' 그 피날레를 완벽하게 보여주셨어요. 빼도박도 못할 정도로 퍼펙트한 계획!

그래서

감사해요, 나의 하나님이여.

실수연발의 삶조차도 (또)자동변환하여 복으로 기쁨으로 완전 개비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요.

야, 그만 징징대라, 내가 옆에 있는데 아직도 모르냐, 하시면서 나를 보고 잔잔히 미소지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요.

 

그래서 무엇이 나에게 이익이 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무엇이 나에게 변화가 왔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무엇이 보태졌다는 것도 아닌데 작년의 어느 날, 단 한순간에 변화시키주신, 완벽하게 '개안'을 경험하게 하여주신 나의 하나님을,

진심으로 해피한 버스데이의 아침을 맞이하면서 새삼 감사드려요.

케이크처럼 달콤하고 맛난 아침의 말씀(서영훈목사님의 갈라디아서 강해)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일선물이죠?

커피가 더 식기전에 마저 마시고

(이제야 겨우 일어나서 머리감겨달라고 칭얼거리는 우리 꼴통남편님 머리를 감겨드렸어요.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안하는 저 꼴통 좀 어떻게 해주세요) 스프를 끓여야겠어요. 냠냠 마시께따....

진작부터 맛나게 끓여놓은 미역국은? 물론 남편님이 드실 아침이죠^^ 

 

황홀한 생일을 맞이하게 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이렇게 대강이나마 감사인사올렸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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