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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설, 2015

월요일의 감사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5. 2. 23.

이토록 아름답고 고요하며 사랑스러운 월요일 아침이어요. 나의 하나님도 이 아침을 누리고 계시는지?

어제, 밤드리 노닐다가 늦게 자리에 드는 바람에 오늘 아침은 다섯 시 기상이 조금 늦추어 졌네요. 눈은 떴으나 약간은 피곤한, 그러나 그 피곤함조차도 마음의 평안을 더 누리게 하여주는 이상한 경험을 하면서 시체놀이 몇 십분인가 하다가 다시 살풋 잠이 들었는데요, 그 짧은 잠조차 잔잔한 바다처럼 평화로웠어요.

예전 같으면 내 자신을 엄청 갈구면서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아침에 다 마쳐야 하고, 이러면서 부산하게 시간을 보냈겠지만 요즘은 안그래요. 느림의 미학을 누리는 중이라고나 할까요?

아침이면 늘 하는 여러가지 작업들을 거의 다 땡치면서도 이거 월요일부터 이렇게 게으르다닛, 하면서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게 된 것도 분명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자유!

 

오늘은 제일 먼저 쌀을 씻었어요. 그 다음은 김칫국을 끓였네요. 북어채를 넣어 더 시원한 맛이 나더군요. 갈비찜을 덥히고, 여기저기 있는 김장김치를 한 통으로 정리했어요.  아, 그 재미라니! 그것이 살림살이의 재미인가 봐요. 세상에, 결혼 생활 삼십 몇년을 훌쩍 넘은 지금에야 느끼는 재미라니. 다른 아내들은 지쳐도 부엌 근처에 가기도 싫다는 나이에.

평생 그 재미를 모르고 살 뻔 했는데 이곳에 이사온 이후부터 하나님이 가르쳐주셔서 감사해요. 살림하는 재미가 그렇게 쏠쏠한지 정말 몰랐답니다. 여전히 깨끗한 가스렌지를 보고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하나님, 집안을 쓸고 닦으면서 나의 주인되시는 예수님께도 감사를 왕창 올려드렸어요. 재개발이 확정되었다고 플랭카드가 나붙은 낡고 허름한 11평 아파트에서 월세를 살면서도 이렇게 완벽한 행복을 느끼게 하여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나의 하나님이여!

근데 아까 보니

방천정의 곰팡이를 가리느라 이전에 방문요양을 했던 집에서 얻어와 대강 바른 천정의 벽지가 떨어져 한 팔 길이만큼이나 축 늘어져있네요? 저걸 다시 올려붙이려면 풀을 쑤어야하나? 하면서 아까 잠시 머리를 굴리다 말았아요. 남편이 알아서 하겠징 하면서요^^

오랜만에 샴푸도 했어요. 보일러가 오래 되어 머리를 데일만큼 뜨거운 물과 서서히 녹고 있는 재인폭포처럼 차가운 물이 자기 마음대로 번갈아 쏟아지는 바람에 앗뜨거와 앗차거를 몇 번씩 외쳐야 하지만 온수가 나오는 집에서 산다는 것이 어디에요?

세상의 어딘가에는 진흙탕 물이라도 먹으려고 물동이를 이고지고 십리길을 하염없이 걸어야하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데요. 하나님, 머리를 감을 때마다 감사를 드리는 것은 이십년도 넘은 일이긴 하지만 왜 그렇게 머리를 감을 때마다 아프리카의 어느 장면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요. 가슴 한 쪽이 싸아하니 아프면서 나는 이게 왠 복이람, 으로 끝나는 샴푸질을 오늘도 했네요.

머리를 말리면서 화장을 했어요.  볼륨을 살짝 줄여놓은(남편이 바로 코앞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바람에) 노트북에서 들려오는 서영훈 목사님의 갈라디아서 강해 1편을 들으면서 다시 울컥, 했어요.

참으로 감사해요, 나의 하나님이여.

생각해보니 매 순간마다 나의 믿음의 분량에 딱 맞는 목사님의 설교를 차례대로 듣게 해 주셔서 오늘까지 오게 되었군요.

이십 년 전 김진홍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시작으로 말이지요. 아, 설교의 순례는 길기도 하여라.  그 순례의 기간 동안 이른비 늦은비를 나의 작고 연약한 믿음에 내려주셔서 아주 조금씩이나마 나의 예수님 곁으로 다가가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해서 서영훈 목사님까지 왔네요.

지금은 결론 부분이어요. 그렇게 알고 있어요. 끝이 보이는 것 같아요. 갈바를 알지 못하고 지낸 세월이 너무 길기는 하지만 그 세월조차 모두 善으로 자동변환시켜 주셨으니 그 또한 감사드립니다.

 

아이고. 하나님과 수다떨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너무 행복해서 잠시 정지시키고 이곳으로 와서 이 감격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나이다.

화장, 이쁘게 되었어요. 머리도 아주 멋지게 컬이 만들어졌네요.  조금 있으면 집을 나서야 할 시간.

닷새나 푹 쉬었더니 돌보는 할머니 얼굴도 잊어버릴 지경이어요. 설마...그 어르신도 나를 잊으셨을까요? 하하.

하나님, 월요일 주신 것 감사해요.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나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하는 분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올데이로 있어야하는데 너무 피곤하지는 않게 해주시는거죠?

 

오늘, 나와 마주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와 위로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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