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 심보선이 쓴 시 중에 [종교에 관하여]라는 시가 있다.
다른 블로그를 방문한 누군가가 새벽에 이 시에 공감을 표시하고 갔다.
그래서 새삼스레 다시 읽어보았네.시인이 생각하는 종교는 어떤 것일까 궁금하면 읽어보세요^^)
종교에 관하여 -심보선
1
세기말을 지나 휘황한 봄이다
귀를 틀어막은 청소부가 실패한 비유들을 쓸어 담고 있는데
꽃가루들은 사방에서 속수무책으로 흩날린다
눈물을 획책하고 있는 저 미세한 말씀들, 지금은
알레르기가 종교를 능가하는 시대라서
파멸과 구원이 참으로 용이해졌다
2
소식이라도 한번 주지 그랬니
난 너무 외로워서 아무 병에라도 전염되었으면 하다가
어제는 느지막이 강변에 나가 놀다 들어왔다
니가 돌려보낸 편지봉투 속에 편지지처럼
잘게 찢긴 달빛들이 물결 위로 흐르고
밤하늘에 빼곡하게 뜬 별자리들
그 하나하나에 일일이 귀의하고 싶더라
너를 잊기 위해 나 그간 여러 번 개종하였다
3
아침에 가출한 탕아가
저녁밥 먹으려고 귀가하고 있다
방랑의 증거로 꽃가루를 온몸에 묻히고
사막에 나가면 눈이 너무 따끔거려요, 아버지
얘야, 거긴 사막이 아니라 그냥 공원 놀이터란다
어쨌든 내일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어요
필요한 것은 단단한 다짐이 아니라 신용카드 몇 장
4
꽃가루처럼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는 생의 신비여
십자가 위에서 으아, 기지개 피는 낙담한 신성이여
이제 내 몸엔 구석구석마다 가지각색의 영혼들이 깃들어 있다
다들 사소해서 다들 무고하다
--심보선 <종교에 관하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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