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는 사람이 아니요 벌레라
간단히 양치만 하고 산책을 나섰다.
장미넝쿨이 우거진 전원주택의 아름다운 담장을 지나고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간혹 풀섶에 들어서면 상큼한 아침이슬이 발목을 간지럽혔다. 아름다운 새벽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부지런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숲속에서 합창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발 앞에, 송충이가 꿈틀거리면서 느리게 기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작고 가느다란 송충이였다. 깜짝 놀란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송충이가 새삼스러웠지만 꿈틀거리면서 기어가는 모습은 징그러웠다. 아, 징그러워. 나도 모르게 비켜서는데 문득 가슴을 치는 어떤 것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요 벌레라.’
시편의 말씀이었다.
지금 기어가는 저 송충이는,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저 벌레는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편 22편 중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었다는 말씀의 근원이 이 말씀에 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도 그렇게 고통당했으니 나도 같이 고통당해야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기고 그토록 수치와 모욕을 당하셨는데 지금 내가 당하는 고통을 어떻게 예수님께 비할 수 있을까.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라는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 나오게 된 구절이 이곳에 있다고 들었다. 그 구절은 이창동에게 칸 영화제 상을 타게 한 ‘밀양’을 만들게 했다지? 진행될수록 가슴이 답답해졌던 영화, 밀양.
하나님이 나를 고통에서 살도록 내버려두셨기에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고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월 아침의 하늘은 티 없이 아름답고 맑고 고왔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아니요 벌레라. 마치 벌레처럼 힘겹게 땅을 기어 다니고 짓밟히고 아주 쉽게 죽임을 당하고 조롱과 멸시를 받고 비웃음을 꽃다발처럼 받는다...
나에게 사람으로서의 인격이 있기나 한 것일까? 남이 나를 존중할만한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거니와 하물며 내 스스로조차도 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니 시편 기자의 고백이 바로 나의 고백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대체 왜요, 하나님!
진중하신 하나님은 말이 없으셨다.
하나님의 묵묵부답의 응답을 어디 한두 번 겪었어야지.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응답이라고 누군가 한 말이 떠올라 그냥 걷기로 했다.
열다섯 강의 고린도 후서 강의를 다운받은 MP3를 들으면서 천천히 시골 길을 걸었다. 한 강의가 대략 한 시간 정도이므로 강의가 끝날 때까지 끝없이 산책길을 별 모양으로 거닐었다. 토요 바이블스터디 그룹에서도 고린도 후서를 공부하므로 복습하는 의미이기도 했고, 실은 그 강의는 2년 전, 들었던 강의를 다시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마음가짐에 따라 들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신비했다. 말씀의 끝부분에서 강의를 하신 목사님이 모인 교인들에게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면서 다시 고린도 후서 1장을 읽으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위로라는 단어에는 네모를 치고 환란이나 고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동그라미를 치게 하셨다.
목사님이 물었다.
위로는 몇 번 나옵니까? 환란이나 고난이라는 단어는 몇 번 나옵니까?
‘환란’이나 ‘고난’이라는 단어는 8번 나오지만 ‘위로’라는 단어는 10번 나옵니다. 여러분 다 세어보셨잖아요. 하나님의 위로가 더 많이 적혀 있습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더욱 크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새소리 들리는 호젓한 산책길을 나 홀로 걷다가 나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 지금의 나를, 자꾸 구부러지는 나의 등을 감싸주시고 축 처진 어깨를 다독여주시고 휘청거리는 내 발을 잡아주시면서, 그렇게 어루만지며 위로하는 그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나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감격이었다. 새벽부터 투정을 부렸던 나의 항의성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나는 길가의 돌에 걸터앉았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다시 두 손을 모았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환난이나 고난보다 크다는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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