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친은 지금 모하길래 이렇게 더딘가..... 하릴없이 앉아있는 나. 기도라도 하지 않구.... 약간 맹한 상태로 커피만^^)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징조인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한 순간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거기에 다 부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병들거나 사업에 실패하거나 자식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이 벌주시는가보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벌주시려면 그 정도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와 좌절과 아픔과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돌이키는데 사용되는 것이지 우리에 대한 형벌로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을 하나님의 형벌 혹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려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시는 구원의 손길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를 벌하시고 멸망시키려 하신다면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죄 투성이인데, 나는 오늘도 넘어지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하스가 순종과 믿음의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다. 우리가 순종할 줄 알고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을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를 안 지을줄 알고 약속하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그런 모든 연약함과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약속의 명확한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계십니다.
내가 중간에 너를 버릴 것이면, 내가 너를 멸망시키려고 했다면 내가 왜 예수를 보냈겠니.
내가 너를 지켜주지 않으려면, 너를 끝까지 사랑하지 않을 거라면 왜 예수를 보냈겠니.
왜 내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겠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허물과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엄준한 심판 앞에 피할 곳이 없었던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고통과 시련을 겪는다 하더라도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말씀으로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를 보내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가장 명확한 징조임을 깨닫고 확신합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 의지하고, 예수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사망을 이기시고 진정한 남은 자 되시는 거룩한 생명의 씨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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