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리스터키 성지순례

11. 파묵칼레 & 수상한 거품목욕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드디어 파묵칼레에 도착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휴양지답게 리조트 수준의 호텔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야자수와 갖가지 나무들로 장식되어 있는 정원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바와 술집, 오락장도 구비되어 있는 호텔은 처음이었다. 순례자들은 이전과 다른 숙소에 감탄했다. 바울 선생의 행적을 좀 비껴나서 우리들은 그냥 관광객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최고였다.

다락방 룸이었다. , 왜 그 룸의 정경을 찍어오지 못했을까. 두고두고 후회할 정도로 멋진 다락방이었다. 트윈 침대와 함께 구석에서는 아담한 사이즈의 침대까지 있었다. 창문은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뚫려 있었는데, 방의 불을 끄니 달이 보였다. 별도 보이고, 그리고 리조트에서 밝혀놓은 환상적인 조명빛도 언뜻언뜻 비치고...정말 낭만적인 방이었다.

나는 널찍하고 멋진 트윈 침대를 버려두고 비스듬한 경사면의 아늑하게 비치된 작은 침대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알프스의 하이디가 되고 싶었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동화를 읽으면서 늘 하이디가 잠을 자던 다락방을 꿈꿨다. 누워서 별빛을 바라볼 수 있는 다락방. 그런데 바로 이 방이 그런 곳이었던 것이다.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꾹 참아야했다. 그 소원도 언제인가는 이루어지겠지. 너무 우스운 소원이라 하나님이 거절하실지도 모르지만.

나는 트렁크를 뒤져 수영복을 찾아냈다.

파묵칼레에서 온천욕을 체험하려면 수영복을 준비하라고, 미리 나누어준 일정표 준비물에 적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장롱 어디엔가 숨어 있는 수영복을 찾느라 고생 좀 했다.

수영복을 입고 호텔 방에 구비되어 있는 폭신한 로브를 걸치고 지하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대책 없이 호화로운 한국의 대형 사우나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물은 정말 따스했다. 사람의 온도 쯤 되는 것이 아닐까. 몇 몇 순례자들과 함께 물속을 거닐었다. 배영을 잘하는 나이지만 풀장이라기보다는 목욕탕에 가까운 지하 온천탕에서 배영을 할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물장구를 치면서 놀거나 바닥에 발을 딛고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런데 사고가 났다. 물속 계단에 왼쪽 정강이를 부딪친 것이다. 상처는 꽤 깊었고 피가 났다. 금방 빨개지고 따끔거리는 바람에 신경이 쓰였다.

 

같이 온천욕을 하던 몇 사람의 순례자들과 난생 처음 <거품 목욕>이라는 것을 하기로 했다. 풀장 바로 옆에 그 신기한 마사지 샵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눈여겨보다가 모처럼 마사지도 받고 편하게 잠을 자자는 누군가의 제의에 모두 흔쾌히 동의했던 것이다. 나름 흥미 있기도 했다. 터키에서는 어떻게 마사지를 할까 하는 호기심도 동했겠지.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젊은 가이드를 내세워 마사지 가격을 흥정했다. 깎고 또 깎아서 5사람이 30달러씩 내고, 때를 밀고 거품 목욕을 하기로 했다.

거품 목욕이라는 희한한 체험을 하게 되었으니 기대도 컸다. 터키에서는 때를 밀고 거품 목욕하는 것이 아주 특색이 있다고 가이드도 말했으니 그야말로 기대 만땅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문화체험이지 않은가 말이다. 터키에서 30달러는 꽤 비싼 금액이었지만 돈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역시 관광지여서 손님이 많은 탓에 예약을 한 순례자들은 미지근한 온천에서 놀면서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지배인이 우리를 불렀다.

옷을 거의 벗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대형 룸이었다. 바닥은 뜨끈뜨끈하고 조명이 너무 낮아 서로를 분간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 음침한 홀이었다. 생각과는 다른 이상한 분위기에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하다...너무 조명이 어두운 것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홀 중앙에는 원형 대리석 침대 같은 것이 놓여 있고 사이드에도 대리석 계단 같은 것이 있는데 좀처럼 마사지 걸이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 두런거리면서 이상한 홀을 구경하는데 마침내 문이 열렸다. 그리고... 다섯 명의 터키 여자가 들어왔다.

화장을 독하게 한 날씬하고 이쁘고 젊다 못해 어려보이기까지 하는 터키 아가씨들이었다.

다섯 명의 어리버리한 한국 아줌마들을 가장자리의 대리석에 눕힌 아가씨들은 곧 작업을 시작했다.

내 파트너 아가씨는 끝내주는 미모를 자랑했다. 옷차림은 플레이보이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수영복 차림이었다. 손바닥만한 천으로 겨우 가린 아랫도리에 가는 끈으로 대강 가린 가슴은 반 이상 노출되어 있었다. 마사지 걸이 왜 그렇게 진한 화장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옷차림마저 여자인 내가 눈 돌리기도 힘들 정도니 점점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나는 제일 먼저 아가씨에게 나의 왼쪽 정강이의 상처를 가리켰다. 상처를 보여주고 이곳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아아. 아가씨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데 가벼운 미소 한 번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아가씨에게 계속 웃으면서 설명하는 형국이었다. 뭔가 좀 잘못된 것 같았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본색을.

아가씨는 웃음 한 번 짓지 않고 기계적인 손짓으로 나를 앉혀놓더니 머리 꼭대기에 미지근한 물을 부었다. 샴푸해주는 것인가 보다 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비누 샴푸를 대강 머리에 발라주더니 슬슬 머리를 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형 상 석회질이 많아서인지 모르지만 비누가 어찌나 억세던지 슬렁슬렁 감겨주는 머리카락이 뻣뻣해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아닌 거 같다... 이거 혹시 다시 감아야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나... 난 그토록 엉망인 때밀이는 처음이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겠지. 정말 세 살짜리 아이가 때를 밀어준다 해도 그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날씬하고 가느다란 팔목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일부러 그러는지 모르지만 힘을 하나도 주지 않고, 까실한 수건으로 슬슬 몸 전체를 그야말로 스쳐지나가듯 때를 밀기 시작했다.

화장도 지우지 않은 나의 얼굴을 구렁이 담 너머 가듯 스쳐지나가면서 세수와 마사지를 다 시켜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섯 명의 한국 아줌마들은 그냥 조용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꿈을 깨는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를 현혹했던 <거품 목욕>이 시작되었다.

아가씨는 수건에 그냥 거품을 잔뜩 내더니 온몸을 한 번 문질러 주고 물을 두 바가지 퍼서 거품을 씻어냈다 그리고는...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피니쉬!”

다섯 한국 아줌마들은 그냥 하하하 웃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할 따름. 거품 목욕에 필요한 튼실한 몸과 씩씩한 손목이 필요했던 우리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한없이 예쁘고 섹시하기만 했던 터키 아가씨들은 우리가 주 고객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째서 아가씨들의 화장이 그토록 진하고 요염하고 섹스어필했는지, 어째서 그렇게 향수 냄새 풍기면서 우리에게 다가왔지 그 이유를 뒤늦게야 깨달은 순례자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30달러짜리 세상 교훈이었다.

 

그런데 지배인과 뭔가 소곤거리던 아가씨들이 우리를 막고 섰다. 서비스로 얼굴에 팩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썰렁한 로비의 접이식 해변 의자에 다섯 명을 눕혔다. 대강 무엇인가 얼굴에 칠을 해주면서 원더풀한 이 팩 제품을 사라고 꼬드기는 것이었다. 물론 성분을 전혀 알 수 없는, 보나마나 불량물품임이 분명한 조악한 크림 통이었다.

지배인은 짧은 영어실력으로 아주 싸게 주겠다면서 50유로를 불렀다. 리라도 아니고 달러도 아니고 유로, 그것도 50유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더니 25유로로 반을 깎아주고 하면서 계속 스스로 가격을 내리더니 마지막으로 15달러.

세계 최고 품질의 한국 화장품을 애용하는 다섯 아줌마들의 귀에 들어갈 리 없는 상품 판매술이었다. 우리끼리 자그맣게 말했다. , 1달러라도 안 살 팩 제품을 누가 15달러에!

결국 단 하나의 팩도 팔지 못한 아가씨들은 이제는 로비에 누워서 팩이 마르기를 우리를 못 본 척 지나치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팩이 어느 정도 말라야 아가씨들이 지워주고 스킨, 로션이라도 발라주겠지 싶어 지루한 시간을 그냥 누워 있을 수밖에. 그렇게 팩이 꾸덕꾸덕 마르자 씻어준답시고 그 어여쁜 섹시 걸들은 코딱지만한 수건을 적셔서 대강 문질러 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말했다.

피니쉬!”

진짜 끝? 설마 하면서 얼굴을 만져보니 팩 찌꺼기가 얼굴 곳곳에 가득 있었다.

어이없는 문화체험을 했지만 소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른 순례자들이 살짝 잠이 든 동안, 눈을 말똥말똥 뜨고 누워 이상한 마사지 샵을 관찰하다가 정말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그 곳에 고용된 아가씨들은 분명 지압이나 마사지를 전혀 못할 것이다. 휴양소에서는 유흥가가 있지 않던가. 이곳은 다소 퇴폐적인 유흥가였던 것이다.

로비와 카운터를 오가는 아가씨들은 줄 잡아 예닐곱 명 정도였다. 간간이 유럽 여자 여행객도 하나 둘 눈에 띄었지만 거의 남자 손님들이 카운터로 가서 무엇인가 지배인과 긴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새삼 아리따운 터키 아가씨들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아슬아슬한 끈 브라와 분명 속옷을 입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엉덩이만 겨우 가린, 손수건보다도 더 작은 치마. 그런데 남자 손님들이 들어오니까 슬쩍 구석으로 물러나서 그 작은 천조각마저 배꼽 밑으로 더 내려버리는 것이었다.

누운 채 보이는 방이 두 개 있었는데 방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하나의 방은 대체로 평범해 보이는 실내 장식이었던 반면, 또 다른 방의 문이 열릴 때 얼핏 보니 선홍빛 붉은 조명이 방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거기에 들려오는 무드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음악까지.

남자 손님들은 대개 한 사람씩 방문했고, 카운터에서 모종의 거래가 끝나면 방을 배정받는 눈치였다. 남자 손님이 마침 내 눈에 정면으로 보이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곁에 지키고 있던 아가씨 둘이서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음흉한 눈빛을 교환하고 알지 못할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속 움츠리고 의미 있는 미소를 교환했다. 그 뜻은 먼 곳에서 이곳까지 찾아와 누워있는 나에게도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이런 뜻이었다. 네가 들어갈래? 내가 들어갈까?

지금 저렇게 철딱서니 없이 킥킥거리는 아가씨들은 먼 후일 자신들의 젊은 한 때를 어떻게 회상할지 모르겠다.

끈 브라에 속옷도 입지 않은 젊고 야한 화장을 한 터키 아가씨가, 웃음 한 번 흘리지 않았던 우리를 대할 때와는 정반대로, 교태를 부리면서 들어가는데, 조금 열린 문틈으로 붉은 등이 켜진 어둑한 방에 남자가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 보았다.

그 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상상하는 수밖에.

팩을 하면서 소설 같은 현실을 보았으니 나에게는 30달러가 아깝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남자들은 참 편하게 여자를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섹스를 돈으로 살 수 있는 남자들은 혼자 여행 보내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도.

또 한 편 여자의 일탈은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페미니스트는 절대 아니지만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어쨌든 붉은 등이 켜진 방으로 들어간 섹시 터키 아가씨는 우리가 소란스레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 눈앞에서 일어난 영화 같은, 소설 같은 시추에이션에 마음을 뺏긴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다. 온천이 나오는 곳이므로, 휴양지이므로 사람들은 일탈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고.

(같이 거품 목욕했던 순례자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와 살짝 귀엣말을 하셨다.

사우나비용은 내가 선물로 권사님 해드린 거로 해요. 뭔가 선물하고 싶었거든.”

, 나는 무엇 때문에 어찌하여 이런 고마운 사랑을 받는 것인지!)

 

이렇게 <체험, 삶의 현장>을 하고 나니 밤 열시가 지났다.

피곤해서 당장 눕고 싶었지만 엉터리 거품 목욕의 후유증으로 룸에서 다시 샤워를 해야 했고, 다시 샴푸를 해야 했다. 이상한 거품 목욕에 동참하지 않은 룸메이트 왕언니에게 사건사고 소식을 리얼하게 전해주면서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이중 목욕으로 비로소 개운해진 나는 늦은 밤 계단을 내려갔다. 꽃과 나무와 내가 좋아하는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는 리조트 건물 뒤 정원에서 천천히 담배를 피웠다. 밤하늘의 별은 어찌 그렇게 선명하게 반짝이던지! 싱그러운 밤공기는 어찌 그렇게

상큼하던지! 간만에 담배를 입에 문 나는 어찌 그렇게 행복하던지!

생각 같아서는 연달아 줄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간만의 흡연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바람에 아쉽지만 다시 계단을 올랐다.

그 넓고 쾌적한 트윈 침대를 버려두고 작고 아담한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편히 누워 경사진 천정으로 그대로 보이는, 별빛이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흘렀다.

지금 이 순간을 누리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아마 이번 여행에서 묵은 호텔 방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이었으리라. 가장 아름다운 밤이었으리라.

잠을 자는 시간조차도 아름다웠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