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행선지는 가죽공장. 터키에서의 두 번째 “문화 체험”이다.
햇볕이 쏟아지는 버스 창가에 앉아 헤드폰으로 무드음악을 들으면서 강정의 시집 <키스>를 읽다가 눈물이 핑, 돌았다.
시를 쓴다는 것, 시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문학은? 그리고 믿음은? 나는 왜 시를 읽으면서 감성이 깊어지고 어느 순간은 아늑해지고 어느 순간은 슬픔에 잠기고 어느 순간은 희열에 들뜰까. 그 아늑하고 슬프고 희열이 가득한 그 감성은 믿음에 있어서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일까.
많은 순간 하나님과 교회를 생각하면서 아늑함과 희열은 느꼈지만 아릿한 슬픔은 그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에 모든 감성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어디서나 즐거워하고 웃고 떠드는 순례자들을 바라보면서 난 좀 우울한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이 사람들과 나는 정말 섞이지 못하는 무엇인가 있는 것은 틀림없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까. 저 순례자들은 정말 친교적인 사람들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정정할까. 그냥 순수하게 그 상황을 흥겹게 받아들인다. 오래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교회의 다양한 기능 중 친교가 많이 강조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많은 교인들은 서로에 대하여 잘 알고 있고, 알고 싶어 하고, 그리고 삶의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나누고 있었다. 어느 때는 마치 세상에서의 친목회처럼 수다만으로 이루어진 대화를 엿들으면서 회의를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의 내면은 잘 나누어지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위선, 이중성, 하나님과 불화하는 성격이나 탐심, 그런 것들에 대한 진지한 토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에게도 나처럼 소울 메이트가 있어서 그 믿음의 동반자에게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너무 회의적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껏 보아온 거의 많은 교인들은 앞에서 말할 때와 뒤에서 말할 때가 확연히 달랐고, 그런 이중성을 그들은 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보였다.
교회에 와서도 기도하지 않으며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일상의 수다로 일관된 이야기를 ‘친교’라는 미명하에 늘어놓고 있다는 느낌? 나는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들의 너무도 세상적으로 보이는 그런 ‘친교’는 싫었다.
지금, 순례자들의 모습에서도 그런 세상적인 친교가 나에게는 보인다.
무엇을 좋아하고 이래서 좋았고 누가 어떻고 누구는 어떻게 되고. 장황한 이야기 끝에 후렴구처럼 따라붙는 ‘그럼 우리 열심히 기도 해야겠다’는 마무리는 마치 예수와 관계없는 연극을 본 후 주기도문으로 끝을 맺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런 이질적인 시각 때문에 나는 자진 왕따가 되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로서는 만족스러운 왕따이지만 때때로 그들과 따로 떨어져서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버스 안에서 순례자들이 성경 퀴즈도 하고 유머도 나누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쉽사리 그 속에 끼어들지 못하는, 아니 그 속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 하는 나를 나는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분 좋은 여행이라는 거. 때때로 혼자 있는 시간도 정말 좋고, 같이 어울릴 때도(그 시간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방에서도 참 적절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만약 나 혼자만의 여행이었다면 혼자만의 고독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가죽공장은 한적한 시골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규모가 장난 아니었다. 주로 외국인 쇼핑객들을 상대하는 곳인가 보다. 시설도 현대식으로 아주 잘 꾸며놓았다. 가죽 구두 핸드백 등과 함께 가죽 코트가 주를 이루는 상품들이었는데 양피여서 부드러웠고 품질과 디자인에서 손색이 없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우리 순례자들을 위해 패션쇼를 하는 것이었다. 조명까지 밝히면서 쭉쭉빵빵 터키 여자 모델과 멋진 남자 모텔이 번개처럼 옷을 갈아입고 패션쇼를 하는데 가이드가 마음에 드는 옷을 찍어놓으라고 한다.
관객처럼 테이블에 앉은 우리에게 차와 포도주를 갖다 주었다.
마음대로 선택해서 마실 수 있었는데 나는 물론 포도주를 골랐다. 가만히 보니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나는 개의치 않고 포도주를 음미했다. 맛도 괜찮았다. 간만에 몸속에 알코올이 들어가니 녹작지근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윽고 거대한 쇼핑매장을 둘러보았다.
멋스러운 디자인의 코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나도 흥미 있게 옷을 살펴보았다. 마음에 드는 옷이 두어 개 있었다.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그런 품질이라면 한국에서는 아마 서너 배 이상의 가격은 주어야 할 것이다. 통 큰 몇 순례자들은 좋은 품질의 코트를 몇 벌 구비하는 눈치였다.
나는 살짝 매장을 빠져 나왔다.
어딘가 으슥한 곳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서였지만 이내 포기했다. 대신 따사로운 햇볕 속에서 터키의 자연을 즐기기로 했다. 터키는 자연 경관 자체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매력적인 곳이다.
어디를 가도 순수한 자연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에게는 유적지의 유물이나 돌 탑 같은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을 보기 위하여 그토록 먼 나라에서 온다는 사실을 오히려 신기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조상들이 남긴 아름답고 장엄한 유물들을 후손들이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는 아쉬움.
주위는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이곳은 천국일까. 숲은 풍성한 진초록이었다. 계절을 모르겠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던 담벼락에 기대어 간간이 오가는 차를 구경하면서 길을 걸었다. 가슴 속으로 시골의 맑고 청량한 공기가 들어가니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이렇게 한없이 걸어가면 어디가 나올까. 나 홀로 떨어져서 길을 따라 무작정 걷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도시형 여자인 나 역시 가끔 이렇게 한적한 시골길의 매력에 빠져들 때도 있는 것이다.
쇼핑을 끝낸 순례자들이 버스에 오를 때까지 나는 나만의 시간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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