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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유배지에서 한 달

13- 잠시 집으로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2. 7. 13.

13- 잠시 집으로

 

어제 밤, 다시 간략하게 짐을 꾸려 집으로 갔다.

집이 아닌 집, 내가 이십 여일을 더 머물 수 있는 문원으로. 지난 이 주 동안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했던가. 마치 꿈을 꾼 것처럼 흘려보냈다. 나는 많은 시간 고요했고, 때로는 미친 듯이 누군가와 말을 했으며, 아무 생각 없이 오래 동안 길을 걸었다.

홀로 잠을 잤으며 홀로 음악을 들었고 홀로 방안을 거닐었고 홀로 책을 읽었다.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어느 때는 즐거웠고 행복했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그지없이 쓸쓸하기도 했다. 그토록 바랐던 홀로의 시간들은 생각처럼 충만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누리는 시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는 자유가 있었지만 그 자유를 완벽하게 누리지 못한 것이다.

그 시간, 나는 과연 혼자였던가? 보이는 사람이 없듯,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듯 마음속에도 그 누군가 보이지 않았나? 말을 건네지 않았나? 과연?

 

어쩔 수 없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날마다 홀로 있기를 그토록 바랐으면서도 막상 홀로 남게 되자 나는 당황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온종일 잠속에 빠져들기도 했고, 온종일 책을 읽기도 했고, 온종일 흐느끼면서 보낸 적도 있었다.

지난 이 주 동안 고독을 즐기지도 못했다. 몇 십 년 동안 부르짖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그것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어리석은 나를 더 이상 변명하지는 않으리.

 

마치 특별 휴가를 받은 병사처럼 일박이일 동안 다시 집으로 갔다.

바리바리 싣고 왔지만 별무소용이었던 물품들을 추려내어 쑤셔 박은 가방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집에서 노트북을 열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분신 같은 그것을 차마 놓고 갈 수 없기에 부속품까지 알뜰하게 챙겨 넣은 백을 들었더니 손목의 힘줄이 툭툭 불거질 정도로 무거웠다.

 

연휴를 맞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는 터미널 한 가운데 선 나는, 마치 길을 잃어버린 어린 양처럼 무연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몇 개 되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쾌활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누군가와 쉴 새 없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둘씩 셋씩 무리지어 손짓하고 뛰어가고 웃으며 서로의 어깨를 치는 모습이 정겨워보였다.

앉을 자리가 없는 나는 얌전히 서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즐겁니, 하고 묻고 싶었다. 무엇이 즐겁니, 하면서 따지고도 싶었다.

 터미널 모퉁이의 흡연코너에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었지만 무거운 가방과 커다란 백을 짊어지고 이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참았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따지듯 묻고 싶은 욕구를.

 

내가 사는 작은 소도시를 운행하는 버스가 도착하자 반가운 마음마저 든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빈 좌석이 많아 나는 옆 자리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창가에 기대어 앉았다. 터미널은 이제 창밖의 풍경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속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차가운 유리창에 기대자, 사람들과 나 사이에 투명하나 견고한 유리가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고 그제야 비로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버스는 연휴의 행락객들을 가득 실은 차량의 행렬에 끼어 느릿느릿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운 받은 마지막 설교를 듣기 위해 엠피쓰리를 꺼냈고, 이어폰을 귓속 깊숙이 꽂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전 같으면 마치 교회 안에 같이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던 설교가 너무도 아득하게, 멀리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자주 설교대목을 놓쳤다.

아차, 하면서 정신을 차려보면 말씀은 이미 한참 지난 후였다. 늘 머릿속에 잘 들어왔는데 대체 이럴 때도 있다니, 하면서 내가 더 놀랠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하려고 애를 써도 어느 틈엔가 나는 딴 생각을 하고 있게 되는 바람에 말씀을 계속 놓치는 상황이 번복되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설교 시간에 잡념이 많아서 반 정도 진행되고 있는 설교를 미처 다 듣지도 못하고 결국 꺼버렸다.

내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꿈틀거리고 있기에 설교조차 집중해서 듣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그곳에는 수십 년 동안 함께 한 가족이 있었고, 오래된 가구와 비루한 일상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