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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의 스토커

16일 - 120킬로를 달리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3.

16일 - 120 킬로를 달리다

 

 

5시. 어쩐지 일어나고 싶지 않아 알람을 한 시간 뒤로 미루고 누워있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아주 간략하게 기도하고 7시에 아침 산책을 나갔다. 휴대폰에 내장된 음악이 랜덤으로 들려온다. 두서없다.

노예들의 합창 뒤에 나는 나, 그 뒤에는 나홀로 길을 가네, 그 뒤에는 인샬라, 또 그 뒤에는 500마일, 또 그 뒤에는 어머님께, 하는 식으로 천방지축 음악을 들으니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기분이 널뛰듯 했다.

천변 스케치.

살가운 바람, 살랑이는 나뭇잎, 오리 네 마리, 낮게 날으는 잠자리 떼, 화석으로 남아있는 너의 발자국, 아득한 마음, 아침에 어울리지 않는 음악, 되돌아올 때 배가 되는 2.4 킬로미터거리의 슬픔, 짧게 물살을 가르는 중세의 기억... 우수수 떨어지는 치료되지 않는 칠월.

 

아침부터 미국 친구에게로부터 숨 가쁜 전화 두 통. 이 친구, 지금 마음의 열꽃이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었는지 날마다 나에게 경과보고 하는데 그 목소리가 평소보다 두 옥타브는 높고 행복에 겨워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하고 퉁명스레 맞받아치려다가 마음을 고치고 상냥하게 )

“뭐라고 했는데?”

“요즘 최고의 시간을 누리고 있단다. 사람들이 얼굴을 보고 무슨 좋은 일 있어요? 하고 묻는단다.”

 

최고의 시간이라... 내 생애 최고의 시간은 언제였을까? ... 한국과 미국에 떨어져서 전화 몇 통화 하면서 인생의 절정을 누리고 또 느끼고 있는 이 불륜(?)의 남녀를 보며 느끼는 것, 아이고, 사랑은 정말 위대하구나!

 

남이 듣기에는 닭살인 그 사연들을 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들어주는 미덕을 베풀고 교회로 갔다.

내 마음도 어쩐지 싱숭생숭해져서 옛날 시집 하나를 들고 전철 안에서 읽으면서 갔다.

 

너는 내 최초의 현주소/ 늙은 우편배달부가 두들기는/ 첫 번 째 집/ 시작 노트의 첫 장에/시의 첫 문장에/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예전에는 너무 유치해보여서 넘어가지 않았던 시들이 줄줄 잘도 넘어간다.

시집의 시도 거의 사랑으로 도배되어 있다. 아, 오늘 전체 필은 사랑인가보다.

 

교회 지하 기도실에 들어가 십자가 불을 켜고(여섯 개의 스위치 중 오른쪽 두 번 째 스위치가 십자가 후광을 비추는 불 스위치다) 커피 한 잔을 홀짝 거리면서 워밍업. 이후 50분 동안은 지하 기도실에서 다시 40분은 공부를 하는 청년교회 예배당에서 홀로 보냈다.

아아, 그 장소에서의 그 시간들!

눈을 감으면 십자가가 보이고 눈을 떠도 십자가가 보였다. 망막 속에서 뭔가 희부윰한 불빛, 어느 순간에는 또렷해지고 또 어느 순간에는 진청록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이 뭔지 모르지만 나는 집중하고 있다.

연약한 내 영혼 통하여 일하소서, 주님 나라와 그 뜻을 위하여.

오, 주여 나를 이끄소서.

엊그제 은혜 받은 가스펠이 자꾸 맴돈다.

 

어두운 청년교회 예배당은 더욱 좋았다. 아무도 없고 에어컨은 가동되지 않아 후끈했지만 이미 내 영혼도 후끈 달아오른 터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어두운 곳에서의 기도가 더욱 몰입이 잘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도 참 좋다. 물 한 잔 떠 놓고 한 모금씩 마시면서 나는 가만히 묵상했다. 이전처럼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감격에 겨웠다. 이곳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배의 감격이 늘 임하기를!

 

리더십에 대하여 담임 목사님이 강의 하시고 이어 부목사님(나에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이 금요일 속회를 위한 공부를 인도하심. 예배 속에 임하는 은혜, 가 제목이다.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배드리는 것이고,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말씀에는 아멘. 하지만, 하나님 나라(천국이라고 했다)에서는 예배가 전부이다, 라고 하신 말씀에는 아멘이 안 나왔다. 그곳에서도 한국교회의 예배 형식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오 마이 갓! 정말 그런지 또 어느 성경학자에게 여쭈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인도하는 속회는 어차피 방학이므로 교회까지 와서 공부를 할 이유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워 나왔었다. 하지만 다음 주부터는 양심의 가책 받지 않고 그냥 나오지 않을 결심이다.

 

오는 길에 믿음의 동역자인 친구에게 전화하여 번개. 이번에는 내가 콩국수 사준다고 꼬드겼다.

점심 먹으면서, 그리고 천변을 걸으면서 이야기, 또 이야기. 이 친구와는 밤새워 이야기만 하고 싶다. 예전에는 찜질방 부흥회(같이 사우나 하고 찜질방에 앉아 계속 믿음, 성경, 교회, 사람, 교제, 고통 등에 대하여 하나님의 관점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말하는 모든 대화를 말한다)도 자주 했지만 지금 나의 형편으로는 평안하게 찜질방에서 반나절을 뒹굴 여력은 없어서 몇 달째 못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두 시간의 대화가 감질나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온종일 있는 것보다 더 영양가 있는 것은 말해 무엇하리.

 

저녁식사 준비 잘 해놓고 집에 들어온 지 딱 한 시간 만에 다시 집을 나섰다. 수요예배와 성가연습을 하기 위하여 다시 교회에 가는 것이다. 대강의 거리로 치자면 교회까지 30킬로 정도 된다. 왕복 60킬로의 교회를 하루에 두 번 가는 일은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더 힘든 일은 나와 같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남편과 아들 때문에 발걸음이 그다지 가볍지만은 않다. 같이 놀던가, 아니면 같이 교회를 가던가, 이렇게 같이 행동을 하는 것이 가족의 화합을 위하여 바람직하겠지만 일하고 겨우 집에 온 아들이 저녁에 교회를 간다는 것과 몸이 불편한 남편이 밤에 교회를, 차도 없이 버스 전철을 갈아타고 간다는 것은 어렵다.  

 

예배당 앞자리에 앉아 예배 시작할 때까지 묵상.

눈을 감고 하나님을 생각했다. 하나님, 지금 제가 가고 있는 길이 맞습니까?

그렇게 물으면서도 내 마음이 어느 정도 확신이 오는 것은 실패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나에게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하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 이어졌다.

나의 소원에 대하여 잘 생각해 볼 것과 나에게 그 소원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곳에 밑줄 칠 문장이 보였다. 예수를 믿는다면 영적은사는 이미 한 가지 이상씩 주어졌다.

내가 그 일을 할 때 기쁨이 있는가?

은사(charisma-카리스마)는 기쁨(chara-카라)에서 나온다고.

내가 남들보다 잘 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라고!

 

결국 글쓰는 일과 가르치는 일을 떠나서는 안될 것을 절감했다.

며칠 전 교회 책 발간 팀에서 책 발간을 위한 막바지 작업을 위한 편집위원 소집이 있었다. 나는 말씀을 듣는 순간, 그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일이 많이 있지만 우선적으로 내가 잘하고, 그리고 그 일을 할 때 기쁨이 있는 일을 선별하여 축약하는 것이 필요했다.

십 몇 년 동안 속회에서 인도했던 일은 나에게 많은 유익과 간증거리를 주었지만 인도하는 일 이외의 심방이나 전화 연락, 그리고 지극한 사랑을 쏟고, 관심과 배려를 지속하는 일은 나에게 정말 힘들었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말씀 저하는 위주가 아니라 섬김과 친교위주로 포맷을 바꿀 것이라고 하니 더 이상 힘들어하지 말고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에게는 다가갈 때와 내려놓을 때가 있다. 나는-대다수의 교인들의 생각이 마찬가지겠지만 -교회에서 임명하는 일에 순종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로 생각했다. 나같이 자유분망한 사람도 막상 무엇인가 시킬 때 거부하는 것은 껄끄러웠고, 그것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데미지를 줄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부터는 그것에서도 자유롭고 싶었다. 나는 내년 속장 임명에서 빼달라고 건의할 것이다.

 

즐겁고도 재미있고도 은혜로운 성가연습이 한 시간.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신나게 성가연습을 했다. 그런 시간은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의 피곤이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느낌.

언제나 집까지 태워주는 일 년 후배 권사님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리가 휘청.

아, 그렇구나, 오늘 좀 피곤하긴 했나봐. 이럴 때 진한 포도주 한 잔이면 왔다일 텐데...

입맛을 다시면서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눈앞에서 술이 삼삼하게 지나갔다. 어제 몇 잔 술을 마셨지만 워낙 도수가 없는 술이라(술도 아닌 것이 술 인척 하는 듯한) 마음이 심심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만 마셔야지',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이 모든 욕망을 꾹꾹 누르고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