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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성지순례

17. 사데교회 그리고....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살짝살짝 비가 내리는 가운데 이즈밀에 도착해서 폴리캅 기념교회를 찾았다.

교회 내부까지 들어갈 수는 없게 되어 있어서 문 앞에서 단체 사진만 찍었다. 다른 도시처럼 촘촘히 이슬람 사원의 첨탑이 솟아 있는 이즈밀. 그러나 도시 한복판 빌딩 사이에 유일하게 십자가를 달고 지금도 당당하게 서있는 폴리캅 기념교회는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샤르디스로 가서, 사데 교회 터가 있는 그리스 시대의 아르테미스 신전 터를 찾았다.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어서 바닥이 촉촉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해가 짱짱한 날씨보다는 이렇게 비가 오는 듯 마는 듯한 흐린 날씨를 더 좋아한다. 약간의 멜랑콜리를 훈장처럼 달고 나는 걸었다.

사데 교회는 나에게 황홀함을 주었다.

크고 웅장한 검은 돌기둥의 위용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돌기둥의 색깔이었다. 거무죽죽한 돌의 색은 아무리해도 설명할 길이 없으므로 사진 한 장 덧붙이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사데 교회 터까지 걸어가는 길 같지 않은 길에는 푸릇푸릇한 풀이 가득했다. 알맞게 젖은 검은 땅과 더불어 더욱 푸르러 보였던 풀의 생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정말 단 한 시간의 자유 시간만 있어도 곳곳을 내 발로 밟으면서 촉감과 색감이 어우러지는 감격을 누렸을 텐데...

아르테미스 신전 터의 이오니아 식 돌기둥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는데,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대여섯 명의 터키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 중 젊은 터키 남자가 순례자들을 제치고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이었다.

가이드의 유려한 설명은 귓등으로 들으면서 멍하니 풍경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던 나는 순간 당황했다. 터키 말이므로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젊은 남자는 상냥하게 계속 무슨 말인가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답답하기만 했다. 설명을 듣던 순례자들이 그러한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남자도 우리 권사님 이쁜 것은 알아서 꼭 집었네?”

하긴. 순례자 들 중에서는 가장 어리다(?)고 할 수 있으니까.

터키 현지 가이드 하산이 얼른 달려와 통역을 해주었다. 그 젊은 남자는 군대에 입대하는데 가족과 친구들이 그를 위하여 같이 동행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렇게 가는 길에 유적지에 잠깐 들린 것이라고. 우리에게는 사데 교회 터라는 의미가 더 깊지만 그들에게는 아르테미스 신전 터라는 인식이 더 강할 것이다.

터키 남자 가족과 우리 순례자들은 모두 웃으며 악수도 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터키는 한국과 정서가 비슷한 것이 틀림없다. 아들이 입대한다고 온 가족이 함께 부대까지 동행하는 것을 보니 가족과의 끈끈한 정도 우리 못지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데 교회 터에서 나는 대표 기도를 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원래 교회 터를 찾으면 장로님들이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곤 했는데 갑자기 나를 지목하니 좀 놀라기는 했다. 한참 가만히 있다가, 채 정리되지 못한 기도를 더듬거리면서 올려드렸다. 나는 일단 멋지게 기도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기도했다.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순례자 들으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는 드려야 한다는 원칙!

하지만 제대로 기도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내 마음은 성경에 나오는 사데 교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늑하고 아름다운 경치와 나를 계속 홀리고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검은 돌기둥에 완전히 마음을 뺏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 허접한 마음으로 갑자기 하나님을 부르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가식적인 기도는 하기 싫었고, 내 마음은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왜 하필 나에게 기도를 시킨 것인지...

어떻게 했는지 모를 기도가 끝나고 내가 약간 볼멘소리로 항의했다. 다음에 기도 시키실 때는 꼭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사데 교회 터에서 버벅거리면서 기도한 기억은 한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하여 현지인 식당에 들렀다.

꽤 호화로운 레스토랑이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터키 빵, 스프, 그리고 커다란 삶은 고추와 야채샐러드. 터키 특유의 올리브 향이 짙게 배인 야채샐러드 역시 이제는 마치 김치처럼 익숙했다.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은 입맛도 슬슬 적응이 되는 것이리라.

다진 고기를 구운 메인 요리는 달콤했다.

터키는 아시아처럼 진한 향신료를 쓰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다시 문제가 생겼다. 기도할 때 스트레스를 받은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밀 듯 밀려오는 흡연의 욕구가 나를 자꾸 안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창 식사에 열중하는 순례자 틈에서 대강 포크질을 하던 나는 마침내 결심을 하고 일어섰다. 마치 화장실에라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는 뒤 테이블에서 웃으며 식사하는 나의 룸메이트 왕언니에게 가서 조그맣게 귓속말을 했다.

권사님. , 취미 생활 좀 하러 요 앞에 가는데요. 혹시라도 그 사이에 식사 끝내고 가게 되면 절대 저를 빠뜨리시면 안 됩니다!”

조금 장난스럽게 말했더니 왕언니가 깔깔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옆의 순례자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한다.

마치 모녀지간 같네. 너무 다정해 보여서.”

모녀지간 절대 아니에요.”

내가 웃으며 정정했다.

엄마가 아니라 예쁘고 젊은 우리 왕언니예요.”

마땅한 장소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펴보니 레스토랑 옆으로 제법 큰 주유소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레스토랑의 유리창에서 보이지 않게끔 사각지대를 잘 골라 앉았다. 마침 담배를 피우는 터키 남자 앞에 앉았다. 익스 큐즈 미. 살짝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터키 남자들은 순진한 면이 있다. 빤히 쳐다본다거나 하는 매너 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 쑥스러운 표정이다.

나는 퇴폐적인 느낌의 남자도 좋아하지만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면서 속만 태우는 얌전한 남자도 좋아한다. 터키 남자들은 (많은 여행객을 상대해서 닳을 대로 단 운전기사 빼고는) 다 순순해 보여서 좋았다.

 

다음 코스는 이동 거리가 비교적 짧았다. 간단하게 교회, 엄밀하게 말한다면 교회 터를 둘러보았는데 거의 많이 훼손되어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알라쉐히르에 있는 빌라델비아 기념교회 터에는 벽돌식 구조물이 약간 남아 있었다. 약간 남아있다고 해도 사실 굉장히 거대한 모습이었다. 그 앞에 서면 사람들이 마치 미니어처처럼 작게 보였다.

악히샤르의 두아디라 교회, 그리고 버가모의 버가모 교회터를 순례했다.

두아디라 교회 터 근처에서 리어카에 야채를 산더미처럼 놓고 파는 늙은 터키 농부와 사진도 찍었다. 하지만... 너무도 귀엽고 아름다운 어린 계집아이들이 관광객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구걸을 하는 모습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안쓰러웠다. 그악스럽게 달려들어 관광객을 괴롭히는 동남아시아의 거지들에 비하여 너무도 얌전한 구걸 행각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더 애처로웠다.

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버가모 교회에서는 우산을 쓰고 관람했다.

유적지를 돌아본다는 자체가 이미 과거로 회상하는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완전히 부서지고 무너진, 그야말로 제대로 된 구조물 하나 없는 버가모 교회는 시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공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폐허에 가까운 교회 터만 몇 군데 둘러 본데다가 요정처럼 어여쁜 소녀들의 구걸 행각이 자꾸 머릿속에서 요동을 치면서 계속 마음이 가라앉고 있었다. 순례를 끝내고 모든 순례자들이 버스에 올랐는데도 무슨 일인지 버스가 출발하지 않는다.

나는 창밖의, 길거리 풍경을 무연하게 바라보았다.

도심이어서인지 상점도 많고 행인도 많다. 그 중 밝게 웃으며 길을 걷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을 발견했다. 틴에이저 여학생들은 버스에 앉아 있는 동양인 순례자들을 보더니 모두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쾌활한 웃음소리와 맑고 높은 목소리들이 마치 노랫소리처럼 버스 안까지 들려왔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버스에서 내려 저토록 아름다운 젊은 영혼들과 어깨를 얼싸안고 사진 한 장 같이 찍고 싶었다. 하지만 사데 교회에서의 기도를 할 때부터 내 마음은 많이 우울해져 있었다. 나는 그녀들을 그냥 내 영혼 속으로 집어넣기로 했다.

선교사 가이드가 커다란 봉지를 가슴에 안고 버스에 올랐다.

버가모 교회 근처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빵집이 있는데 이곳을 들를 때마다 꼭 빵을 산다는 것이다. 선교사 가이드의 정성어린 마음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버스가 출발하지 않았구나. 우리는 따끈하고 포근한 빵을, 그 사랑의 빵을 감사하면서 먹었다. 맛은, 끝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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