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스로 이동하던 중 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터키에서도 구석진 그 곳에도 한국 식당이 있다니. 한국 사람이 살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의 한적한 외곽에서 볼 수 있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메뉴는 비빔밥. 참기름 대신 올리브유로 비빈 비빔밥을 먹는데 솔직하게 말한다면 무슨 맛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비빔밥 보다는 십여 년 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한국인 부부는 대체 무엇으로 향수를 달래는지 궁금했다. 그 부부의 인생 여정이 궁금했다. 그 부부를 터키 땅에서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앞으로 얼마나 오래 동안 그 부부는 터키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살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 떠나면 죽을 것 같은 고향도 떠나서 살면 사는 그곳이 고향이 되고, 떠나면 못 살 것 같은 한국도 떠나서 살면 그곳에 정이 들어 사는 사람도 많이 보았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거나 무엇인가 새롭게 살고 싶은 사람은 이사를 가거나 이민을 가는 것도 한 방법인 듯 싶다.
식당 앞의 거리는 한적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 풍경이다. 작은 밭에는 이름 모를 채소가 자라고 작은 상점이 있고, 상점 앞의 테이블에는 서너 명의 터키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터키에서는 남자들이 할 일이 별로 없는지 길에서 저렇게 헤매는 젊은 터키 남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저들의 꿈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온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비빔밥을 만들었을 식당 주인 부부의 꿈은 무엇일까...
파묵칼레의 감동이 채 사라지지 않은 채 에페스에 도착했다. 성경에 나오는 에베소의 현대 지명이다.
사도행전의 행은 물론 <Act>라는 영어에 맞게 살아 움직인 기록이지만, 행이 있기 전에는 머릿속의 생각이 먼저 움직였지 않았을까. 내가 더 집중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신앙심이다. 대체 어떤 신앙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그 신앙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과 같은 의미의 신앙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순교에까지 이르게 했을까...
버스에 앉아 노트북에 켜져 있는 한국 시간을 보니 오후 6시. 시차는 7시간... 이곳의 시간으로는 오전 11시이다...
에페소를 본격적으로 돌아보기 전, 근처의 ‘누가의 묘’에 잠시 들렀다.
나는 그 돌덩이들이 있는 작은 공간이 누가의 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틀림없이 후세의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다.
누가는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우상 숭배자들에게 순교 당했고 그 후 시신은 요한 사도가 사역했던 에베소로 운구 되었다고 한다. 순교라는 단어에 또 다시 어떤 위압감을 느낀다. 그저...나는 순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순교하지 않겠다는 마음뿐이다.
우습다. 순교를 각오해도 막상 순교해야 할 순간이 오면 뒤로 도망치는 사람이 태반일 텐데 나처럼 아예 순교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하나님 아시지요. 저는 순교할 만한 그런 믿음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순교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나의 믿음이 원 웨이는 아니라는 것을.
에페스에 도착했다.
유명한 유적지인 만큼 초입의 관광 상품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모습부터가 정말 장관이었다. 하지만...
막상 버스에서 내려 막 걸음을 딛는 순간, 나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알았다.
뱃속 사정이 좀 복잡해진 것이었다. 과민성 대장 증상이 있다가 없다가 하는 나로서는 정말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옛날부터 내 배는 정말 문제가 많았다.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국처럼 화장실이 잘 구비되어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화장실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순례자들은 가벼운 걸음으로 벌써 유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 그 거대한 에베소 유적지를 관람하려는 순간, 거의 두 시간이나 소요된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갑자기 배가 싸르르 해지면 대체 나는 어떡하라는 소린가. ‘두 시간’이라는 긴 소요 시간이 더욱 나를 압박했던 것일까. 그 두 시간동안 나는 내 뱃속이 어느 순간 요동을 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분명 돌만 가득 있을 유적지에 화장실이 있을 리도 없고.
그 곳은 정말 유명한 곳이므로 일본 단체 관광객들과 외국인들, 그리고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줄잡아 다섯 팀 정도는 모여서 산굽이를 돌면서 행진하는데 내가 어떻게 아픈 배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한참 혼자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이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가이드를 살짝 불러냈다.
뱃속이 심상치 않은데 혹시 어디 화장실은 없느냐, 만약 중간에 화장실이 없으면 나는 입구 상점 주변을 뒤져 화장실에 갔다가 순례자들이 두 시간동안 순례를 마칠 동안 이곳에서 기다리면 안 되겠느냐...
내 말을 들은 가이드는 나보다 더 얼굴이 하얘졌다.
나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는 눈치였다. 가이드의 말인즉슨 유적지에는 화장실은 물론 없고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버스에서 내린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산굽이를 넘어서 우리의 순례가 끝나는 지점에 버스가 대기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기도였다. 하나님,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나의 멍청한 배속을 좀 다스려주시기 원합니다. 제발이요.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 잘 듣겠습니다!
일단 하나님께 나의 사정을 일러바치고, 기도로 아양을 떨고 싸르르하는 배를 움켜쥐고 이미 저만큼 앞서 가는 순례자들을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 나의 뱃속이 요동칠지 알 수 없으므로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다. 그럴 때 진짜 믿음의 기도가 나오는 것 같다.
나는 믿기로 했다. 하나님은 곧 나의 배를 잘 고쳐주실 것이다. 나는 배가 아프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곧 괜찮아 질 것이다!
그러면서 한 발짝씩 걷는데 점점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나의 걸음은 점점 가벼워졌고, 어느 틈엔가 요란했던 배가 편해졌고, 어느 순간이 되자 배가 아팠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참, 신비한 경험이었다.
에페스 유적지는 거대했다.
당시 도시의 번영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화려한 신전들, 엄청난 규모의 공연장, 목욕탕, 거대한 도서관, 원형극장, 시장터, 온갖 조각상들이 길가의 돌멩이처럼 버려진 곳도 있었다.
돌이 가지런하게 깔린 너른 길을 걸었다. 지독하게 파란 하늘에 오월 같은 따뜻한 햇볕이 나의 어깨를, 뒷덜미를 포근하게 덥혀주었다.
순례자들 뒤를 따라 낮은 고갯길을 걷는데 멋진 젊은이와 마주쳤다. 연인들로 보이는 그들은 야트막한 돌벽에 기대어 파이와 주스로 야외 식사를 즐기는 중이었다.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아름다운 여자와 선한 눈매를 가진 젊은 남자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단 둘이! 걱정거리 하나 없어 보이는 다정한 연인들이 정말 보기 좋았다. 눈을 떼지 못하고 몇 걸음 걸어가다 기어이 뒤를 돌아 그들에게 다가갔다.
서툰 영어지만 겁낼 것은 없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니까 마음이 통할 것이다.
익스 큐즈 미, 로 나는 대화를 시작했다.
“참 보기 좋다. 잠깐 시간 좀 내 줄래?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니?”
여자가 보기 좋은 웃음을 지었다.
“터키.”
하하. 나도 웃었다. 나는 터키에서 풍요를 누리는 터키 젊은이를 처음 만난 것이다.
적어도 영어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는 지성적인 풍모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동안 내가 만난 터키 사람들은 식당에서 접시를 나르거나 관광지에서 손을 내미는 가난한 소녀들, 짐을 들어주는 호텔 직원이 거의 전부였으니까.
어디에서 왔느냐고 눈을 반짝이며 여자가 물었다.
“한국.”
“북쪽? 남쪽?”
“남쪽.”
그들의 지식창고에는 한국이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도 입력되어 있었구나.
나는 나의 고물 디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저기, 같이 사진 찍지 않을래? 너희들 연인들이니? 행복해 보이니 너무 보기 좋다. 너는 예쁘고 너는 핸섬하구나.”
“오, 픽쳐!”
나의 찬사를 듬뿍 받은 예쁜 연인들은 기분 좋은 미소를 보냈다. 오케이, 일단 그렇게 말한 여자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하는 그 제스처가 터키에서도 통하다니.
“오케이. But, How?”
대체 누가 사진을 찍어주느냐는 뜻이겠지. 내가 말했다.
“간단해. 남자, 너랑 한번 같이 찍고, 여자, 너랑 같이 찍고. 오케이?”
그들만의 오봇한 식사 시간을 방해하긴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터키 사람이라니 정말 멋지다. 너희 나라 정말 너무너무 아름답고, 멋지다. 너희들도 멋지고, 뷰우리풀!!!”
사진을 찍고 나서도 우리는 사이좋게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엉터리 영어로 말해도 다 알아들었고, 그들의 짧은 영어 역시 희한하게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맛!
한참 노닥거리다가 아차, 하면서 순례자들을 쫓아 뛰어갔다. 그들은 저만큼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백과사전 선교사 가이드는 자신이 열변을 토하는 것을 제대로 듣지 않고 늘 저만큼 뒤떨어져서 방관하는 나를 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무려나. 나는 당신의 달변을 들으려고 이곳까지 온 것은 아니니까.
너무 길어서 지루하기만 한 가이드의 장황한 설명을 듣는 척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만히 보니 사흘 전에 결혼했다는 터키 현지 가이드 하산이 멀뚱하게 혼자 앉아 있다. 다시 그에게 다가갔다.
기념으로 같이 사진 한 장 찍고 싶다고 하니까 심심하던 하산이 반색을 했다.
자기는 터키에서도 썩 괜찮은 남자라고 농담까지 하면서 말이다. 실은 그에게 팁을 주고 싶어 핑계거리를 만든 것이었지만.
가이드의 설명을 듣던 순례자들이 자꾸 우리에게 눈길을 돌리는데 그 중 한 순례자가 대열에서 빠져나와 나와 합류했다.
“나, 하산이랑 기념으로 사진 찍으려고 하는데 좀 찍어줘.”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다. 순례단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단 하나의 후배였으므로 반말이 가능했다. 그렇게 대강 사진을 한 장 찍고 슬그머니 5달러 지폐 한 장을 쥐어 주었다. 하산은 얼굴까지 붉히면서 사양을 한다.
나의 서툰 영어가 다시 실력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산. 너 며칠 전에 결혼했다면서? 아무튼 축하하고. 받기 싫으면 그럼 이 돈 너의 와이프 갖다 주면 되지! 선물이라고 말해.”
하산이 머리를 긁적이며 순진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터키 사람들은 그렇게 비슷한 웃음을 잘 짓는다. 그들의 국민성은 ‘순수’라고 말하고 싶다.
에페스의 유적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영화 세트장처럼 벽 한 면만 남아 있는데도 그 위용을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았다. 그 옛날의 도서관에서 누가 책을 읽었던 것일까. 책을 읽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경이롭다. 바울의 두란노 서원이 여기 어디쯤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곳의 의미가 더욱 각별해졌다. 더구나 성경 중에서 에베소서는 내가 가슴에 새긴 구절이 참 많은 곳이 아니던가.
노천 화장실도 재미있었다. 순례자들 모두 그 구멍(?)에 한 사람씩 자리를 잡고 앉아 용변 보는 실습까지 하니 모두 웃음바다였다.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정말 놀라웠다. 옛날 사람들은 화장실조차도 누리면서 살았구나. 저토록 찬란한 햇살을 받으면서 노천에서 용변을 보면서 그들은 또 무슨 철학을 논했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문명의 발달은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사색을 주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야외 화장실에 앉으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배가 아파 쩔쩔 맸던 것이 그제야 다시 떠올랐다. 흐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때까지 만약 배가 아팠다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용변을 볼 수 있었을까?
'그리스터키 성지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사데교회 그리고.... (0) | 2014.12.16 |
---|---|
16. 쿠사다시의 밤 (0) | 2014.12.16 |
14. 파묵칼레 (0) | 2014.12.16 |
13. 가죽공장에서의 문화체험 (0) | 2014.12.16 |
12. 히에라폴리스와 노천온천 (0) | 2014.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