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발릭 호텔에 도착했다.
터키에서의 마지막 숙소라고 한다. 오래된 호텔이라 시설이 열악하니 이해하시라는 가이드의 언질이 있어서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나는 홀딱 반할만큼 마음이 쏙 들었다. 바로 앞에 바다가 있다고 하는데 어두워서 바다를 볼 수 없었다. 해변의 호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곳인가. 오래된 느낌이 나는 저층 호텔이었는데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게다가 판타스틱!
나는 짐이 많다고 특별히 일층에 룸을 배정받았는데, 이 호텔 역시 아담한 발코니가 있었다! 일흔 살의 왕언니는 발코니가 있다는 사실을 나보다도 더 좋아한다.
“이제는 추운데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담배를 피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분명히 말하지만 이 감탄 섞인 환호성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살아하는 나의 룸메이트 왕언니의 말이다. 방에 딸린 흡연 코너의 존재에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는 그 천진함과 순수함에 나는 반해버렸다.
이번 여행의 식사는 순례 중간에 들르는 식당의 점심 빼고는 거의 호텔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거의 행복할 지경이었다. 한 접시 그득하게 갖다 주는 점심은 좀 부담되어서 결국 삼분의 일도 채 못 먹고 밀치기 일쑤였지만 아침과 저녁의 호텔 뷔페는 사정이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바게트처럼 딱딱한 빵 한 조각과 햄(터키에서는 베이컨이 메뉴에 없다)과 치즈, 어느 호텔에서나 빠짐없이 등장하는 삶은 계란, 약간의 스프만 있으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과일이나 야채는? 눈치껏 먹는 시늉만 했다.
순례자들은 과일을 듬뿍 넣은 요플레에 꿀을 넣어 먹는 맛을 즐기는데 나는 나이프로 치즈나 햄을 자르는데 여념이 없다. 순례자들은 더덕구이, 고추장, 김 같은 밑반찬을 테이블마다 돌리느라 여념이 없는데 나는 늘 괜찮다고 하니까 이제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한 일 년 동안은 이렇게 호텔을 전전하면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닐 기회가 나의 인생에 있을까, 하다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는 기도문으로 바꾸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쉴 새 없이 관광지나 유적지에 내려서 설명을 듣는 것이나 기이한 유적을 보고 놀라워한다거나 멋진 토속품을 보고 사고 싶어 견딜 수 없어하는 관광파는 아닌 것이다.
나는 단지 매일 삶을 꾸려가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고, 낯 선 곳에서 잠을 자고 싶은 것이다. 샤워 후 맨몸에 호텔에서 제공하는 로브만 걸치고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석양을 바라본다거나, 아주 얇은 속옷만 입고 호텔 방을 서성거리며 양주병을 꼴짝거린다거나, 그보다 더 진도를 나간다면 옷을 다 벗어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커튼을 젖히고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던지 하는 나만의 작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대낮에도 거리를 싸돌아다니지 않고 그냥 선탠 의자에 누워 책을 본다거나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거나 와인 한 잔 앞에 놓고 조용히 풍경을 바라본다거나 하는 아주 작은 ‘자유’를 누리는 것 말이다.
외국 관광지 현지에서 만난 멋진 외국 남자가 늦은 밤 술 한 병을 들고 내 룸을 노크하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저녁 식사 후 호텔에서 마련해준 별실에 모였다.
그동안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아이발릭 포럼>이었다. 난방이 되지 않는 별실은 좀 추었지만 모두 코트를 두르고 동그랗게 모여 앉으니 서로의 체온이 느껴져 정겨웠다. 열여덟 사람의 순례자들은 각각 자신의 느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고, 감동했다. 두 시간 이상 진행된 포럼에서 그들은 진솔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사람이 진솔하다는 것은 어디까지 속을 내비쳐야 그런 말을 듣는지 모르지만 그 시간만큼은 반 이상의 내면이 드러났다고 봐야겠다. 처해 있는 형편이나 상황이 많이 다른 사람들이지만 한 교회안의 지체라는 결속력이 제법 단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이 그렇게 꼬이지만 않았다면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들. 믿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규명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고 그리고 많은 부분 어린아이 같은 순수를 그대로 간직한(이 말은 절대 흉은 아니다) 사람들이라는 느낌이었다.
나에게는 평생 나를 괴롭히는 결점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을 기피하는 본능적인 습성이었다. 나는 실수를 잘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비수 같은 언행은 종종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나도 모르게 불쑥 내뱉고 그날 밤은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내 자신을 자책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어떤 불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하고 기어이 한 마디 하는 성정 때문에 타인은 물론이고 내 자신이 얼마나 나를 미워했던가.
그 모든 것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갖게 된 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은근히 마음을 졸인다. 겉모습이 너무 당당해서 내가 속으로 그렇게 떨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교회에서 저지른 실수 중 태반 이상이 말 실수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성경이 바로 잠언인데 잠언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경구가 ‘말조심’이다. 나의 양심을 자꾸 찌르니까 더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대목이기도 하겠지?
거의 매일 아침마다 기도의 끝은 이렇게 끝을 맺고는 했다. 입술에 손을 대고(마치 쉬잇 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의 입술을 주장하여 주셔서 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이 흘러야 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주께 열납되는 좋은 말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아이발릭 포럼은 나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좋은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또 한편 마음이 괴로웠다. 나의 마음은 왜 이렇게 여러 갈래인가. 나의 마음속에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것이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순례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들 마음속에도 나처럼 내 속에 너무 많은 내가 있지 않나요? 정말이요?
다음 날 모닝콜은 새벽 5시였다.
그리스로 넘어가기 전에 가야 할 곳이 꽤 많은 모양이었다. 나의 취미 생활을 위하여 담배를 챙기는 나를 보고 왕언니는 너그러운 웃음을 짓는다. 아, 사랑스러운 왕언니! 그 귀찮지만, 전혀 귀찮지 않은 취미 생활 때문에 발코니 커튼을 몇 번 젖혀야 했다. 호텔의 커튼은 대개 묵직해서 젖히는 맛이 난다.
귀여운 발코니에 편안하게 기대어 서서 담배를 피우며 여느 집 뒷마당처럼 평범한 좁은 뒤뜰도 감상하면서 칠흑 같은 아이발릭의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용납한다면, 실눈을 뜨고(담배 연기에 약간 눈이 매워져서) 바라본 밤하늘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블랙이었다라고 밖에는. 티가 섞이지 않은 블랙, 한 줌의 사유도 허용하지 않는 고요한 블랙, 그러므로 그 자체로 완전해 보이는 블랙. 그리하여 그 하늘은 ‘아름다운’ 블랙이었다.
호텔은 아주 고요했다.
이층에 묵고 있는 순례자들의 발코니에 담배 연기가 올라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하긴 이처럼 쌀쌀한 늦은 밤에 누가 밖으로 나오랴마는. 고양이가 재빠르게 담 밑을 스쳐갔다. 아참. 나는 손가방 속에 있는 고기 몇 점이 떠올랐다. 유적지마다 상인들보다 먼저 나타나곤 하는 터키의 개들을 위해 늘 점심 식사 때마다 고기 몇 점을 냅킨에 싸두는 버릇이 생겼다. 고기는 제법 많았다. 더구나 오늘 점심은 흡연의 욕구가 너무 심해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서둘러 가방을 뒤져 한 주먹은 족히 될 고기를 뜰에 뿌렸다. 고양이들 가족이 와서 뜻밖의 만찬을 즐기기를 바라면서.
한참 기다려도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밤바람이 더욱 싸늘해졌다. 옷깃을 여미고 들어가려다가 문득 귀를 기울이니 어디선가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바닷가라는 언질을 받아서였을까, 아니면 파도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나의 욕망에 환청이 들린 것일까.
다시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온몸이 나른해진다. 담배는 마약이라는 말에 저절로 수긍이 된다. 그럴지도 몰라.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저만큼에서 속삭이듯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바짝 기울였다. 쏴아~. 분명 파도소리였다.
아이볼릭 호텔은 과연 낡았다.
시설도 낙후되어 난방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밤새 추위에 떨었다. 시트를 뒤집어쓰고도 온몸이 떨릴 정도였다. 잠을 자면서도 얼마나 추웠던지 보일러와 벽난로의 불을 찾아 헤매는 꿈을 꿀 정도였다. 그 와중에 보고 싶은 사람도 나타났다. 꿈속에서도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 애정 드라마는 아니지만 애절한 가곡이 떠오른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한국 가곡의 맛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곡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들으면 어이없어 할지도 모르겠다. 옛날 한국 사람들은 햄릿형이었으니까 말이다.
5시가 되자 여지없이 모닝콜이 울렸고, 왕언니와 나는 마치 내무반의 사병들처럼 벌떡 일어났다. 여행은 시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단체 행동이기 때문에 혼자 는적거려서 민폐라도 끼치면 서로가 곤란해진다.
그런데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짐 싸는데 이력이 난 나는 트렁크를 탁자위에 올려놓고 빠른 시간에 요령 있게 짐을 정리하고, 그렇게 재빨라진 내 자신에 매우 만족해하면서 트렁크를 내리는 순간, 갑자기 철커덕, 하면서 트렁크가 저절로 잠겨버린 것이다. 어머나?
멀쩡하던 트렁크가 갑자기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별별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트렁크는 무슨 큰 비밀이라도 가득 담겨 있는 듯 입을 꾹 다물고 꼼짝하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지도 않았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순간 당황한 나는 이렇게 저렇게 트렁크를 열어보려고 애썼지만 아무리 수를 써도 트렁크는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 끙끙거리다가 일단 포기했다.
일정이 너무 바쁘니까 후순위의 미션이라도 완수할 요량으로 일단 식당으로 내려가 삶은 달걀을 두 개나 먹고 진한 커피를 한 잔 그득하게 따라 마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서 트렁크가 잠겨 졌는지 알 수 없었다. 곰곰 생각해도, 주위의 몇 분에게 물어보아도 걱정만 열심히 해 줄뿐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던 나는 한참 혼자 끙끙거리다가 선교사 가이드를 찾았다. 모든 역사 문화 경제 철학 신화까지 꿰뚫고 있으니 해결사 노릇도 잘 해 줄 거라고 믿었는데 아니었다. 그는 멍청하게 닫힌 뚱뚱한 나의 트렁크를 몇 번 만져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비밀번호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인천공항에서부터 동행했던 가이드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가이드는 마흔 한 살의 노총각으로 진지해 보이고 말이 없는 남자였다. 가이드는 온종일 순례단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순례를 마치면 일일이 방을 노크해서 개인의 애로점들을 체크하고, 까다로운 기구의 사용방법을 세밀하게 가르쳐주고, 때로는 해결사 노릇까지 도맡아했다.
가이드를 부르면서도 별 희망을 갖지는 않았다. 나도 모르는 비밀번호를 가이드가 어떻게 알겠나. 트렁크를 해머로 내리치고 다시 트렁크 하나를 사는 수밖엔 없겠구나, 뭐 그런 최후방편도 생각했다. 가이드는 여전히 열리지 않는 트렁크 앞에 멍청하니 서 있는 나에게 물었다.
“권사님 정말 비밀번호를 모르세요?”
“설정해 놓지도 않았거든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두 손 놓고 맥없이 서 있는 내 옆에 무릎을 꿇었다. 마치 기도하듯 그렇게 트렁크 앞에 무릎을 꿇은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트렁크의 번호를 차례차례 돌리기 시작했다. 000, 001, 002... 010, 100,... 그렇게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계속 기약 없이 번호를 맞추는 것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우직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금고털이범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십여 분이 지났을까, 덜컥, 하면서 거짓말처럼 트렁크가 열렸다. 별 소망 없이 바라보던 나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가 마치 자신의 트렁크라도 되는 것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열렸어요!”
과연 트렁크는 제멋대로 쑤셔놓은 옷가지들을 염치도 없이 적나라하게 내보이고 있었다. 땀을 훔치면서 그가 말했다.
“권사님 트렁크 비밀번호는 113번이었네요.”
나는 어떻게 해서 비밀번호가 113으로 맞추어져 있었는지 지금도 모른다. 그리고 가이드가 어떻게 해서 113까지 진도를 나갔는지 그것도 모른다. 아는 것은 단 하나. 엉뚱하게 잠겨버린 나의 트렁크를 인내와 사랑으로 비밀번호를 풀어낸 가이드가 당시로서는 나에게 구세주였다는 것뿐. 그동안은 말 몇 마디 나누지 않았는데 그 후부터는 마주칠 때는 가끔 미소도 교환하고 호텔 로비에서 커피도 같이 마시고 유적지에서는 나의 구가다(?) 디카를 건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사이가 되었다.
한바탕 트렁크 해프닝이 끝나자 어쩐지 진이 빠져 씻기조차 귀찮아져버렸다. 하여, 샴푸는 생략. 가장 기초적인 씻기만 한 채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썼다.
마침 주일이었다.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어제 포럼을 하면서 떨었던 이층 식당에 다시 모였다. 아침 7시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미 식사까지 마친 상태니 참 대단하신 분들이다. 그 부지런함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 그런데 이층에 오르니, 어제는 밤이어서 보지 못했는데 세상에나, 전면 통유리 창으로 바다가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제 밤 발코니에서 들었던 환청 같은 파도 소리는 현실이었구나.
아이볼릭 해변의 바다는 아름다웠다.
이른 아침의 바다는 고요했고 사춘기 소녀의 마음처럼 명랑한 햇빛으로 온통 금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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