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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성지순례

25. 메떼오라 수도원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메떼오라에 도착했다. 인구 만 명에 불과한 산골 마을이었다. 아늑하고 고요하며 깨끗한 것이 성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의 작은 마을. 아담한 호텔은 규모는 작지만 품격이 느껴졌다. 나는 나지막한 호텔의 전경에 반해버렸다. 고요한 마을에 어울리게 지어 놓은 것 같았다. 배정된 룸도 멋졌는데 특히 욕실은 정말 깜찍할 정도로 앙증맞게 꾸며놓았다. 마치 신혼집의 욕실처럼 무드가 있는 욕실이었다.

그곳에서 저녁 산책을 나갔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걷는 기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잘 고르면 꽤 괜찮은 것이 많습니다.”

박사 출신 가이드의 귀띔에 혹한 몇 몇 여자들과 함께였다.

어두운 밤, 눈과 비가 섞여 내리고 있었고 이국의 밤거리는 한적했지만 어쩐지 안온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산골마을이 주는 잔잔한 흥취 때문이었으리라. 작은 마을 길 양 옆으로 아담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무로 만든 수공예품 반지도 하나 샀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형상화한 흰 붓 터치가 아름다웠던 그 반지. 예수님과 약혼을 한다면 이런 반지를 끼워주지 않을까? 3유로짜리지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몇 푼의 돈을 지갑에 넣고, 밤거리의 가게들을 들락거리는데 낯선 이국의 산골에서 한국 관광객은 어찌 그리 많은지 깜짝 놀랐다.

그곳에서 남편을 위한 러시아 털모자도 샀다. 그는 볼셰비키 혁명 군인들이 잘 쓰고 다니던 털이 부숭부숭한 러시아털모자를 오래 동안 원해왔다. 잿빛 털은 좀 길었고 거칠었다. 값은 비싸지 않았다. 기억하기로는 2, 30 유로쯤 지불한 것 같다.나의 초록빛 여우목도리도 샀다. 둘러보니 생각보다 따뜻하고 감촉이 아주 포근했다.

마음에 드는 모피 조끼도 입어보았는데 동행한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만큼 나에게 어울렸다. 하지만 뒤 박음질이 너무 허술해서 아쉽게도 포기해야했다. 참 신기한 일이다. 돈이 없어서 못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하자가 있어서 사지 않는 기분. 나로서는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 나는, 돈이 없어서 못 사본 경험만 풍부했으니까.

 

그렇게 간소하게 쇼핑을 마친 후, 산골 마을만큼 아담하고 소박한 호텔 로비에 모여 앉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벽난로가 있었다. 호텔 로비 구석의 벽에 마치 중세의 거실처럼 만들어져 있는 벽난로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장작을 넣은 벽난로에서는 정말 장작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황홀할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곳에 가까이 다가앉아 불꽃과 불길을 보면서 얼굴을 데울 만큼 가까이 벽난로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고 조로아스터 신을 경배하는 사람처럼 불의 유혹에 흠뻑 빠져들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 유혹당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 벽난로 앞에서 불을 쬐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은 또 얼마나 좋았던지! 그 벽난로 앞에서 모두 한 장씩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대체 누구 카메라 속에서 잠들어 있는지 아직도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룸으로 돌아와 초록의 머플러를 몇 번이고 목에도 둘러보고, 반지도 껴보면서 즐거워하는 내 자신을 스스로 보건데, 어찌 보면, 마치 마지막 날을 앞둔 사람처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즐길 결심을 단단히 한 사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늦은 밤,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여전히 비가 내리는 발코니에 나와,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너무 차가워 따갑기까지 한 맨발을 동동거리며 그렇게 칼바람을 견디며 악착같이 불을 붙였다. 느긋하게 담배연기를 날리면서 밤거리를 지켜보았다. 비가 내리는 시골의 아늑하게 젖은 길을 바라보면서, 누군가 살고 있는 집을 바라보면서, 가끔 지나가는 그리스 사람들의 발걸음을 눈으로 쫓으면서...

드문드문 노란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문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스프를 먹거나 신문을 보거나 뜨개질을 하는, 앞치마를 입은 중년 그리스 여자들을 상상했다.

어디든, 사람들은 사는 것이다.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둠속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밤은 만들어낸다.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이상하다. 밤은 왜 그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드디어, 메떼오라에서의 아침.

비는 그쳤고 만물은 하나님의 손길로 자연세탁이 되어 말끔한 모습이었다.

메떼오라는 희랍어로 공중에 떠있는 마을을 뜻한다고 한다. 과연 공중에 떠있는 마을이었다. 깎아지는 바위 꼭대기에 지어놓은 수도원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꼭대기에, 정말 구름도 쉬어가는 높은 산꼭대기에 수도원이 있었다. 그들은 대체 어떻게 저런 수도원을 스스로 짓고, 어찌하여, , 스스로 저 속으로 들어가 일생을 살았던 것일까. 그곳에는 지금도 수염을 기른 검은 옷의 수도사들이 살고 있다.

그 중 한 수도원인 발람 수도원을 견학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좁은 입구에는 색색의 치마들이 있었다. 낡은 헝겊에 불과했지만 여자 순례자들은 그것을 허리춤에 걸쳐 치마처럼 입어야 비로소 입장이 허락되었다. 나는 짙고 푸른 치마를 골라 허리에 둘렀다. 치마를 두르니 보폭이 절로 좁아졌다. 성큼 발자국을 옮기기에는 너무 경건한 곳이어서 그러할까? 영화에서 보았던 중세의 수도사들이 바로 코앞을 지나치고, 거닐거나 성경을 읊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내가 중세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중세의 시간 한 가운데서 나는 에게 해 바닷물처럼 푸른 치마를 입고 천 년 전 그들이 살았고 지금도 역시 생활하고 있는 공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의 방(순교자의 방이라고도 한다)에는 수많은 순교자의 끔찍한 죽음의 모습이 너무도 적나라하게 그림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따라 모두 묵상 기도를 올렸다. 순교자의 방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는 회개할 것이 너무 많았다. 나만을 위해 살아온 나의 인생을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실 것인가.

중세 기독교의 타락한 물결이 탁류처럼 세상을 덮던 그 시대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며 성경필사와 묵상으로 말씀을 온전히 지켜낸, 그리고 이교도들의 약탈과 파괴로부터 기독교 전통의 맥을 지켜낸 것은 바로 그들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신앙에 충격을 받아, 엽서 한 묶음과 음유시인처럼 읊는 그들의 찬송 CD를 구입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힘들 때마다 메떼오라 수도사들의 찬송을 들으면서 위로받을 것이다. 고독한 삶이 그리워지면 그 길고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수염을 길게 기른 수도사를 떠올릴 것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사람들이 도저히 올라갈 수 없어 바구니를 매달아 줄을 끌어올려 겨우겨우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물과 식량까지도 바구니에 담아 올렸던 그 철저한 절대 고독의 공간, 메떼오라 수도원.

그들은 정말 고독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로지 만 보이는 곳을 원했을 것이다.

메떼오라에서의 감동은 이곳에 함부로 적어놓기 힘들다. ‘함부로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할 만큼 정결한 공간이었다. 수도원 곳곳을 엿보면서 가슴이 뻐근해졌고, 어느 순간 뭉클하여 눈물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