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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성지순례

23. 빌립보 유적지와 루디아 교회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버스에 올랐다. 아름다운 까발라 항구를 떠날 생각을 하니 참 아쉬웠다. 생각 같아서는 호텔에서 며칠 더 묵으면서 바닷가를 거닐고 상점에서 기념품도 고르고, 그리고 저녁에는 노천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경치를 둘러보면서 진한 에스프레소도 마시고 싶었다.

까발라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빌립보 유적지에 들렀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지만 우산 없이도 맞을만한 비였다. 나는 머플러로 머리를 감쌌다. 마치 고대의 히잡을 쓴 것처럼 기분이 묘했다.

바울의 감옥을 둘러보고 산언덕으로 올라가 유적지를 보는데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신전과 중앙 도로, 체육관 터까지 있었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근처에 있는 루디아 기념교회에 들을 때쯤 비가 겨우 멎었다. 자주 장사 루디아. 사도행전에 나오는 복 받은 여인의 이름, 루디아. 교회 앞에서 특별히 여자 순례자들만 사진을 찍어보았다.

다음 행선지는 데살로니카입니다.”

낭랑하고도 명료한 가이드의 말에 순간, 나는 헛갈리고 말았다. 네압볼리에서 빌립보를 지났는데 데살로니카로 간다니! 마치 내가 이천 년전 바울과 전도 여행에 동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 말이다. 오랜 지명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그리스가 놀라웠다.

암피폴리에 내려 사자상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에게 해의 파도가 치는 멋진 해변에 버스가 섰다.

새하얀 실내장식이 너무도 멋진 레스토랑이었다.

식당 주인은 풍성하고 너그러운 웃음이 일품이었고 가족인 듯한 웨이트리스는 상냥했다. 게다가 산더미 같은 감자튀김과 닭구이는 매력 만점이었다. 아침에도 포식을 했는데 감자튀김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기름진 것만 좋아하는 나쁜 식성은 어쩔 수 없었다.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나에게 주어진 감자튀김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나의 엄청난 식성에 다른 순례자들이 깜짝 놀란다.

식사 후 식당에서 서빙하던 그리스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참하게 생긴 아가씨여서 말을 건네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 너무 아름다운데 같이 사진 찍지 않겠어요?”

나의 솔직한 칭찬에 그녀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 당신이 훨씬 더 예뻐요.”

역시 여자들은 칭찬에 약하다. 이른 바, 동서양의 덕담을 주고받는 셈이 되었지만 크고 검은 그녀의 눈동자는 진심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추켜세우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그녀는 가족을 소개했다. 짐작대로 레스토랑은 가족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운영하고 있었다.

철이 지난 바닷가는 황량했다.

나는 황량한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에게 해의 파도에 살짝 발을 적시면서 한동안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다른 순례자들은 서넛씩 모여서 웃고 떠드는데 나는 혼자 멀찌감치 떨어졌다.

왜 그랬을까. 그 바닷가는 활기찬 웃음소리나 즐거운 표정은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 외에는 단 한 사람도 구경 할 수 없는 바닷가에서 나는 지난여름의 흔적을 보았다. 아직까지 채 치우지 못한 쓰레기와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던 테이블에 쌓여있는 먼지와 스산한 바닷바람. 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랜카드는 바람에 찢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조차 나에게는 낭만적으로 보이니 그것도 이상한 일은 이상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