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리스 북부 메떼오라에서 그리스 남부 고린토를 향하여 길고 긴 버스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버스 창밖으로 에게 해의 짙푸른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끼고 여행하는 즐거움은 최고일 것 같다.
한국에서도 7번 국도를 타고 포항까지 내려가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꿈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에서 바다를 보면서 버스 여행을 하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가끔씩 비가 흩뿌리고, 또 가끔은 반짝이는 해가 세상을 비추는 천국의 시간들이 지금 나에게 주어졌다.
터널을 지났다. 터널이 흔한 한국에 비해 외국에는 터널이 희귀하다. 편하게 빠르게 가려는 한국인의 습성을 닮은 것처럼 높은 산은 뚫어버리고 계곡은 다리를 놓아 최단코스의 길을 만들려고 한다. 한국에서의 길은 대개 유통의 통로이거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데 필요한 이음선 정도인지도 모르겠다.
대다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그런 정서는 나에게는 많이 힘들었다. 길은 저곳을 가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길 그 자체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나의 오감은 촉촉하게 젖고는 했다. 스쳐지나가는 사물을 보는, 눈과 마음의 쾌감은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리.
하지만 유럽은 좀 달랐다. 그냥 자연의 굴곡을 그대로 인정하고 구불거리는 길, 돌아가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옛 흔적의 길을 그대로 보존하는 미덕이 유럽에는 있는 것 같다.
모처럼 만난 터널은 길고 깊었다. 자연의 화려한 색감이 잠시 사라지고 무채색의 공간 속으로 진입하자 나는 색다른 맛을 느꼈다. 어쩌면 나는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나는 지금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닐까?
터널을 나오자 얼마 되지 않아 세상에나, 무지개를 보았다. 너른 들판에 넓게 반원으로 보이던 그 무지개. 하나님의 언약의 표식. 하나님은 나에게 약속을 주신 것이 있다.
그렇게 베뢰아를 먼발치로 보면서 지나쳤고 험산준령을 넘었다. 길은 많은 표정을 담고 있다. 이천 년 전 샌들을 신고 이곳을 지나갔을 바울을 떠올렸다. 이 길들을 정말 걸어서 갔더란 말인가요, 바울? 이 산을 넘었단 말인가요, 바울? 이 바닷가를 지났단 말인가요, 바울?
길 위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버스에서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찬양을 하기 시작했다. 순례자들은 한국에서부터 만들어 온 찬양집을 펼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찬양을 하고 있는 순례자들은 정말 참으로 편안한 표정이다.
여행기간 내내 하루 24시간을 나는 그들과 함께 있었다. 낮에는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밤에는 룸메이트 왕언니와 함께. 그렇게 곁에서 같이 먹고 마시고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수다 떨고 쇼핑하고 같이 걸었다.
그렇게 만난 순례자들, 오래 동안 같은 교회에 다니는 믿음의 공동체 일원들. 그러한 교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것은 여행이 끝나봐야 알겠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그 모두를,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판단할 수 없는, 판단해서도 안 되는 부분일 것이다.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 적어도 노력할 것이다. 뒷좌석에 앉으신 장로님께서 내가 좋아하는 땅콩 캐러멜을 양보해서 나를 주셨다. 얼마 전 사탕들을 고를 때 땅콩 캐러멜을 좋아한다고 했던 나의 말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챙겨주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겠지.
우리 그리스 가이드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분명한 마인드, 지혜롭고 아주 똑똑하고 정확한 여자!!
찬양이 무르익을 무렵, 그러던 어느 순간, 왜 나의 마음이 뜨거워졌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버스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잡고 말했다.
“나의 영혼의 어둔 밤을 지나고 있는 요 몇 달 동안 나를 위로해 주던 찬양입니다. 가사와 곡 모두 나에게 은혜를 주어 거의 매일 피아노를 치면서 불렀지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분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찬양 집에서 <때로는 너의 앞에>를 펼쳤다. 오래 동안 나를 눈물나게 했던 하나님의 위로가 그곳에 선연하게 적혀있었다.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담대하게 주를 바라보는 너의 영혼
너의 영혼 우리 볼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의 영혼 통해 큰 영광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 오 할렐루야>
나는 아주 천천히 1절을 불렀다. 그 가사를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다. 12월 내내 이 가스펠을 열심히 불렀다고 말했다. 버스 안의 순례자들도 아마 그 아름다운 약속의 말씀을 음미했을 것이다.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아마도 최면을 걸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사랑하신다고, 나로 인해 큰 영광 받으실 것이라고! 12월에 그 노래를 나는 대체 몇 번이나 불렀던 것일까...수없이, 수없이, 부르고, 또 부르고...
한 달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곳에 와 있는 나를 생각하면 하나님은 지금 슬슬 나를 위한 무엇인가를 준비하기 위한 워밍업 중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나를 사용하실 시간이 되지 않았나? 아이 호프 쏘!!
하나님. 나에게 주신 달란트를 부디 이용하여 주십시오. 나에게 지혜와 성령을 주셔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아 알게 하시고, 실천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도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 나는 하나님께 화살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 애교를 부렸다. 내가 하나님 없으면 못산다는 것, 잘 알고 계시지요?
그것은 가장 솔직한 나의 고백이었다. 남편이 없으면 가족이 없으면 내 꿈이 없으면 도저히 못살 것 같은 것도 하나님 보다는 아래에 있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에게 해가 바로 옆에서 출렁거리고 있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올리브 나무들. 조금 전에는 피스타치오 나무들도 지나쳤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피스타치오 나무는 난생 처음 보았다. 언제인가 생일 선물로 피스타치오 가득한 바구니를 받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정말 그렇게 선물을 준비해주었다. 얇은 껍질을 까고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연녹색의 열매를 꺼내는 재미도 쏠쏠했다. 입을 약간 벌린 아이보리색의 껍질은 또 얼마나 고혹적인가. 섹시한 여인의 살짝 벌어진 입술처럼, 딱 그만큼 벌어진 틈을 손톱으로 벌릴 때마다 조금은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손톱으로 감지되는 그것의 산뜻한 감촉은 또 어떻고! 피스타치오는 먹을 때마다 나에게 색다른 관능을 선사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물에는 관능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테르모펠레스 전투지를 잠깐 들린 후 노천 온천에서 버스는 멈추었다.
노천 유황온천이다. 지루했던 순례자들은 모두 버스에서 내려 골짜기의 자연온천으로 향했다. 개방적인 서양 관광객들은 겨울임에도 웃통을 벗고, 발을 담그고 자유롭게 노천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순례자들도 하나 둘 신을 벗고 맨발로 바위에 올랐다. 파묵칼레처럼 따끈한 김이 나는 온천물이었다. 산골짜기에 김이 피어오르는 장면은 참 몽환적이다. 하지만 나는 신을 벗지도 김이 오르는 온천물에 발을 담그지도 않았다.
순례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웃고 즐거워하는 풍경에서 나는 슬며시 빠져나왔다. 겨울 정원이 그곳에 있었다. 나무와 막 싹이 오르는 풀과 잿빛으로 변한 화초들이 정돈된 구획 안에 정물화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순례자들이 아직도 물가에서 잘 놀고 있는지 확인 한 후, 마치 불량소녀처럼 으슥한 담벼락에 기대서 담배를 피웠다. 니코틴 성분이 몸속에 들어가자 나른해졌다. 눕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누울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가늘게 비가 내리는 들길을 걸었다. 멋진 시간.
버스에서 나무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홀로 놀았다.
메떼오라의 호텔이 있던 자그마한 마을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평생 살 수도 있겠다. 고요히. 램프를 켜놓고 커다란 나무 탁자에 앉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낡고 두꺼운 책을 넘기기도 하고, 호텔의 로비처럼 벽난로를 만들어 놓고 장작을 집어넣고 타오르는 불꽃을 밤새도록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손가락으로 이글거리는 태양 모양의 흰색 붓터치를 따라가 본다. 반지를 늘 손가락에 끼고 다녀야겠다. 그리스를 기억하기 위하여. 그래. 그리고는 힘들 때마다 반지에게 주문을 거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너로 인해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MP3를 들었다. 클래식에서 미제레레가 흘러나온다.
불쌍히 여기소서.
결국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말은 이 문장 하나뿐이지 않을까.
노트북을 열고 한참 동안 일기를 썼더니 배터리가 겨우 십여 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처음 샀을 때부터 세 시간도 채 못 되는 배터리 용량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좀 화가 난다. 이럴 때 노트북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길고도 긴 버스 여행에서 산과 들을 바라보기도 지쳐갈 즈음 노트북을 꺼내놓고 내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귀한 시간에 다시 접어야 하다니.
부적처럼 내 곁에 꼭 붙어있는 <키스>를 다시 펼쳤다. 집중하기 힘든 오후여서인지 모든 글씨들이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화려하게 흐트러져 있다. 나는 시집을 펼쳐놓고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를 그림처럼 감상하기로 했다. 바늘처럼 날카롭고 에스프레소처럼 지독하게 쓰면서도 연인의 가슴을 만졌을 때처럼 충동적인 감격이 그냥 그림으로 보인다. 그냥 느껴진다.
눈을 감고 무슨 생각엔가 잠겨있었는데 눈을 뜨니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키스에 영혼을 맡기고 먼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
흐렸던 날이 개고 다시 해가 비치고 있다. 비온 후의 맑게 씻긴 풍경들은 그림동화처럼 아름답다. 글 쓰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형용할 길이 없다. 단정한 집들이 간간이 있고, 작은 마을을 지나고, 숲을 지나고 올리브 나무들을 지났다. 그리고 하늘, 거칠 것이 하나도 없이 온전히 고스란히 보이는 하늘, 하늘, 하늘...
이런 멋진 풍경 속에서 나는 호흡을 하면서 꿈을 꾸듯 바라보고 있다. 행복. 나에게 어울리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했던 ‘행복’이라는 단어가 여행 기간 동안 제일 많이 떠올린 단어가 되었다. 나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몇 십 년 만에 열린, 신데렐라의 무도회 시간이 이제는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틀 밤만 지나면 여행이 끝이 난다. 마지막 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나는 나의 생일을 정말 멋지게 보내고 싶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나의 삶을, 나의 운명을, 나의 사랑을 자축하고 싶었다. 그렇게 여행에서의 유종의 미를 거둘 생각이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가서 터키와 그리스에서의 시간들을 추억하면서 삶을 살면 앞으로의 삶도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또,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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