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나님은 나의 스토커

29일~30일 - 무정한 사물들과의 연애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3.

29일~30일 - 무정한 사물들과의 연애

 

이틀 동안의 휴가를 대변하는 짧은 일기 한 토막.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쏟아지는 땡볕을 피해 두꺼운 커튼을 쳐놓고

열여섯 시간 동안 진행된 나의 연애. 

그들의 이름을 말해주어야 할까?

무정한 그것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다정하게 속삭였는지도?

오래 동안 누리기 위하여 호흡을 조절하고 아주 신중하게 들이킨 처음처럼

점심 대신 순차적으로 꺼내어진 안주 감들, 밤 열시의 등갈비

자정 무렵 물가에 앉아 에쎄 한 개비(얼마나 자유로웠던가)

서너 명의 생물들이 쏟아내는 불온한 관계에 눈이 멀어버린 나에게

무정한 사물들은 얼마나 큰 위로였던지!

순결한 손목에 문신처럼 새겨지던 아찔하게 깊은 쾌락.

18도 에어컨 아래서 열 여섯 시간동안

무정한 사물들과의 연애를 복습했다.

 

짧은 글을 풀어서 쓸 때의 느낌은 시 뒤의 조잡한 평을 길게길게 - 쓸잘데없는 난해함에 도리질을 하게 만들면서- 늘어놓은 듯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서두 하여튼.

('하여튼'은 매 설교마다 '어찌됐든', 을 서 너 번 이상 남발 -애용이라고 말씀드려야 누가 되지 않을 것을 알긴  하겠는데 그 말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아니하므로 약간 죄송하오나 그대로 사용하기로 합니다 - 하셨던 원로 목사님께 전수받은 접속사입니다.)

 

휴가 가는 날 아침이므로 더욱 진지하게 묵상하기로 함.

 

<주님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은 폭풍의 포효가 아니라 자녀들이 두려워 외치는 소리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폭풍을 꾸짖으십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두려워 외칩니다. 저에게 술의 자유함을 주십시오. 누리게 하시고, 다스리게 하시고, 그것을 건강에 해치지 않을 정도로 즐기게 하여주십시오. 이번 7월은 아주 꽝인 거 아시지요?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의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이번 휴가 때 얌전하게 앉아 별 다른 말썽 없이 무난하게 보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래된 친구들과 한 여름에 일박이일로 자유여행을 떠난 지 칠, 팔 년은 되어가는 것 같다. 남편과 자식과 집을 떠나 오로지 친구들과 자유롭게 일박 이일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좋은 경치가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좋은 잠자리와 쾌적한 환경이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편하게 주저앉아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시고 먹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었다.

술 한 번 원 없이 마셔보자. 하필 그런 소원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한 친구와 나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휴가를 떠난 적도 있었다. 취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궁금하여 최대한 마시려고 노력(이런 일이!)했지만 필름 끊어지지도 않았고, 이실직고하는 고통(그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도 없이 얌전하게 잠이 들었던 빛나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번 휴가의 컨셉은 어디에 가든 팍, 퍼질러 앉아서 죽도록 이야기하는 것이다. 밤 1시네, 밤 2시네 하는 시간의 카운트를 세는 사람도 없을 테니 얼마나 좋을까. 나이 쉰이 넘어서의 간절한 소원 중의 하나가 어딘가 놀러갈 때 각자의 남편으로부터  "시간 구애받지 말고 원 없이 놀다 오시게. 집과 자식들은 내가 책임지고 지켜주마!" 하는 속 넓고 아량 깊은 다정한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과연 남편들은 모르는 것일까?

우리들보다 업그레이드 된 삶을 살고 있는 아줌마들은 여자들끼리 해외여행도 가고 해외에 있는 친지를 만나서 보름씩 이십일 씩 집도 비우고 하는 모양이다마는 우리를 에워싼 상황은 그보다 열악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쨌든(하하) 우리는 만났고, 일단 모여서 커피 한 잔씩 때렸고, 동네 대형 마트로 몰려가 술, 안주, 스낵, 과일 등등을 각자 취향대로 골라 카트에 듬뿍 담았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은 친구의 차에 올라탔고, 우리 집에서 기껏해야 40킬로쯤 떨어진 어느 레저타운으로 향했고, 휴양지와의 거리가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이제까지의 휴가지에서 가장 짧은 거리를 기록하면서, 도착했다. 한 이십 평정도 될까, 제법 큰 방에 큼직한 욕실이 구비되어 있고, 한발짝 뛰면 바로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자리한 방갈로였다.

2시에 도착하여, 몸이 잰 친구 하나가 걸레 들고 깨끗한 바닥을 닦고, 나는 -거의 난생처음 -파리를 잡았다. 나에게 주어진 파리 잡으라는 미션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리를 아무나 잡나. 나는 계속 허탕으로 애꿎은 벽, 냉장고, 창문만 내리치기를 수십 번, 성공률은 10%도 되지 않았다.

파리 잡는 나를 본 친구들이 배꼽을 잡는다. 파리가 너를 잡겠다, 그렇게 엉성한 폼으로 어떻게 파리를 잡겠냐. 파리를 잡는 데에도 나름대로의 폼이 필요하고 노하우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집들이 준비를 마치고 엎어지고, 눕고, 앉아서 쉬기를 한 시간.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친구들은 물놀이 하는 창밖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간이 세 시를 지나려 할 때, 제일 못 참은 내가 소리쳤다.

"나는 이제 시작하련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자못 신중한 표정으로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내일까지 잘 견디려면 절도 있는 주도(酒道)가 필요했다. 육포를 꺼내고, 이어 떡도 꺼내고(떡이 안주라는 사실은 주당인 친구 남편으로 전수받은 산지식이다), 족발, 오징어, 땅콩도 꺼냈다. 냉장고의 유무를 알 수 없었던 우리들은 최대한의 머리를 짜서 냉장고에 넣어도 상관없을 안주류만 골라왔다.

한 잔을 십 분 이상 질질 끌면서 마시고, 그러면서 마일드 세븐을 적절한 때에 배합하면서 나는 주초잡기 일 단계에 접어들었다. 친구들은 나만큼은 술을 즐겨하지 않으므로 내가 너무 쓸쓸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면서 술자리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그 술자리는 밤을 꼴딱 세우고(소설가가 소설 쓰면서 밤을 새워본 적은 극히 드문데 술 마시면서 밤을 샌 적은 그보다 많으니 이를 어찌할꼬)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조금의 휴식시간도 없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점심 대신 술로 채운 우리들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레저타운 안에 있는 초호화판 레스토랑으로 진출하였다. 등갈비찜에 다시 술 한 병이 거덜났다.

이래저래 거나해져서 돌아오는 길 물가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 한 대 피워 무는 기분이라니!!

사실 술 맛을 모르는 인간은 술 마시는 사람,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술 못먹는 인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약간(눈치 채지 않을 정도로 경미하게)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니들이 술맛을 알어? 바로 이 버전인 것이다.

밤새도록 영양가 없이 술만 마신 것은 아니다. 술 마시고 내 기분에 취해 슬쩍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소리 지르기도 하고 낄낄대기도 하면서 설교까지 한 시간 늘어놓았다. 설교, 진짜 설교 말이다.

상처 많은 친구 하나를 붙들고,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사탄이 꽉 붙들고 있는) 쓰잘데없는 죄의식에 대하여 자분자분 설명해주고, 숙제도 주고, 8월 한 달은 어떻게 새롭게 살아야할지 마음껏 어드바이스도 해주었던 것이다. 살짝 취해서 하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고? 나는 그 말에 동조할 수 없다. 진심에 우러나는 말은 그 때 더 잘 통하게 마련이다. 둘 다 마음이 연약해져 있으므로 침투할 면적이 넓은 것이다.

 

두꺼운 커튼에서도 아침이 밝아오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 29일과 30일은 그렇게 찰싹 달라붙어서 나에게로 왔다. 창문을 여니 비가 오고 있었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거울을 보니 역시! 눈에 핏줄이 터져 드라큐라 비슷한 몰골이다. 끙끙 앓으면서 10시에 짐 싸들고 식당을 찾았다. 빗줄기는 폭포수처럼 거셌다. 비오는 정경을 바라보면서 친구들은 미역국을 나는 전복죽을 먹었다. 해장에 어울리지 않지만 일단 술술 넘어가니 살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식당 바닥에라도 드러누워 그대로 잠들고 싶은데 친구들이 억지로 사우나로 끌고 간다. 레저타운에 시설 좋은 사우나가 있었다. 노천 폭포에서 수압 높은 물줄기를 맞았다. 늘 뭉쳐있는 어깨 근육이 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글은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왜 어깨 근육이 늘 뭉쳐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거짓말처럼 두통도 사라지고 몸의 피곤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밤새도록 술과 담배에 찌들었던 몸이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을 보니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 했다.

"이게 바로 중생이라는 것이다. 회개들 했지?"

나는 친구들을 놀렸고, 친구들은 나를 놀린다.

"죄 씻음을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새롭게 잘 살아라~"

사우나 끝나고 마시는 자판기 커피의 맛을 어디에다 비할 것인가!

술은 잘 챙겨오면서 일회용 커피 하나도 준비해오지 않았던 우리들은 로비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완벽한 기쁨을 맛보았다. 역시 즐거운 일박 이일이었어~

 

나를 데려다주고 떠나는 친구들에게 '시크릿'과 이재철의 '인간의 일생'을 빌려주었다.

" 너무 쉽고, 너무 감동적이지! 휴가 때 읽을 책으로는 그만이란다!"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면서 화살기도를 했다. '인간의 일생'을 빌려가는 친구에 대하여 특히!

책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단단한 믿음으로 다시 잘 서게 되기를 말이다.

29일~30일 - 무정한 사물들과의 연애

이틀 동안의 휴가를 대변하는 짧은 일기 한 토막.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쏟아지는 땡볕을 피해 두꺼운 커튼을 쳐놓고

열여섯 시간 동안 진행된 나의 연애. 

그들의 이름을 말해주어야 할까?

무정한 그것들이 나에게는 얼마나 다정하게 속삭였는지도?

오래 동안 누리기 위하여 호흡을 조절하고 아주 신중하게 들이킨 처음처럼

점심 대신 순차적으로 꺼내어진 안주 감들, 밤 열시의 등갈비

자정 무렵 물가에 앉아 에쎄 한 개비(얼마나 자유로웠던가)

서너 명의 생물들이 쏟아내는 불온한 관계에 눈이 멀어버린 나에게

무정한 사물들은 얼마나 큰 위로였던지!

순결한 손목에 문신처럼 새겨지던 아찔하게 깊은 쾌락.

18도 에어컨 아래서 열 여섯 시간동안

무정한 사물들과의 연애를 복습했다.

 

짧은 글을 풀어서 쓸 때의 느낌은 시 뒤의 조잡한 평을 길게길게 - 쓸잘데없는 난해함에 도리질을 하게 만들면서- 늘어놓은 듯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서두 하여튼.

('하여튼'은 매 설교마다 '어찌됐든', 을 서 너 번 이상 남발 -애용이라고 말씀드려야 누가 되지 않을 것을 알긴  하겠는데 그 말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아니하므로 약간 죄송하오나 그대로 사용하기로 합니다 - 하셨던 원로 목사님께 전수받은 접속사입니다.)

 

휴가 가는 날 아침이므로 더욱 진지하게 묵상하기로 함.

 

<주님을 잠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은 폭풍의 포효가 아니라 자녀들이 두려워 외치는 소리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폭풍을 꾸짖으십니다>

 

하나님. 지금 제가 두려워 외칩니다. 저에게 술의 자유함을 주십시오. 누리게 하시고, 다스리게 하시고, 그것을 건강에 해치지 않을 정도로 즐기게 하여주십시오. 이번 7월은 아주 꽝인 거 아시지요?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나의 의지가 약해지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이번 휴가 때 얌전하게 앉아 별 다른 말썽 없이 무난하게 보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래된 친구들과 한 여름에 일박이일로 자유여행을 떠난 지 칠, 팔 년은 되어가는 것 같다. 남편과 자식과 집을 떠나 오로지 친구들과 자유롭게 일박 이일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좋은 경치가 굳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좋은 잠자리와 쾌적한 환경이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편하게 주저앉아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시고 먹고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었다.

술 한 번 원 없이 마셔보자. 하필 그런 소원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한 친구와 나는 그런 바람을 가지고 휴가를 떠난 적도 있었다. 취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궁금하여 최대한 마시려고 노력(이런 일이!)했지만 필름 끊어지지도 않았고, 이실직고하는 고통(그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도 없이 얌전하게 잠이 들었던 빛나는 과거를 가지고 있다.

이번 휴가의 컨셉은 어디에 가든 팍, 퍼질러 앉아서 죽도록 이야기하는 것이다. 밤 1시네, 밤 2시네 하는 시간의 카운트를 세는 사람도 없을 테니 얼마나 좋을까. 나이 쉰이 넘어서의 간절한 소원 중의 하나가 어딘가 놀러갈 때 각자의 남편으로부터  "시간 구애받지 말고 원 없이 놀다 오시게. 집과 자식들은 내가 책임지고 지켜주마!" 하는 속 넓고 아량 깊은 다정한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과연 남편들은 모르는 것일까?

우리들보다 업그레이드 된 삶을 살고 있는 아줌마들은 여자들끼리 해외여행도 가고 해외에 있는 친지를 만나서 보름씩 이십일 씩 집도 비우고 하는 모양이다마는 우리를 에워싼 상황은 그보다 열악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쨌든(하하) 우리는 만났고, 일단 모여서 커피 한 잔씩 때렸고, 동네 대형 마트로 몰려가 술, 안주, 스낵, 과일 등등을 각자 취향대로 골라 카트에 듬뿍 담았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은 친구의 차에 올라탔고, 우리 집에서 기껏해야 40킬로쯤 떨어진 어느 레저타운으로 향했고, 휴양지와의 거리가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이제까지의 휴가지에서 가장 짧은 거리를 기록하면서, 도착했다. 한 이십 평정도 될까, 제법 큰 방에 큼직한 욕실이 구비되어 있고, 한발짝 뛰면 바로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좋은 위치에 자리한 방갈로였다.

2시에 도착하여, 몸이 잰 친구 하나가 걸레 들고 깨끗한 바닥을 닦고, 나는 -거의 난생처음 -파리를 잡았다. 나에게 주어진 파리 잡으라는 미션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파리를 아무나 잡나. 나는 계속 허탕으로 애꿎은 벽, 냉장고, 창문만 내리치기를 수십 번, 성공률은 10%도 되지 않았다.

파리 잡는 나를 본 친구들이 배꼽을 잡는다. 파리가 너를 잡겠다, 그렇게 엉성한 폼으로 어떻게 파리를 잡겠냐. 파리를 잡는 데에도 나름대로의 폼이 필요하고 노하우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집들이 준비를 마치고 엎어지고, 눕고, 앉아서 쉬기를 한 시간.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친구들은 물놀이 하는 창밖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시간이 세 시를 지나려 할 때, 제일 못 참은 내가 소리쳤다.

"나는 이제 시작하련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자못 신중한 표정으로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내일까지 잘 견디려면 절도 있는 주도(酒道)가 필요했다. 육포를 꺼내고, 이어 떡도 꺼내고(떡이 안주라는 사실은 주당인 친구 남편으로 전수받은 산지식이다), 족발, 오징어, 땅콩도 꺼냈다. 냉장고의 유무를 알 수 없었던 우리들은 최대한의 머리를 짜서 냉장고에 넣어도 상관없을 안주류만 골라왔다.

한 잔을 십 분 이상 질질 끌면서 마시고, 그러면서 마일드 세븐을 적절한 때에 배합하면서 나는 주초잡기 일 단계에 접어들었다. 친구들은 나만큼은 술을 즐겨하지 않으므로 내가 너무 쓸쓸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면서 술자리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그 술자리는 밤을 꼴딱 세우고(소설가가 소설 쓰면서 밤을 새워본 적은 극히 드문데 술 마시면서 밤을 샌 적은 그보다 많으니 이를 어찌할꼬)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조금의 휴식시간도 없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점심 대신 술로 채운 우리들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레저타운 안에 있는 초호화판 레스토랑으로 진출하였다. 등갈비찜에 다시 술 한 병이 거덜났다.

이래저래 거나해져서 돌아오는 길 물가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 한 대 피워 무는 기분이라니!!

사실 술 맛을 모르는 인간은 술 마시는 사람,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술 못먹는 인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약간(눈치 채지 않을 정도로 경미하게)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니들이 술맛을 알어? 바로 이 버전인 것이다.

밤새도록 영양가 없이 술만 마신 것은 아니다. 술 마시고 내 기분에 취해 슬쩍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소리 지르기도 하고 낄낄대기도 하면서 설교까지 한 시간 늘어놓았다. 설교, 진짜 설교 말이다.

상처 많은 친구 하나를 붙들고,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사탄이 꽉 붙들고 있는) 쓰잘데없는 죄의식에 대하여 자분자분 설명해주고, 숙제도 주고, 8월 한 달은 어떻게 새롭게 살아야할지 마음껏 어드바이스도 해주었던 것이다. 살짝 취해서 하는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고? 나는 그 말에 동조할 수 없다. 진심에 우러나는 말은 그 때 더 잘 통하게 마련이다. 둘 다 마음이 연약해져 있으므로 침투할 면적이 넓은 것이다.

 

두꺼운 커튼에서도 아침이 밝아오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 29일과 30일은 그렇게 찰싹 달라붙어서 나에게로 왔다. 창문을 여니 비가 오고 있었다. 마음이 착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거울을 보니 역시! 눈에 핏줄이 터져 드라큐라 비슷한 몰골이다. 끙끙 앓으면서 10시에 짐 싸들고 식당을 찾았다. 빗줄기는 폭포수처럼 거셌다. 비오는 정경을 바라보면서 친구들은 미역국을 나는 전복죽을 먹었다. 해장에 어울리지 않지만 일단 술술 넘어가니 살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식당 바닥에라도 드러누워 그대로 잠들고 싶은데 친구들이 억지로 사우나로 끌고 간다. 레저타운에 시설 좋은 사우나가 있었다. 노천 폭포에서 수압 높은 물줄기를 맞았다. 늘 뭉쳐있는 어깨 근육이 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글은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왜 어깨 근육이 늘 뭉쳐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거짓말처럼 두통도 사라지고 몸의 피곤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밤새도록 술과 담배에 찌들었던 몸이 깨끗하게 씻겨지는 것을 보니 마음도 깨끗해지는 듯 했다.

"이게 바로 중생이라는 것이다. 회개들 했지?"

나는 친구들을 놀렸고, 친구들은 나를 놀린다.

"죄 씻음을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새롭게 잘 살아라~"

사우나 끝나고 마시는 자판기 커피의 맛을 어디에다 비할 것인가!

술은 잘 챙겨오면서 일회용 커피 하나도 준비해오지 않았던 우리들은 로비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에 완벽한 기쁨을 맛보았다. 역시 즐거운 일박 이일이었어~

 

나를 데려다주고 떠나는 친구들에게 '시크릿'과 이재철의 '인간의 일생'을 빌려주었다.

" 너무 쉽고, 너무 감동적이지! 휴가 때 읽을 책으로는 그만이란다!"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면서 화살기도를 했다. '인간의 일생'을 빌려가는 친구에 대하여 특히!

책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단단한 믿음으로 다시 잘 서게 되기를 말이다.

 

집에 오자마자 네 시간 넘게 푹 잠을 잤다. 밤을 새웠다는 나의 말에 남편이 혀를 끌끌 찼다.

"나이도 생각하지 않고설랑..."

누우면서 생각하니 밤을 새우면서 놀 나이가 따로 있느냐, 하면서 마음속으로 반항했다.

쉰하나, 쉰둘이면 한창인데, 안 그래?

흥, 하며 나는 실컷 잤다. 모처럼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일어나서 뒤늦게 묵상.

묵상의 연장으로 바람 부는 천변을 산책했다.

한 바퀴 돌고 집으로 왔는데 뭔가 미진한 기분이 들어 다시 천변을 돌았다. 집에 오니 자정이 넘어있었다.

거니는 사람들이 많이 초저녁에는 걷기조차 힘들 정도였는데 밤 10시가 훨 넘어가자 좀 고즈넉해지고 비로소 묵상할 환경이 되는 것 같았다. 어둠 속의 물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곰곰이 한 달을 더듬어 보았다.

한 달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생각 밖의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진솔하게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예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술자리가 많았던 것도 나에게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좀 더 신실하고 경건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줄곧 나의 예상과 다른 일이 생기니 정말 이상했다.

내일, 역사 자료팀 미팅에 가져가야할 미션이 아직 미완인 채로 남아있다. 1000매 원고 교정을 보아야하는데 프린트조차 하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내일 시간을 정해놓고 집중 작업해야 할 것이다.

8월에는 술 좀 덜 마시고, 좀 더 경건의 생활로 몰입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진정으로 술 담배에서 자유로워지는 때는 언제일까? 8월을 기대한다. 내일 7월의 마무리를 확실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