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 Donde Voy(나는 어디로 가나)
성경 묵상 사도행전 9장.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는 바울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유명한 장면이다.
세상적으로 그렇게도 똑똑한 바울에게 이론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초자연적 계시로써 나타난 이유가 무엇일까. 베드로는 성령을 받자 슈퍼맨이 된다. 중풍병 환자를 고치고, 죽은 도르가도 살려낸다. 감옥에서 풀려나고 환상을 본다. 초대교회 시절 성령의 역사는 대단히 구체적이며 직접적이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게끔 눈에 보이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런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가? 물론 그러하다. 몰랐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것도 성령의 도우심이요, 사십년 가까이 교회에 다니는 것도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울의 회심은 순간적이었지만 그렇게 사람마다 카이로스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러한 때가 적지 않게 있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행적을 보면 대단히 역동적이고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하다. 거칠 것이 없는 그들이 행동이 부럽고, 행동 우선의 서구적인 사고방식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보면 단순하게도 느껴진다. 깊이 있게 묵상하는 부분은 행간에 숨어져 있겠지만 사건, 사고 중심의 행전 기록을 겉으로만 훑게 되는 것을 경계한다. 바울처럼 회심 이후, 즉각적인 행동의 반전, 그리고 죽을 때까지 그 열정을 버리지 않은 아름다운 믿음의 선배에게 감사했다.
순간의 변화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설교를 듣고, 말씀을 보고, 찬양을 드리다가, 또 어느 순간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달음이 오지만 그 깨달음을 몇 시간 지속시키느냐, 삼일 지속시키느냐, 삼년인가, 평생인가는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과 기도 없이는 힘들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변함없음. 죽 끌고 가는 인내와 힘, 진정한 믿음에 대하여 바울을 보고 배울 점이 많다.
오랜만에 돈데보이를 들었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돈데보이(Donde Voy)는 나는 어디로 가나, 라는 뜻이라고 한다. 음악에 필 받은 김에 좋아하는 노래 계속 틀어놓고 김경재 교수의 <이름없는 하나님> 60여 페이지 정도 정독. 신중하게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지만 너무도 매력적이다.
진지한 종교인이라면, 자기가 귀의하는 종교적 진리에 대한 '궁극적 관심'을 갖게 마련이라고 책 서두에 밝힌 김교수는 꿀맛 같은 이야기를 솔솔 잘도 풀어냈다.
<종교적 진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진리라기보다는 인격적 또는 실존 체험적 진리이기 때문에, 종교적 진리는 그 사람에게 애정과 헌신이 동반되는 '열정'을 일으킨다...
다분히 신학적 실존의 절박한 문제에 스스로 응답하면서 동시에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충정을 지니고 이 책을 썼다고 밝힌 김교수는 일반 종교학자로서가 아니라 기독교 신학자로서, 목사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신앙 고백적 입장을 분명히 하려고 한다고 서두에 말했다.
나는 48쪽에 씌어진 대로 <종교 경전이란 개인과 집단에게 심원하고 결정적인 거룩 체험과 구원 체험과 진리 체험이 주어지고, 그것을 해당 시대 언어와 풍속과 학문 체계 속에 담아 이해한 대로 기록 전승된 것>이라는 김 교수의 말에 동감하고 공감한다. 친구가 김 교수의 논문(무지하게 두껍다고 한다)도 구입했다고 하니 앞으로 즐거운 시간이 많이 생길 것 같다.
교회 역사 자료팀 원고를 약간 펼쳐보았으나 어질어질하여 일단 덮어두었다. 프린트하면 꽤 많은 양이 될 것 같다. 교정을 빨리 보아야하는데 아직 마음이 가지 않는다. 8월 초에 집중하여 작업하기로 마음먹었다. (뒤로 빼는 재주는 남달라서...)
오후는 음악감상으로 일관. 돈데보이를 듣던 시절이 기억나고 그에 맞추어 옛 노래 생각이 나서 남궁옥분, 정훈희, 김추자, 조용필까지 국산으로 일관하여 샅샅이 들었다. 사람들이 옛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노래를 들었을 당시의 추억을 되살리려하는 욕망도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옛 노래는 추억을 부르는 초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저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저 노래가 유행할 때 나는 무엇을 했었지, 이렇게 과거의 내 자신을 계속 되살리다 보니 오후 반나절을 과거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폭 빠져 보냈다.
이른 저녁, 에 얼마 전 먹고 남은 삼겹살을 마저 구워먹음. 삼겹살만 구워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삼겹살= 안주,라는 등식이 강하게 작용하는 우리집 생래적 특징으로 보아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또 다시 집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남편과 나는 이럴 때는 어찌 그리 쿵짝이 잘 맞는지 의기투합하여 다정하게 서로 술을 권하면서 책읽기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고기가 조금 모자라 결국 햄도 굽고, 김치도 굽고 불판위에 냉장고 속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꺼내 구워먹었다. 그것도 색다른 맛이었다.
어제까지의 반성모드는 왜 술 마시는 순간에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지 나는 모르겠다. 센티해져 카페에 직접 무엇인가 주저리주저리 써서 올렸는데 확인을 클릭하는 순간, 저어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한 시간 가량 썼는데 참 아까웠지만 쓸데없는 글이어서 날아갔겠거니,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
뭔가 미진한 듯한, 한 잔 더 하고 싶은 (발설하기 매우 겸연쩍은 소망이겠지만) 욕구에 시달리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일 주일, 좀 더 말짱한 정신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천정에 붙어 있는 야광별을 보면서 '나는 어디로 가나'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가...?
술로 인한 업된 가슴이 벌떡거리는 바람에 잠은 쉽게 들지 못했지만 누워 두서없는 생각의 꼬리를 밤새 붙잡고 다닌 것 같다.
하나님. 7월에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좀 실수였던 거 같아요. 장마철이고 휴가철이가 마음이 풀어질 때잖아요. 1월에 일기를 썼다면 조금은 바른생활 아줌마의 일기가 되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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