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 구주의 귀한 인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영광 받으실 주님의 날!
오늘 소망 찬양대 찬양곡은 찬송가 편곡이다. 아주 곱고 아름다운 곡.
이른 아침 찬양 연습을 하는데 문득 알전구 켜지듯 눈에 번쩍, 하는 가사가 있었다.
<구주의 귀한 인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
구주의 귀한 인내라.... 예수님의 귀한 인내를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여달라는 뜻이렷다?
예수님은 무엇에 대하여 그토록 인내하셨을까? 음...여러가지 있겠지만 같은 죄를 되풀이 짓는 사람들에 대하여 끝없는 연민을 가지셨던 것 같다. 가르치고 가르쳐도 동문서답하는 제자들에게도 인내하셨을 터이고, 끊임없이 책잡으려 최선(?)을 다하는 바리새인과 율법사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들에게도 대단한 인내심으로 대하셨던 것 같다. 나에게 부족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인내'라는 것은 소싯적부터 알고 있었다.
찬양을 드리면서 이 가사를 마음에 담았다. 예수님의 그 귀한 인내를 알게 하셔서 그것을 배우게 하옵소서...
주일도 교회에 두 번 가는 날이다.
새벽 6시에 카풀로 교회 가서 열심히 성가연습하고, 7시 반에 시작하는 1부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오면 10시.
조금 쉬었다가 12시 반에 다시 집을 나서서 버스타고 전철타면서 교회를 가면 1시 50분 정도 된다. 2시 예배를 기다리면서 예배당에서 묵상하고 있는 시간은 참 귀하고 좋은 시간이다.
어쨌든...그러면 나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를 하루에 두 탕씩 뛰는 셈인가?
오늘 새벽에는 남편이 일어나기 싫다고 하는 바람에 남편과 같이 다시 오후예배를 드리러 갔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버스, 전철을 갈아타려니 약간 짜증이 났다. 게다가 남편은 무엇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남자속회에도 가기 싫다는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오후예배를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텼다. 마음속으로는 계속 찬양을 부르면서 말이다.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한데 속으로 찬양을 드린다니 내가 생각해도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 상황에서. 나도 나를 자알 달래는 수밖에 없었으므로 계속 마음속으로 <구주의 귀한 인내를 깨달아 알게 하시고>를 무한대 리와인드시키면서 겨우겨우 교회에 갔다.
그래도 일단 예배당에 들어서면서 남편과 나의 마음이 동시에 조금씩 누그러드는 것을 느꼈다. 가만히 옆자리에 앉은 남편의 눈치를 보니, 찬양도 예전처럼 열심히 부르고, 큰소리로 테너 파트도 넣으면서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옆 사람과 인사하세요.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이렇게 손잡고 말해주세요, 라고 했을 때, 나는 억지로라도 남편에게 눈웃음치며 말해주었는데 남편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아직은 삐쳐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어 하는 남편을 어떻게 구워삶을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괘씸하지만 꾹 참고 예배드렸다. 예배 끝 무렵 다시 목사님께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라고 옆 사람과 말하라고 했을 때도 웅얼웅얼 하는 척만 하고 시치미를 떼는 남편의 소갈머리 없는 행태를 어떻게 손을 봐줘야 할까나....!!
예배 후에 밖을 보니 엄청난 소나기가 시원스레 내리고 있었다. 문제는 우산 대신 선글래스를 가지고 왔다는 것. 하는 수없이 비가 그칠 때까지 지하 홀에서 조금 기다리기로 하였다. 구색에 맞추느라 그런지 자판기도 고장이 나서 커피 한잔 못 마시는 가려운 상황인데 역사 자료팀 장로님과 팀원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물쩍 다가서니 모두 반색을 한다.
9월 비전 선포식 때 역사 자료팀에서 미션이 또 하나 주어졌다고 한다. 에구. 엎친데 덮친격이라더니 엊그제 일 하나 주신 것도 시작도 못한 마당에 계속 일거리가 주어지고 있다. 일단 교수님이 보내주신 초고를 점검하고 각자 교정을 봐서 금요일 저녁 미팅 때 가져오기로 했다. 이번 주 휴가도 가야하고, 놀기도 해야 하는데 언제 1000장을 교정봐야할지 고민이 생겼다. 팀장이신 후배 장로님이 잘해보자고 할 때 그래도 "넵!"하는 목소리는 내가 제일 큰 것 같았다.
완벽한 화해를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전철을 타고 남편과 나는 다시 티걱태걱이었다.
"남자 속회 왜 안간다는 건데?"
"가기 싫으니까."
"교회는 일 년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거 모르시나? 찬양대도 한 번 한다고 했으면 어려운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연말까지는 끌고가야 하는데 겨우 몇 달 하고 도중하차하고, 남자 속회도 몇 번 잘 나가는가 싶더니만 오늘은 왜 그러셔?"
"그럴 수도 있지, 뭘 그래?"
"그려~? 그럼 확실히 말해, 가면 간다, 안가면 안 간다. 나는 혼자서라도 갈 테니까."
남자속회를 남편이 저렇게 꼬장 피울 때는 가끔 나 혼자 몇 번 참석한 적도 있었다. 남편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헌금기도고 드리고, 밥집도 같이 가서 혼자 실컷 먹고 와서 남편을 약올리기도 했다. 가만 눈치를 보니 남편은 무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간다고 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고, 그렇다고 안 간다고 하자니 어차피 마누라는 참석할 터이고, 그러면 그 후유증이 좀 길 것 같고.... 하도 오래 동안 같이 살아서인지 가끔 나는 남편의 머릿속에도 놀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하긴 남편도 내 머릿속에서 놀 때도 많기는 매한가지.
결국 남편이 손을 들었다. 예수님 식으로 말한다면 진정한 승리자는 미리 손을 내민 남편이겠지만.
"...갈거야."
그렇게 해서 억지로 권사님 댁으로 찾아가서 남자 속회를 잘 드리고(이상하게도 남자속회인데 기도를 나를 시키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오늘도 그러했다), 유명하다는 국수집으로 모두 자리를 옮겨서 메밀국수, 잔치 국수, 비빔국수를 취향에 따라 골라 먹었다. 나는 국수귀신이어서 잔치국수 따블을 시켜 먹었다. 그곳은 미리 말하면 똑같은 가격에 양만 많이 주는 곳이어서 다행이었다. ^^ 시원스레 국물을 들이키는데 앞자리의 권사님을 보니 내 양도 반밖에 안되는 잔치국수를 들고 쩔쩔매고 있다. 결국 그 권사님은 아까운 면발을 많이 남기셨다.
에궁, 아까워라. 마침 국수집이 우리 집 반경 오백미터 안에 있는 곳이어서 가쁜한 마음으로 걸어서 집으로 왔다. 아침은 매우 은혜로웠고 오후는 썰렁했지만 저녁은 다시 화기애애해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 런. 데. 친구들로 부터 번개 연락이 왔다. 내일 모레 일박 이일 여행을 위한 사전 점검차 모인다는 것이다.
전화를 도청한 남편의 얼굴이 싸늘해지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이를 어쩐댜...?
결국 완벽하게 화해되지 않은 미진한 상황에서 다시 번개를 맞으러 가다. 매우 찜찜했지만 더 찜찜하신 남편이 계시므로 야밤에 집을 나서는 주제였기에 약간 고개를 숙이고 미안한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일찍 온나!"
"넵!"
대답은 커다랗게 했지만 밤 9시에 시작되는 번개가 대체 언제 끝날지는 하나님만 아시는 일일 터. 나는 마음속으로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이미 털어버린 상태였다.
그리하여 버스타고 택시타고 달려간 번개 모임. 나까지 합쳐야 겨우 세 명이었지만 모인 인원이 적을수록 이야기의 심도는 매우 깊어진다는 사실. 각일병씩 꿰차고 앉아 갱년기 여성에게 오는 여러 가지 증상 중의 하나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기를 무려 4시간. 이야기의 수렁에서 모두다 깊이 빠져있는 그 때, 느닷없는 휴대폰 벨소리! 집에 있는 남편, 이라고 글자가 뜨는 순간, 제정신이 돌아온 나, 살짝 무서워하며 전화를 받음.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남편이 휴대폰 저쪽에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대체 지금 몇 시얏!!"
"지금 가요 있어요~~"
약간 맛이 간 친구들이 그 소리를 듣고 낄낄거리는 소리가 저쪽까지 전해진 모양이었다.
"아직도 놀고 있으면서!!"
"당장 뛰어갑니당~~"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마나, 밤 1시가 넘어가는 중이었다. 우리는 눈이 동그래져 그 자리에서 해산하고 죽자고 뛰어갔다. 총알택시, 역시 빠르기도 하여라. 상상할 수 없는 초고속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부자리 끄트머리에 쪼그리고 누워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면서 눈치만 살피다가 고요히 잠이 들다...
반성! 내일 하루는 온전히 남편에게 바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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