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비참한 결산, 하지만!
너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산책 먼저 하기로 했다.
하늘을 보니 그다지 흐린 것 같지 않아서 -일기예보에서도 오후 늦게 소나기가 온다고 했으므로 - 선글래스 끼고 99곡이 장전되어 있는 휴대폰 내장 음악을 랜덤으로 들으면서 꿈속같이 기분 좋은 천변을 걸었다.
오전 7시 즈음의 천변은 싱그럽고, 그리고 무한대로 아름답다. 풀 섶을 보면서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그네들의 언어를 찾아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풀과 나무와 물, 하늘, 그리고 따스한 흙에 대하여. 나는 자연의 깊은 맛을 알지 못한다. 완전 서울내기이기 때문에 마음이 매우 건조하다는 것을 절감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요즘 들어 천변을 걸으면서 새삼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움에 대하여 경탄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 사람들의 표정은 제일 활기차 보인다. 건전한 인간 같으니라구!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될 수 있으면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야 한다, 는 착한 결심이 얼굴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천변 다리 기둥에 붙여진 광고 종이를 발견.
기타 강습! 개인레슨, 출장레슨 가능. 처음부터 성실하게 잘 지도하겠습니다.
한 달 전인가 사 놓은 그대로 케이스 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기타가 빛나려면 아무래도 레슨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해 놓았다. 부디 2, 3개월 후에는 남편의 반주에 맞추어 포크 송 몇 개는 부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두 달 레슨비 정도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갖다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천변을 겨우 터닝 포인트 했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진다. 나는 얼른 선글래스를 벗고 심호흡을 깊게 했다. 비를 맞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다. 나는 제법 굵은 빗줄기를 맞으면서 될 수 있으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려고 노력했다. 머리카락이 이내 축축하게 젖고 옷에도 빗줄기가 스며들어 무거워졌다. 조깅하던 몇 사람이 앞으로 뒤로 분주하게 뛰어가고 있다. 뚝 뚝, 앞머리에서 빗물이 흘러내렸다.
이게 바로,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고 비를 맞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므로, 그리고 이런 기회 정말 흔치 않으므로 나는 더욱 보폭을 좁혀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걸어갔다. 이번 주 비가 많이 오신다고 하니, 일부러 우산을 들고 나가지 말자. 빗줄기가 굵어져 눈치가 보이면 어? 몰랐네, 하는 표정으로 어깨 한 번 으쓱해 주는 거지, 뭐...
비가 오면 미친듯이 잔디밭을 뛰어다닐 수 있는 친구의 별장이 물 건너갔으니, 이렇게라도 나의 욕망을 해소시켜야겠다고 나는 결심에 결심을 거듭하면서 걸었다.
몇 년 동안 친구 별장에 놀러가면서 비가 왕창 오기를 그토록 기도했건만 살랑거리는 비 밖에 오지 않아 나를 무척 실망시켰던 기억이야 말해 무슨 소용 있으리요마는...
비를 홈빡 뒤집어쓰고, 100주년사 원고 1, 2가 나를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숙제는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하기 싫은 법. 나는 한참을 마리서원(내가 일전에 얘기해 주었지요? 내가 글 쓰고 책 읽고 피아노치고, 하여튼 나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방인, 나의 서재이름)에 들어가지 않고 딴 짓하다가 겨우 마음잡고 들어갔다.
뒤늦은 묵상, 기도, 성경.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세 번 부인할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 말씀.
이 말씀이 7월의 결론인 것 같다. 예수님은 사단이 청구한 나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기도하셨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려는 것이 아닌가!
비록 7월 한 달 동안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음주가무를 즐겼지만, 예수님의 기도 덕택으로 지금까지 별 사고 없이, 감사하게도, 7월을 마무리 할 수 있게 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
<당신이 간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멘, 주여, 감사합니다.
내, 비록 아침의 주님을 만나고 저녁에도 또 다른 주님을 만났지만 저녁의 주님을 만나는 순각에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해 주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나의 호흡 속에, 나의 주변에, 나의 모든 것에 예수님의 말씀이 녹아 있어서 로고스로 나를 일깨우시고 가르침을 주시는 순간들을 나는 체험하였습니다. 감사하신 예수님!
100년사 초고를 프린트 했다. 매우, 많다. 이것을 제대로 교정 보려면 일단 배가 든든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뱃심으로 산다지 않던가! 이리하여 착실하게 식사를 마치고 다시 좌정하여 앉았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작업을 위한 베이스 음악 깔기로 샹송, 칸소네, 정경화 바이올린 소품집, 베토벤 현악 4중주, 듣고 싶은 올드 팝 40 등등을 이어듣기 실행하는데 겨우 이십분이 채 안되어 무산됨.
청평가서 장어 먹자는 친구의 전화가 왔으니 내 어찌 책상 앞에 붙어 있으리요!
하지만 지금은 휴가의 피크 때, 그것도 오후에 청평까지 기어가려면(물론 친구의 차로 가는 것이지만 ㅋㅋ) 필경 내일 새벽은 되어야 잘 구운 장어 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친구 부부를 회유하여 동네 탕집(수육을 아주 잘하는) 낙찰시켰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여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드라이브 리, 라는 별명도 하나 간직하고 있는 내가 길이 막힌들 두려워할 것이며, 한밤중에 식당을 찾게 된다한들, 그것 때문에 청평 행을 사양한 것은 아니었던 것을 이곳에는 말해야겠지.
솔직한 내막은 이러했다. 엊그제 나의 일기 한 쪼가리를 소중하게 집어다가 시 한 편을 만들어 낸 시인과 그 동조자 몇 명과 은밀한 번개가 저녁에 있었던 것이다. 몇 시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는 선약이 있으므로 밤 10시경에나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질을 주었으므로, 나는 기필코 동네 식당으로 가야했다. 청평에 가면 오늘 안에 못 들어온다는 것은 확실하므로.
그리하여 친구 부부와 시퍼렇게 물결치는 논이 이 미터 전방에 있고 풀숲이 우거진 야외 평상에 걸터앉아 열심히 들기름과 들깨가루를 비비면서 수육 먹기에 골몰하였던 것이다. 나는 부추와 함께 먹는 수육을 무지하게 좋아하는 고로 내 몫이라 생각되는 양은 확실하게 챙겨 먹었다. 이어 나오는 푸짐한 탕 역시 맛이 장난 아니었지만 그 아까운 고깃점을 많이 남길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 야외 평상에서 수육과 함께 마시는 술은 웬만큼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차 번개를 위하여(그곳에 모인 친구부부와 남편은 도무지 알 수 없는) 휴가 때처럼 절도 있게 잘 조정하여 마셨다. 하지만 남편은... 거의 기절하였다... 분위기 짱, 맛 짱, 기분 짱이니 몸의 신진대사가 너무 원활해졌던 모양이었다.
시체수준인 남편에게 아양을 떨었다.
"여보, 지금 집 옆에서 나를 만나자고 한 무리가 모였다네."
(눈을 게슴츠레 뜬 남편, 술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이 관대해지는 남편 왈): "그래? 그럼 얼른 가야지."
나는 시계를 보았다. 밤 9시 반을 넘어서고 있는 시각이었다. 매우 바람직한 시간이다. 자정까지 놀면 되겠네.
"그럼...갈...까?"
"잘 다녀와~"
"넵, 오늘 안에 들어오도록 하겠습니당~~"
집에서 오 분 거리에 있는 우리의 단골 선술집으로 향하면서 아주 잠깐 반성했다. 결국 7월의 마지막을 술자리에서 마감하게 되는구나... 하지만 나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이 - 술 한 잔 했으므로 기분이 업되어 더욱 신나게 - 선술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시인 두 사람, 동화작가 한 사람, 장래가 촉망되는 소설가 한 사람, 그리고 엽편 소설가이자 타로점을 쳐주는 무녀가 모여 무아지경을 누리고 있었다. 반갑게 하이파이브하고 계속 진행된 술자리는 결국 12시 반이 넘어서야 끝이 남.
서로의 시에 대하여, 산문에 대하여, 소설에 대하여, 작금의 문학에 대하여, 서로의 영혼에 박혀있는 문학에 대한 열정에 대하여 눈을 반짝이며 술잔을 나누다보니 시간은 화살처럼 쏜살같이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헤어지기 전에 허그.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사랑하고, 살아갈만한 이 세상을 사랑하고, 가슴에 독처럼 박혀있는 우리의 결핍을 사랑한다, 고 서로에게 말해주었다.
집에 와서 휴대폰의 알람을 다시 맞추었다. 내일 8월 1일 새벽에 교회에서 초하루기도회가 있는 날이므로 4시로 시간을 변경.
설마, 8월도 마음대로 퍼져 산, 7월 같을까... 내일 밤 rpt세마네 기도회를 기대한다.
질병과 치유의 역사 3탄 - 마음의 쓴 뿌리를 제거하라 에서 왕창 은혜를 받으면 이제 나는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나는 다시 엊그제 은혜 받은, 나에게 주신 말씀을 가슴에 새긴다.
취미가 죄로 변질되지 않도록 절제하라!
추신:
8월 1일 묵상
<오직 성령의 열매는.... 절제니 -갈라디아서 5:22~23> 허걱, 하나님이 또 나에게 확인사살을!
<절제와 자기 부인을 실천하며 살아야만 기도를 드릴 마음과 힘이 생깁니다. 아무리 당연한 것일지라도 자발적으로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면 능력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멘!
기도할 내용:
누구나 하늘을 향해 작은 화살 같은 기도들을 쏘아올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도를 드리려면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당연한 일일지라도, 그것을 스스로 절제해야 합니다. ...
첫 소득을 주님께 드리듯, 먼저 기도를 하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여가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이것은 제가 확실하게 잘 지키는 거 하나님 아시죠?)
고상하고 심지어 유익하게 보이는 일들이 기도 시간을 내는 데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것이 항상 최선의 것에 원수가 되기 마련입니다.
블로그에 8월 카테고리를 만들고 짧은 글을 써놓았다. 정말 다중적인 나의 페르소나!
나는 너를 반으로 잘라버리겠어
고생대 충적층에 부정합으로
피복되어있는 우표처럼 고요한 나의
언어, 네가 기억하지 못하므로 더욱 가난해진
나는
반토막낸 너를 향하여 가겠어,
큼큼 너의 배꼽에 혀를 대고 삼십 년 보다 더 긴
너의 사정시간에 대하여 스톱 워치를 눌러버리겠어
나는 너를 뒤집어 버릴거야
부황 뜬 나의 어깨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이야기들을 길게 찢어 너의 목에 걸어줄거야
그리고는?
500마일을 걸어가는 거지, 너의
운명이 가리키는 바다의 가장 깊은 곳까지
그리고 8월 1일 오후가 된 지금 나는 저녁의 교회 겟세마네 기도회를 열망한다. 그곳에서 나는 언제나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잘못 진행되는 나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조정할 것이다. 7월이 비록 비참한 결산이지만,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드린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들어가지 않는 일이란 없다>는 말씀에 의지한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귀에 들어가서, 그래서 이 후의 나날들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 ♦
(한달 동안의 일기가 이렇게 비참하게 끝날 줄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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