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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성지순례

32. 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잃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이스탄불, 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잃었다.

스무 명이 넘는 일행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쪽에서 보면 내가 사라져버린 것이었겠지만. 메인스타디움만큼이나 넓은 성당이었다.

나는 2층 회랑에 기대어 멍하니 아래층에 개미처럼 보이는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잠시 잊었던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있어야 할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수많은 단체관광객들 사이를 비집고 낯익은 얼굴을 찾기 시작했다.

...없다, 없다, 없다...

800미터 트랙 같은 2층을 두 바퀴 돌았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거의 달렸다고 해야 옳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행을 만날 기회는 희박해졌다. 헉헉거리며 한참 뛰어다니던 나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발길을 멈추었다. 나는 분실물처럼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가? 어떤 무생물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는가? 누군가 나를 찾으러 되돌아올 때까지?

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어느 곳에 서 있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성당은, 너무, 넓었다.

그날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밤 여덟시에는 공항으로 가야했다.

또 그날은 나의 생일이기도 했다. 소피아 성당을 관광한 후,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전세 유람선을 타고, 나의 생일 파티를 할 예정이었다. 순박해 보이는 터키가이드가 일정에 참석하지도 못하고 나의 생일 케이크와 샴페인을 사느라 시내를 헤매고 있을 시간, 주인공 나는 막상 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2층에서 1층으로 통하는 계단도 한 두 곳이 아니었다. 성당 출입구도 몇 개는 되어 보였다. 언뜻,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들어가는 곳과 나가는 곳은 다릅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느 출입구일까. 내가 이렇게 헤매는 동안 일행들은 나를 찾으러 다니고 있겠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엉겼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에서 찾을 수 없으면 공항으로 직접 가는 수밖에 없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를 어떡해하지?

그런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잃고 싶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랐다. 아아, 나는 그동안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길을 잃고 싶어 했던가!

그렇다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로군.

한 시간 쯤 기둥 뒤에 주저앉아 쉬고 있다가 슬며시 밖으로 나가면 그곳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일행은 나를 분실 신고(!)를 할 것이고, 잠시의 혼란을 겪은 후에,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르겠다, 일행 중 한 사람은 남아서 분실물이 되어버린 나를 찾느라 동분서주할지도.

관광객들의 발끝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마치 인종박물관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신고 있는 신발도 각양각색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많은 길을 걸어온 통가죽 신발이다. 이제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은 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저 신발로. 두 달 쯤 후에는 모슬렘이 되어 두 눈만 내 놓은 채, 이스탄불 거리를 걸어갈지도 모르겠다, 저 신발로.

해프닝은 이십여 분.

성당 밖으로 나오자, 초조하게 기다리던 일행들이 박수를 치면서 맞이했다. 길을 잃고 헤맸던 나보다 일행들이 더 놀란 모양이었다. 터키에서 영원한 미아가 될 뻔한 나를 그들은 감격스럽게 얼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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