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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성지순례

33. 블루 모스크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블루 모스크에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양탄자를 밟으면서 그들의 기도처를 둘러보았다. 종교는 위대하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종교는 아편일지도 모르겠다. 온종일 약효가 지속되고 일주일은 너끈히 가며 어떤 사람에게는 일년 동안 십년 동안, 또는 일생동안 지속되는 효능이 있는. 종교는 중독성이 있다. 담배보다, 술보다, 섹스보다 더 윗길이지 않을까. 세상의 어느 인간이 담배나 술 때문에 가미가제 특공대처럼 목숨을 바치고 순교자의 칭호를 얻는단 말인가. 죽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이상한 효능은 세기의 거대한 전쟁의 대부분의 빌미로 이용되었다.

나 역시 하나님께 중독되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중독, 이라는 단어가 쫌 괴이쩍지만 나에게는 가장 어필되는 단어로 각인된다.

가장 힘든 일이 있을 때, 즐겁거나, 외롭거나, 노래하고 싶거나, 울고 싶거나 간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

어느 때는 내 맘을 몰라주는 하나님이, 내 뜻대로 절대 못살게 훼방 놓는 하나님이 정말 미워서 에이, 이제는 정말 상종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해도, 반나절도 지나지 않다 다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는 하나님 중독자.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취미가 아닐까, 하면서 하나님이 과연 나를 사랑하는 거 맞아/ 하면서 나를 거의 반미치광이를 만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인 것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이 되면 하나님, 죄송스럽슴다, 하면서 흑흑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하나님 중독자가 바로 내가 아니런가.

 

모슬렘처럼 양탄자에 엎드려 하나님 앞에 빡 센 기도를 드리고 싶지만 꾹 참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아니, 듣는 척 했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처럼 자꾸 촉촉해 지려고 하는 눈을 비비면서 시편 22편을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소피아 성당에서 길을 잃을 뻔하면서, 나의 무한대로 뻗은 방황기질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경고 한 방을 날리신 것을 나는 안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속삭임을 들려주셨다.

너는 내 것이야!

 

하나님께 소유권을 이전해 드리고 오벨리스크를 관람했다. 길고 뾰족하고 우람하다.

차가운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제법 싸늘하게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우중충하고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나의 마음을 찹찹하게 만들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었다. 이제 곧 여행이 끝난다는 것.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 그 어지럽고 힘든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 것이다. 신데렐라의 멋진 무도회가 끝날 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이스탄불 시내를 달리는 기차인지 전철인지를 탔다. 가이드의 도움으로 티켓을 끊고 터키 사람들과 함께 몸을 부비면서 창밖의 경치를 구경했다. 진짜 여행은 유적지나 관광지를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것이리라. 겨우 몇 정거장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사람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일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알겠다. 그렇게 해서 널찍한 공원 근처에서 내렸고, 로마 시대 지하 물 저장 시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지하 물 저장 시설을 거닐다가 보았다. 메두사를.

메두사의 머리 부분이 기둥 받침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 기이한 모습을. 조명이 비춰진 메두사의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나는 숨이 막혔다. 그 슬픔.

너무 슬퍼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짤칵, 하고 사진을 찍는 순간, 메두사의 신음도 같이 찍힐 것 같았다. 그 사진을 현상하면 메두사의 고통까지 고스란히 보일 것 같았다. 나는 그 거대한 지하 물 저장 시설에서 단 한 장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곳은 그냥 잊혀졌으면 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지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