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도 눈을 반짝 뜨고 하루가 시작된 것을 완전 기뻐하며 교회에 갔습니다.
일기예보에서는 춥다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조금도 춥지 않고.
어둑한 예배당에 앉으니 또 다시 밀려오는 감동.
하나님, 이러케나 맨날 천국을 맹글어주시면 난 어떡하라구요. 꼭 무엇인가 바쳐야 할 것 같고
내 시간을 드려야할 것 같고, 은행에 달려가 신사임당이라도 하나 뽑어 드려야 할 것 같은 마음.
기도를 하는지 마는지 그냥 싱글벙글, 하나님 너무 감사해서 이를 어쩐대요만 연발하다가
행복에 뻑 간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허수경 시집을 두 편 필사하면서 다시 감상에 흠뻑 젖어 있는 그 시간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지!
창원 산타가 준 더치커피를 마시면서, 세음에서 들려오는 러시아민요도 따라부르며 문라잇소나타도 감격으로 들으며 감사했습니다.
세상에서 나처럼 멋진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구 햇, 하면서.
그리고 시작되었네요, 35분간의 기적.
백옥처럼 하얀 쌀을 씻어(그래뵈도 햅쌀이라고 인증마크가 있는) 쿠쿠 밥솥에 넣고 누르니 밥하는 시간은 35분입니다, 하고 어여쁜 목소리가 안내방송도 해줍니다.
35분.
깍두기만한 소고기를 잘게 썰고 참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볶았습니다. 아, 고소한 냄새. 마늘도 양껏 넣었지요... 바글바글 미역국이 끓고 있는 동안 며칠 전에 사서 쟁여놓은 한돈(그래뵈도 한돈이라는거. 수입돼지고기 아니라는거!) 앞다리살에 소주 콸콸 붓고(마시지 못하니 여기에라도 풍성하게 넣어버리잣 하면서) 갖은 양념하고 양파는 고기양만큼이나 풍성하게 넣고 볶았습니다. 처음에는 물이 많이 나오지만 계속 불 곁에서 서서 저어주면 어느새인지 물기가 자작하게 줄어들고 맛있는 돼지고기볶음이 됩니다. 양파 한 쪼가리 먹어보니 와, 간이 딱 맞다!! 신났습니다.
미역국 올려놓은 불을 줄이고 박피들깨가루를 자그마치 다섯 수저나 풍풍 떠서 넣었습니다. 그래서 영양만점 들깨 미역국이 되었네요.
다시 냉장고를 열고.
해동시켜놓은 메밀전병(그래뵈도 풀무원이랍니닷) 두 토막을 기름 살짝 두르고 굽기 시작했습니다. 약한 불에 노릇노릇 메밀전병이 익어가는 모습은, 음.....황홀의 극치.
미역국도 맛을 보는데 눈이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것이었습니다.
작게 틀어놓은 음악은 어찌 그리도 아름다운지요. 마치 춤을 추듯 작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데 치익, 밥이 뜸드는 냄새 고소하기도 하여라.
그 사이 남편님이 깨어서 손이 저리다고 엄살을 떠시는 바람에 날쌘돌이처럼 달려가 조물조물 해주었습니다. 헤, 눈을 감고 좋아하는 남편님. 보소, 제발 늘 그렇게 웃으며 삽시다요.
그만하라는 소리 절대 안하는 남편 손을 한참이나 마사지해주다가 지쳐서 일어났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생략해버리는 저 남편님을 하나님은 이뻐하신다니 할 말은 없었습니다요.
그 사이 쿠쿠밥통님이 말씀하십니다.
밥이 다 되었습니다. 잘 저어 보온하십시오.
앗, 35분이 그렇게 지났습니다.
세상에. 첫눈보다 더 하이얀 밥을 살살 젓는데 눈물이 나올만큼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윤기가 잘잘 흐르는 밥으로 아침상을 차리면 우리 남편님 꿀맛이겠다....
고기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고깃점만 골라드시는 남편님 돼지고기 볶음 드시면서 맛나하시겠다...
들깨미역국 후루룩 남은 국물도 다 마셔버리겠지, 메밀전병은 두 조각만 먹으라고 해야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쌀을 앉치고 밥이 되어갈 동안에 더할 나위 없는
35분간의 행복을 맛보게 하여주시니.
이것이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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