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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나의 스토커

5일 - 반성모드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3.

5일 - 반성 모드

 

 

어제 늦게 잠들었건만 5시에 눈이 떠진다. 그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새로운 날, 새롭게 주님을 만나는 시간.

밖은 이미 훤하다. 여름의 아침은 빨리 온다. 나는 빨리 늙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경건의 시간을 가지면서 성경을 읽는데 또 퀘스천 마크가 생긴다.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구절들이 요즘 들어 새삼스레 불쑥 불쑥 다가온다.

 

요한복음 13장 34절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예수님이 와서 새 계명을 준다고 말할 만큼 놀랍고 신기하고 새로운 계명인가?

그렇다면 이제까지 유대사람들은 어떤 계명을 가지고 있었더란 말인가. 십계명이나 율법에는 서로 사랑하라는 대목이 없었던가? 아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기 전에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살았단 말인가? 부모 자식 간에 이웃 간에 친척 간에 한 동족 간에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더란 말인가? 

아니, 그 시절에 유대인들이 얼마나 매몰차고 냉정했으면 예수님이 그런 계명을 새 계명이라고까지 하면서 말씀하셨을까. 식민지 삶이 핍절하여 사랑에 대하여 아예 눈 돌리지 않고 살았던 것일까?

아니 계명을 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사람이 태어났으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설마, 예수님이 그런 상식적인 사랑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혹시 모른다.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자기중심주의, 극단적 이기주의, 자신을 위해서라면 눈앞에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앞이 안 보이는 에고이스트들에게 경고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바로 나인데...

나는 예수님께 항변했다.

하지만 예수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무진장 노력은 하고 있잖아요.

요즘 들어 제가 마음에 미움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피나게(?) 노력하고 있는 거 다 아시면서!

연필을 입에 물고 한참 있는데 어디선가 말씀이 들려왔다.

더욱 열심히,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입에서 아직도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다시 양치질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술자리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요즘 들어 너무 잦아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7월 들어서도 술로 시작하고 그제와 어제도 벌써 일주일 사이에 3번이나 술자리가 있었다.

반성 모드.

 

고혈압 때문에 월례 행사로 늘 다니는 동네 병원을 갔다.

혈압을 재던 이쁘장한 여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네요. 혈압이 많이 올랐네."

"아, 그게... 지금 막 뛰어와서 그런가...요?"

계속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거리는 나의 주치의.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요즘, 실은 거의 두 달 째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의 술자리가 있었노라고, 요즘 나에게 '산책'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 오래이며, 헬스는 두 달째 땡치고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어물쩡거리는 나를 한참 바라보던 의사가 말했다.

"오늘은 그냥 가시구요, 월요일 다시 한 번 오셔서 재 봅시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딱지를 맞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또 다시 반성 모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비오는 천변을 우산 쓰고 산책했다.

하나님께 애교와 앙탈과 회개와 아양과 협박의 기도문을 한 시간 동안 -기분에 따라 - 올려드렸다.

몇 달 째 매우 흐트러져 있는 자신을 반성합니다. 아니, 기독교적 용어로 말씀 드릴께요. 회개합니다.

하나님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때에 따라 혹시 두 번도 있을 수는 있지 않을까요- 술자리를 허락해 주십시오.

앞으로는 근신하여 약속 조절, 번개 조절을 자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좀 우울해졌다. 요즘 들어 술이 왜 그렇게 따라붙는지 나도 정말 알 수 없었다.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으면 술을 끊어야 할 수밖에 없다는 대명제 하에 나는 사뭇 비장한 기분이었다.

성령의 여덟 가지 열매 중 가장 마지막이 바로 절제 아니던가.

누군가 말했다. 절제가 가장 힘드니까 성령의 열매 중 제일 마지막에 대롱대롱 달려있다는 것이다. 아멘.

 

담배도 그렇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다시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해주세요.

그 기도의 응답이라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두 달 전부터, 정확하게는 지난 5월 1일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단서는 있다. 밖에서 술 마실 때만. 일단 그렇데 나를 심하게 압박시키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너무 풀어지면 이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줄담배를 피우게 될 것이고 그러면 예전처럼 그것에 끌려 다니게 되는 노예 같은 상황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자유롭고 싶었다. 내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 끊을 수도 있는 자유를 내가 온전히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엊그제 인디오에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담배 피우게 해달라고 일 년 동안 떼써서 겨우 허락받은 거라고 말해줬더니 친구들이 다 쓰러졌다.

그 기도를 일 년이나 들으신 하나님이 심히 괴로우셨을 거라고.

처음에는 내가 혹시 잘못들은 것이 아닐까 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귀를 좀 의심했을 거라나.

 

집에 돌아와 샤워. 그리고 내일 부를 성가곡 연습.

피아노를 띵띵거리면서 내일 성가와 그 다음 주 성가까지 열심히 불렀다. 애매모호한 음정을 정확하게 잡고, 그리고 가사가 입에 붙도록 여러 번 연습했다. 내가 존경하는 부류 중 하나가 바로 클래식 작곡가다.

기분이 나는 김에 옛날 피아노 연습곡 집을 꺼냈다. 나달나달해진 겉장이 기어이 뜯겨져 나간 소나티네 앨범이다. 바흐의 평균율 피아노 곡집 제 1번은 프렐류드. 구노가 아베마리아의 반주에 썼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곡인데 단순하면서도 매우 감미롭고 느낌이 좋다.

아래 덧줄에는 '일견 간단한 것 같지만, 이곳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치려면 무척 힘든 곡이다'라고 씌어있다.

과연 그러하다. 서너 번을 연거푸 쳤지만 느낌이 완전하게 오기에는 악보 보기에 너무 급급하다.

가스펠과 찬송가를 자유자재로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일 년만 배우면 될 터인데...

7월은 일기 쓰는 것으로 그냥 즐겁게 보내고 8월은 심신을 평안하게 놀리면서 책이나 실컷 읽고 싶고, 9월부터 개인레슨이라도 받고 싶다. 희망사항에 적어놓아야겠다.

올해는 가스펠, 찬송가 섭렵!

 

별 약속이 없는 날은 저녁을 금식하기로 했으므로 꼬르륵거리는 배를 살살 달래면서 저녁나절을 보냈다.

내일, 주일은 오후 예배까지 교회에서 지낼 예정이다. 일찍 잠을 자야한다. 나는 11시 땡 치는 소리를 듣자마자 졸립거나 말거나 그냥 자리에 누워버렸다.

하나님, 내일 주일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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