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 월요일은 쉽니다
새벽 5시 묵상. 닉 해리슨의 숭고한 기도 중 오늘의 날짜에 준하여.
하나님은 기도가 얼마나 세련되고 격조 있는가 하는 것을 눈여겨 보시지 않습니다. 얼마나 길게 드리는가 하는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드리는가에도 무관심하십니다. 훌륭한 운율과 음성과 짜임새 있는 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진실한가, 얼마나 마음이 실려 있는가, 그것을 하나님은 주목하십니다.
-토머스 브룩스
기도할 내용: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기도들의 공통분모는 겸비의 심정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기도를 드릴 때는 철저히 정직한 자세를 취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감언이설로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읽기에 따라서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말씀이다. 잠시 가만히 앉아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솔직하게 기도 했나 점검해 보았다. 사실 하나님께도 면목이 없어 슬슬 포장하는 기도도 적다고 할 수 없다. 앗, 죄송!
요한복음 14장 존대어 버전으로 읽기
*존대어 버전이란 :예전, 어느 전도사님(지금은 목사가 되었다)이 성경공부시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한국의 성경책에는 모두 반발체로 되어 있지만 원문에서도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현대어에 맞게 개정할 때 늘 그것이 문제되었지만 보수적 교단들의 반대로 무산되고는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존대어로 바꾸어 읽어보십시오. 색다른 느낌이 날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나는 존대어로 바꾸어 읽는다.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으십시오. 내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여러분이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고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갑니다. 내가 가서 여러분이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여러분을 나에게로 데려가겠습니다. 내가 있는 곳에 여러분도 함께 있게 하겠습니다.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진정으로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
나는 여러분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여러분에게 다시 올 것입니다...
나는 나의 평화를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아, 정말 존대어로 읽을수록 더욱 은혜롭고 마음이 따사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 그랬지.
상대방을 높이면 내가 높아집니다, 라고.
날은 밝은지 오래인데 몸이 녹작녹작하여 자꾸 눕고 싶어진다. 목회자도 아닌데 나는 월요일이면 그저 쉬고 싶은 마음뿐이니 참 이상하지 않은가.
커피 한 잔 마시고 육신을 아주 편안하게 늘어뜨린 채 늘어지게 한 숨 주무셨다.
병원에 가서 의사 앞에 다시 팔을 내밀었다.
의사 :어디 봅시다. 그 때는 뛰어와서 그랬는지...
나: (찔끔하면서) 꼭 뛰어와서 그랬다기보다는...
혈압계를 세심하게 살피던 의사가 말했다.
"그 때보다 조금 내려갔네요. 일단 그대로 유지합시다."
나는 휴, 한숨을 쉬었다. 어제 밤 유혹을 뿌리치고 술 마시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병원이 있는 상가 계단을 내려가다가 광고를 보았다.
재즈, 가스펠, 찬송가, 오카리나 등 레슨. 주 1회 상담실로 오세요.
오카리나는 두 달 전에 샀는데 아직 한 번도 불어보지 못했다. 운지법이 이상하고 낯설어서 배우지 않고는 힘들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가스펠 연주법을 가르쳐준다니!!
나는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김선우 시집을 읽었다.
기형도 전집과 함께 이번 수요일 독서회에서 다룰 책이다.
오늘 내일은 아무래도 시집과 함께 살아야 할 거 같다.
그녀의 시는 쉽게 젖어들지 못한다. 그것은 나의 한계이다. 그녀의 시보다 그녀 시집 뒷ㅍ지에 벌겋게 써놓은 말들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시인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일까, 나에게 시인은 애증의 대상이다.
...그리워하면서 나는 쓴다. '쓴다'의 거리감 속에서 세계는 서둘러 혼연일체가 되지 않는다.
저마다의 싸움으로 쟁쟁한 존재의 고투 속으로 몸과 마음의 오감을 들이민다. 들이밀면서 때로 내가 먼저 지치기도 하고 나의 감각이 너의 감각 속으로 스미는 환희를 드물게 맛보기도 한다.
나는 나이고 나 아니기도 하다.
나는 다른 너와, 나이기도 한 너를 우리라고 할 수 있다면, 시 쓰기는 우리의 쓸쓸함과 슬픔과 아름다움에 몸을 바싹 붙이는 일.
몸과 몸의 경계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경계를 지우거나 넘어서는 일.
'지금 여기'의 이 아득한 거리감 속에서 오늘도 나는 쓴다.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세상의 하루해를 지지고 볶으며 그리워한다.
떠도는 몸들이 벌이는 쟁투의 고단한 흔적들.
그 속에 무언가 '쓰는'자로 기꺼이 남고자 하는 내 모든 행/불행의 뿌리와 꽃들에 입 맞춘다.
오, 자유!
그녀의 말이 내 안에서 다시 싹이 튼다.
무언가 쓰는 자로 기꺼이 남고자 하는 내 모든 행/불행의 뿌리와 꽃들에 입 맞춘다. 오, 자유!
그 말은 그녀의 말이기도 하고 내 안의 외침이기도 하다.
나는 나이고 나 아니기도 하다. 오, 자유!
믿음의 동역자인 친구가 전화했다. 콩국수 먹자!
서리태 콩국수를 먹으며 친구와 어제 읽은 요한복음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나는 친구의 말이 듣고 싶었다.
"왜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새 계명이라고 일러주셔야 했을까?"
친구의 대답은 즉각적이고 명료했다.
"당연하지, 사람들이 어디 사랑하고 있니? 극단적인 이기주의, 나만 아는 세상이 비단 현재뿐이었겠어? 사람이 존재하는 곳에는 늘 그렇게 드러나게든 드러나지 않게든 물어뜯고, 질투하고, 남을 밟고 위에 올라서려고 하고, 남보다 잘 살려고 얼마나 아우성을 치고 사는지 예수님이 꿰뚫어보는 거지. 그래서 입이 닳도록 말하고 또 말하고 지겨울 정도로 되풀이 하는 말씀이지. 신약의 말씀을 요약한다면 그것 아닌가? 서로 사랑하라. 하긴 구약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에 중점을 둔 것 같고"
나는 친구의 말에 안심했다. 코드가 비슷하니까 만나는 것이겠지만.
나의 완악함, 비열함, 유치함과 늘 도사리고 있는 죄성을 비추어보건데 사람은 원래 악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철저하게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몇 몇 사람들을 우리는 숭앙하고 존경하고 있지 않은가.
포삭포삭한 하지 감자 한 포대가 생겼기 때문에 감자 샐러드, 알감자 조림을 만들었다. 저녁에 오리탕을 만들었다. 만들면서도 걱정 한 바구니였다. 이거..분명 안주감인데 이를 어쩌나...
아니나 다를까 결국 남편과 함께 소주병을 땄다. 딱 석 잔만 마시려고 했는데 예닐곱 잔은 마신 거 같다.
한 병을 안 채운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술을 마시니 기형도 전집도 잘 안 넘어가고, 마악 업이 되려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다. 게다 술 마시면 따라오는 그 집요한 흡연의 욕구!
결국 뒷 베란다에서 몰래 담배 두 대 피웠다. 일명 반디족이 된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한숨 섞인 기도를 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담배 냄새, 술 냄새 나는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셨는지...
막 자려는 순간, 미국에 사는 친구로부터 전화.
쫄딱 망해서 미국간지 어언 이십년이 되어가는 친구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사는 것이 힘든 모양이다. 마치 연애하듯 한 시간씩 전화를 붙들고 늘어지던 친구가 나에게 미션 한 가지를 주었다. 대학교 때 만났던 남자친구를 한 번 수소문해달라는 것.
"얼마 전 꿈에 보았는데 말이야. 어쩐지 죽은 것 같아. 생사여부라도 좀 알 수 없을까."
나는 그러마고 했다. 친구가 이름, 나이, 출신학교, 고향 등을 알려주었다. 나이가 쉰을 넘어가니 옛날 사람들이 하나 둘 그리운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청순하고 꿈 많았던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전화를 받고 나서 알려준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한 사람이 떴다.
나이도 얼추 비슷하고 알려준 생김새와도 비슷한 것이 필이 왔다. 칼럼도 쓰고, 나름대로 성공한 인물이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 남자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적당하게 늙은 점잖은 얼굴이다. 그 남자의 기억 속에는, 스무 살 어귀의 청년 시절에 잠시 만났던 내 친구가 아직도 저장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술김에 옛날 나의 남자친구도 한 번 검색해 볼까 하다가 그냥 자리에 누웠다. 벽에 붙여놓은 야광별이 잠시 동안 빛나는 모습을 보았다. 한 때 별처럼 빛나던,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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