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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각하라

교회에서 노는 사람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5.

 

교회에서 노는 사람들

 

 

 

교회에서 놀아본 사람들만 아는 비밀이 있다.

하나님 치마폭아래서 노는 것도 세상 연락 못지않은 즐거움을 동반한다는 것.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겠다.

대체 온종일 교회에서 뭘 해?

목사님의 협박에 의해, 교회내의 강권적인 어떤 체제 때문에 억지로 교회에 붙잡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야말로 신나게 노는 것이다. 마치 어제의 그들(칸나도 포함하여)처럼.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회의 후유증으로 이른 아침 눈을 뜬 칸나,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편하고 경건스럽기로 말한다면 또 동네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려야겠지만

누군가에게 농담한 대로 한 달에 두 번은 성당으로, 또 두 번은 교회로 간다고 했으니 순서상으로 교회에 가는 것이 맞았다.

그러므로, 또 다시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려면 9시 반에 시작하는 2부 예배가 딱이었다. 12시 전에 집으로 돌아와 남편 옆에 앉아

<전국노래자랑>을 볼 수 있으니.

아, 전국노래자랑.

출연진이 나올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 보아야 하는 칸나의 마음은 접어두고, 매우 즐겁게 시청하시는 남편을 위하여

일종의 보시를 하는 시간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클래식과 올드팝에 정통하신 분이 어떻게 하다가 매일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그토록 진지하게 보시는지...

이른바 열린 예배라고 하여 기존의 엄숙한 스타일에서 벗어난 2부 예배는 요즈음 경건에 맛을 들인 칸나로서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드럼까지 동원된 찬양팀들의 열띤 찬양을 들어야하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약간은 고역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많이 내려놓은 칸나,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려고 노력은 했다. 그러니까 정말 즐거워졌다. 어쨌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니까.

나는 설교 중심의 예배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용이냐 형식이냐 우선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칸나로서는 침묵속의 하나님을 만나고 싶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어로 전달하려는 단상 위 목회자의 설교는 어느 때는 대단히 강압적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 순전하게 전하려면 결국 성경을 줄줄 낭독해야만 하는데 설교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하나님이 주셨다고 주장하는)필과 함께 이제껏 쌓아놓은 지식, 신앙을 자신의 역량대로 잘 버무려서 효과적인 방법을 총동원해서 남녀노소, 학력빈부의 격차를 뛰어넘는, 그래서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분들에게 보편타당하게 접근할 수 잇는 설교를 해야하는 것이다. 어제도 그런 설교를 들었다.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목사님이 어제 무슨 설교를 하셨는지 도무지 한 구절도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면, 어제, 하나님은 나에게 들려주실 메시지가 없었나보지?

그냥 칸나는 그 예배의 시간을 즐겼다. 하나님, 저 왔슴다~ 하고 조신하게 앉아 기도하라고 할 때 기도하고, 찬양하라고 할 때 찬양하고, 말씀 들으라고 할 때 말씀 듣고, 헌금하라고 할 때 헌금했다. 결국 칸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드리지 못했다.

 

광고시간에 귀가 열렸다.

예배 후에 다시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는 작은 교회에 가서 11시 예배를 드릴 분은 가시라, 는 것이었다.

가자.

2000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밋밋하게 예배드렸으니 저 작은 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예비해주신 은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스타렉스에 탄 사람은 칸나 포함 단 세 명.

운전하는 친구남편, 그리고 오래된 언니.

그 언니가 오늘 기도했단다. 매일 두 사람만 작은 교회에 갔는데 오늘은 한 사람만 더 붙여주세요.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네?"

그럼... 광고시간에 귀를 열어준 것은 언니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기도는 이렇게 신기하다.

작은 건물 이층에 새로 문을 연 아주 작은 교회.

젊은 목사는 연대 성악과를 졸업한 재원. 사모 역시 숙대 성악과를 졸업한.

그런데, 밥을 굶을 정도로 고생했다네. 풍요로운 이 시대에 오로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예배는 훨씬 은혜로웠다. 찬양도 진실했고, 말씀은 더더구나 가슴을 울렸다. 진정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하도 작은 예배라, 설교 시작 전에 처음 온 칸나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쑥쓰~~^^;;

옆에서 언니가 보탰다.

"작가예요."

그랬더니만 젊은 목사님이 '설교하기 참 껄그러운 분이 오셨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목회자에게 그다지 환영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전에도 많이 겪은 일이다.

함께 예배드린 사람은 목사부부를 포함해서 열명이 채 되지 않았다.

 

예배실은 순식간에 식당으로 변해서(재빠르게 의자를 정돈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꽤 화려한 점심.

상큼한 상추겉절이, 갓 담은 열무김치, 따끈따끈한 동태전에 닭볶음탕.

모인 사람들이 적으니 아마 닭 두 마리 정도로 그렇게 푸짐하게 먹은 것 같다.

예배 중간 즈음 치치치치 하면서 흑미 밥 뜸이 드는 냄새가 솔솔 흘러나왔는데(작은 주방이 예배실 바로 옆에 있으므로)

마치 예수님의 향기처럼 느껴졌다. 그 포근함, 따뜻함.

 

어제는 칸나 쫌 이상한 날.

청평 너머 덕현리 수양관에서 오후에 모임이 있는데 칸나, 갑자기 그곳에 가고 싶어진 것이다.

25인승 버스에 올라타 버렸다. 얇은 옷차림으로 밤중까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지만 하는 수 없었다.

오늘은 하나님의 필이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이니.

몇 달 전 삼십년 된 낡은 수양관 아래 새로 지은 수양관은 반듯하고 정갈해보였다.

모임을 주관하는 남자친구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새삼 아, 이제는 우리 세대가 교회의 허리구나 하는 자각도 들고.

남자들이 그룹별로 모여 교회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 여자들은 지천에 널린 산나물을 뜯느라 정신이 없다.

왜, 여자들은, 아니 나이든 여자들은 나물에 목숨을 거는 지 미스테리.

선배 언니가 열심히 뜯은 나물 중에서 두릅을 소복하게 담아 주었다. 아낌없이. 나중에 살펴보니 그 언니는 나에게 준 것의 반 정도 밖에 안 남았다. 아낌없이 주면서 마치 자신이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아하는 언니. 늘 그 모습이 변함없는 착한 사람.

칸나, 남아도는 시간동안 수양관을 슬며시 벗어나서 깜찍하고 알록달록한 펜션들을 구경하면서, 될 수 있으면 수양관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 머물렀다. 야외 바비큐 틀이 있는, 고요한 곳이었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맑은 물과 살랑이는 나뭇잎, 만발한 꽃들을 보면서 살짝 담배 두 대^^.

시간이 멈춘 듯 참으로 고요한 시간이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새소리가 들렸다.

칸나가 홀로 호젓한 시간을 즐기는 동안 남자들은 매우 예민한 수위까지 교회 개혁부분을 토론한 모양이었다.

발표자들이 열띤 모습을 보니 어두운 교회 미래가 조금은 밝아지는 느낌? 제일 큰 문제는 소통의 부재였고, 신앙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결론. 제발 그렇게 넓어졌으면 좋겠는데...

 

꽃잎 날리는 야외에서의 식사시간.

쭈꾸미와 삼겹살을 무공해 야채와 함께. 칸나, 안주만 얌전히 먹으면서 머릿속으로만 산사춘 한 병 마셨다^^

이어 우리교회 소속 목사인 신학대 교수님의 세미나. 마이크를 잡은 교수님의 진중한 발제는 약간은 탁상공론 느낌이 났다.

그럴 때는 칸나 마이크를 잡고 있는 칸나를 상상한다. 나라면 이런 말을 할 텐데, 이렇게 하면 더 어필할 텐데...

밤 아홉시 너머 겨우 출발한 버스는 열한 시가 다 되어 교회에 도착했고, 온종일 뛰어다닌 쌍문동 사는 칸나의 남자친구가 착하게도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열몇 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 마치 동성처럼 느껴지는.

 

오늘 칸나가 만난 사람들을 보면, 교회에서 착한 척하거나, 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마음대로 표현한다면 <단순한>사람들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들이 자신이 아닌 타인들을 극진히 배려하거나 사랑을 베푸는 솔선수범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정말 그들은 즐거워보였다. 그러니 보는 칸나도 즐거울밖에.

칸나는... 부엌에서 알짱거리다가 <거추장스럽게 있지 말고 바람이나 쏘이라>면서 건네주는 포도 한 송이 들고 걍 나가고

식사 후, 뒤치닥거리하는 틈에 끼었다가 <가서 세미나 열심히 듣고 좋은 글이나 써라>하면서 내쫓기고

가는 길, 오는 길, 옆 사람과 대화하기보다는 창밖 경치에 넋을 놓고 있거나 MP3 노래에 푹 잠겨서 홀로 즐겼으니

어찌보면 칸나, 그들과 완전 섞이지는 못하는 성격임에 확실하다. 

교회에서 노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보기 보다는 훨씬 재미있게 아주 잘 누리면서 살고 있다는 것도 확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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