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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각하라

대표기도를 하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4.

대표기도를 하다!

 

얼마 전 교회 사무실로부터 주일 예배에서 대표기도를 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으악!

다른 교인들도 그런 통보를 받으면 첫 번째 반응이 비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일생 동안 몇 번 되지 않는 대표기도를 맡게 되면 제일 먼저 비명이 터져 나오곤 한다.

평신도로서 주일 예배 시간에 대표기도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고 영광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혼자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온 교인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교회 짬밥이 사십 년을 바라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들의 대표 기도를 들었겠는가! 하지만 그분들의 기도가 모두 은혜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개의 경우, 지루하리만큼 길었고,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너무 피상적이었고, 천편일률적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입장이나 철학이 무분별하게 들어가 있기도 했고, 자신의 신앙을 주장할 뿐 아니라 타인의 신앙을 드러내놓고 폄하하기도 하고, 상당히 주관적인 자신의 정치관까지 집어넣기도 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촛불 집회하는 저 빨갱이 세력들을 하나님께서 빨리 처단하여 주시옵소서, 따위이다)

어느 때는 도저히 아멘 할 수 없는 기도문을 듣고, 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서 기도 중간에 눈을 뜨고 그 몰상식한 교회 중진들을 째려보기도 했다. 결국 대표기도가 아닌 대표기도를 한 셈이었다. 게다가 그분들의 삶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느니만큼 표리부동해 보이는 기도문이 오히려 역겨울 때도 없지는 않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기도를 들으면서 참 많이도 생각했다. 나는 저렇게 기도하지는 말아야지, 저런 기도는 은혜는커녕 교인들의 마음을 각박하게 만들어버리는구나, 저렇게 빨리 씨부렁(?)거리면 절대 접수가 되지 않는구나, 저렇게 길게 늘어놓으면 중간에 깜빡 잠이 들 수도 있고,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각이 삼천포로 빠질 수 있구나...

 

교회에서 가르치기로는 <골방에서는 두 시간 대중 기도는 2분!> 이라는 표어를 주장하지만 몇 번 대표기도를 해보니 2분은 너무 짧다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정성스레 작성한 기도문을 몇 번 소리 내어 읽으면서 시간을 잘 체크했다. 시간이 넘어가면 줄이고, 또 줄이고 해서 정확하게 2분짜리 기도를 했더니 많은 교우들이 “하다가 만 것 같다”는 느낌을 말해 주었다.

결국 2분짜리 기도는 실현성이 대단히 희박하다는 말이다. 국회 청문회처럼 시간을 정해주고 그 시간이 지나면 마이크를 꺼버리는 것도 아니므로 몇 년에 한 번씩 겨우 돌아오는 대표기도를 맡은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많은 간구를 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겨우 2분이라니!

어느 장로님은 기도문을 A4 용지 넉장 분량으로 정성스레 작성해 오셔서 간곡한 목소리로 줄줄 읊으시기도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3분 이내의 기도를 하라고 가르쳤으면 좋겠다. 어차피 대표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대개 4분 안팎이던데 말이다.

 

어쨌든 기도순서를 맡은 예배일로부터 열흘 전 즈음 연락을 받은 후,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세칭 나는 글쟁이다. 소설 쓰고 수필도 쓰는 작가이므로 기도문을 잘 작성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내가 쓴 기도문은 다른 사람들의 기도와 당연히 다르지! 글로 먹고 사는데 그 전공을 못할 리가 있어! 하나님, 저의 글빨, 기도 빨을 교인들과 목회자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도록 멋진 기도문을 작정하게 해 주십시오. 이러면 안되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싸워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이었다.

제일 먼저 나는 기도했다. 위에 열거한 이러저러한 교만한 생각들을 깡그리 없애주시옵소서. 추호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저의 마음을 붙잡아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우선 내 마음이 기도문을 쓰기에 적합한 깨끗한 비움의 상태가 되어야 했다. 내 마음대로 기도, 미사여구로 가득 차기만 했지 진심이 담기지 않은 공허한 기도, 나를 드러내는 기도, 교인 들으라고 하는 기도를 하지 않기 위하여 나는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정말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는 분명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내 마음의 간구 뿐 아니라, 교회의 간구, 교인들의 간구도 같이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했다. 결국 기도문에서 나의 이기심이나 자랑은 모두 뽑아버려야 했다.

 

주일을 앞둔 수요일까지 나는 빈 마음을 위하여 기도했다. 하지만 아직 기도문을 쓸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영적 예배에 대한 책을 골라 그 중 대표기도에 대한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성경 말씀에 입각하여 풀어놓은 책이었으므로 나는 그 의미를 잘 파악하여 나의 대표기도에 객관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그 다음으로 이제껏 내가 써놓은 각종 기도문들을 프린트해서 다시 읽어보았다. 헌금 기도, 음악회 예배 기도, 성탄 축하 예배에서의 성시 낭송 기도, 장로님 은퇴 찬하사, 28년간 목회하시다가 은퇴하시는 목사님의 은퇴 찬하사 등, 그동안 교회에서 낭독하거나 기도한 글들이 꽤 많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준비하여 작성된 글들이었다.

 

나는 기도해야 했다. 하나님, 이번 대표기도를 통하여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그 기도를 준비하면서 무엇을 깨닫게 하시려는 겁니까?

“기도문을 쓰려면 기도해야지!”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다른 때보다 더욱 간절하게 기도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었다.

새해 들어 9월인 지금까지 교회에 겨우 세 번 간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가정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었다. 남편은 사사로운 어떤 것 때문에 시험이 들어 있었다. 아무리 이해시키려고 하고 설명해 주어도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일단 교회가기 싫다는 것이다.

 

8월의 마지막 날, 남편과 나는 집 앞 호프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치킨과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것으로 마실 때는 시원하고 좋은데 뒤끝이 별로 개운하지는 않다는 약간의 단점이 있다. 일명 폭탄주이기도 하다.)으로 친교를 나누는 중이었다. 술이 약간 오른 상태의 남편에게 작업이 들어갔다.

여보, 내 말 좀 신중하게 들어보소! 나는 대표기도를 맡았고, 9월에는 나의 거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야 할 기간으로 잡았다. 나는 지금 홀로 남아 있는 것처럼 외로움을 느낀다. 왜냐! 당신이 옆에서 기도로 동역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의 당신은 성경 한 권을 일 년에 걸쳐 쓰면서 옆에서 바라보는 나에게 많은 은혜를 주었고, 또 일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주 목요일마다 홀로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어 또한 나의 기쁨과 하나님의 기쁨이 된 것을 확신하고 있고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의 당신을 바라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물론 마음속으로 기도는 하고 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믿음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 우리 같이 멋진 9월을 맞이해보지 않겠는가!

내 말을 정말 신중하게 듣던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좋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일부터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자. 아들이 같이 합세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 몫은 그냥 남겨두고 우리 둘만이라도 성심성의껏 하나님 앞으로 나가보자!

하나님, 이게 웬 떡입니까!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냥 한 말이었다. 가정예배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의 편협한 믿음의 지경을 하나님은 확실하게 넓혀주셨다.

그렇게 해서 대표기도를 하기 며칠 전부터는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다. 하나님, 제가 이번 주일 대표기도를 맡았는데 주님이 도와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이 도와 주실꺼죠? 믿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시간은 정말 천국이었다. 나는 이제껏 내가 은혜 받고 리포트처럼 올려놓았던 글들을 프린트해서 하루에 강해 한 대목씩 읽어주면서 서로 은혜를 나누었다. 가정예배를 드린 후부터 남편은 정말 많이 변했다. 교회나 목회자에 대한 불신이 많이 누그러진 것이다.

나는 살살 남편을 꼬드겼다.

내가 대표기도를 드리는데 당신이 함께 예배드려야 하지 않겠나!

예전 같으면 싫다고 펄펄 뛰었을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이번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마누라 대표기도를 얼마나 잘하나, 한 번 보아야겠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어린아이 같은 결심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 남편의 회복을 위하여 대표기도를 맡게 해 주신 것이었다.

 

결국 새벽부터 나의 기도는 다시 달라져야 했다.

하나님! 가정예배 드릴 때마다 우리 남편이 변화되고 은혜 받게 되어서 스스로 돌이켜 다음 주부터 주일 성수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 기도 후에 나의 기도를 덧붙였다. 하나님 대표기도 잘 하게 해 주세요!

나는 글을 잘 쓴다는 교만을 내려놓아야했고, 기도문을 잘 써서 많은 교우들을 감동시키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했고, 오로지 하나님께 온전한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깨끗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기도문을 잘 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금요일 밤까지 나는 기도문의 서두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맑고 깨끗한 마음이 될 것이고, 그 순간부터는 기도문이 쏟아진다는 것을.

그렇게 토요일이 되었다. 토요일 새벽에는 가장 절실한 심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이제는 정말 대표기도문을 쓰려고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나의 기도문을 통하여 하나님께는 영광 돌리게 하여 주시고, 나를 포함한 많은 교우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느끼는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해서 3분짜리 기도문이 완성되었다. 기도문을 썼다고 해서 끝은 아니었다. 명확한 발음과 적절한 템포, 그리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의 높낮이도 잘 조절하면서 연습했다. 읽으면서 시간을 체크하고,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쉬고, 어느 부분에서 강약을 조절해야 할지를 연구했다. 그리고 그 모든 준비를 하면서도 기도했다.

하나님, 나의 연약함은 뒤로 감추시고, 기도 속에서 하나님만 드러나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비열함, 나의 추함, 나의 나약함을 절실하게 깨닫고 있으므로 정말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주일. 단상에 올라간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이런 귀한 자리에 올라서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격이 또한 나를 휘몰아쳤다.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오로지 하나님께만 향하는 대표기도를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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