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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신앙칼럼

성경책 모셔놓기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1. 6. 24.

성경책 모셔놓기

 

한때 남편권사님은 성경읽기에 열중할 때가 있었다. 한 십년 전쯤?

베란다의 비치의자에 앉아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하루에 석 장씩 읽었다.

읽고 나서는 꼭 한마디씩 하고야 직성이 풀리던 남편권사님.

“거참... 하나님은 좀 무시무시한 분인 것 같아.” 이런 멘트는 구약을 읽을 때.

“음...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네, 끝이 없어.” 감탄사 섞인 멘트는 신약을 읽을 때의 감상.

아내집사님의 기억으로는 그 시절이 육 개월 정도는 유지되었던 것 같다.

 

이후 첫사랑의 순간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듯 성경은 잊혀져갔다. 왜냐고 물으시면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고물차일망정 있을 때, 성경은 뒷좌석 유리문 아래의 편편한 자리에 모셔져 교회를 오갔다. 교회 갈 준비를 하고 십 미터 안팎의 거리를 걸어 차를 타고 성경을 유리문 아래 햇볕 짱짱한 곳에 올려놓고 가서 예배드리고 오면서 다시 일광욕을 시킨 성경책은 일주일동안 잘 간직하고 있다가 다시 들고 차를 차고 일광욕 시키고, 예배드리고, 오면서 오후 땡볕 일광욕 시키고...

보다 못한 아내집사님이 한마디 했다.

“들고 다닐 거 뭐 있수? 어차피 집에 가져간들 들쳐보지도 않으실 텐데, 그냥 차에다 놓고 일광욕이나 시키지.”

틀린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편권사님은 무슨 그런 시험 드는 말을 하느냐고 펄펄 뛰었다.

 

십 이년 된 차가 드디어 길에서 서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폐차를 시키고 빡빡한 가계부를 뒤적이며 차종을 알아보다가 당분간(그러나 기약은 없는) 차 없이 교회를 다니기로 했다.

한 달 정도 가슴에 성경책을 안고 다니던 남편권사님, 슬슬 꾀를 부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무겁다, 길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자녀임을 의식하여-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전철에서 졸다가 성경책을 떨어뜨릴까봐 마음 놓고 졸지도 못한다...

수요 예배 때 몇 번 예배당 뒤편 책상에 놓인 ‘교회 비치용’ 딱지를 붙인 성경책 맛을 본 뒤로 남편권사님의 머릿속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남편권사님, 자신의 성경책을 교회 어딘가에 숨겨(?)두기로 했다. 아내집사님도 동조는 했다. 성경책 속지에 소속과 이름을 검은 매직펜으로 커다랗게 써주었다.

그러니까 ‘교회 비치용’이기는 하되 전적으로 개인적인 교회비치용 성경책이 된 셈이었다.

 

이후로 남편권사님은 헐렁해진 손으로 아내집사님의 팔짱을 끼고 교회를 오신다.

와서 비밀장소에 숨겨져 있는 자신의 성경책을 툭툭 털고 잘 쓰다듬으며 일주일 간의 안부를 확인한다.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기 전,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다시 비밀장소에 성경책을 잘 모셔둔다. 이런 좋지 않은 행태를 따라하실 분이 혹시 계실지 몰라 비밀장소는 밝히지 못하겠다.

 

아내집사님은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범 교회적으로 성경읽기에 대한 부흥을 일으켜보면 어떨까. 왜 성경책에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만 있고, ‘성경을 읽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없는 것일까. 생각 같아서는 성서공회에 계신 목사님께 성경책 끝에 그런 문구 좀 첨가해달라고 부탁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남편권사님처럼 집에서는 성경을 모셔만 두시는 분은 또 안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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