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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된장 비빔밥을 거부할 자유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2. 12. 2.

토요일 성경공부 마무리는 기도제목을 내놓는 것이다.

근데 내 앞엣분이 '지금 상태가 참 편안하고 좋다. 사람들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이 더 좋다' 그런 비슷한 말을 꺼내셨다.

편안과 평안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나왔던 것 같다.

편안은 주어진 상태가 안정적인 것, 평안은 주어진 상태와 상관없은 내면의 상태. 그러므로 정말 구하여야 할 것은 평안.

아멘했다.

내 차례가 되어서 말했다. 나의 간절한 기도제목은 이랬다.

'저는 사람들과 만나면 늘 실수를 해서 잠들기 전 회개기도하느라 바빠 죽을 지경임다. 맨날 새벽에 일어나 예배도 드리고 성경도 읽고 필사까지 하고 중보기도도 하고 그야말로 별 짓 다하는데도 사람들과 만나기만 하면 나의 무모함으로 인한 (안해도 될말, 안해야 될말)이 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미치겠어욧! 그래서 저는 사람 만나는 게 너무 두렵고 무서워요. 늘 그래요....흑흑'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놀라더니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런 적 한 번도 없어요. 너무 과민한 거 아닐까요?'

'사람들과 만나기만 하면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괴로워 죽겠어요. 도저히 고쳐지지 않아요...흑흑'

물론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나의 절박한 심정이 나의 얼굴에 고대로 드러났을 것이다.

아니에요, 너무 예민한 거 아닐까요, 하는 위로의 말을 듬뿍 들었다. 고마웠지만 우울했다.

그리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나의 '죄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마치 '보라' 는 듯이^^;;

 

A선배가 점심을 내겠다고 하여 모두 조금 먼 길이지만 전화로 알아본 식당을 향해 걸었다. 얌전히 갔다.

좀 헷갈렸지만 그래도 마침내 그 식당을 찾았다. 산채비빔밥집이었다.

그런데 B선배가 겨우 찾아간 그 식당앞에서 죽 훑더니 별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잘 가는 된장비빔밥집으로 가자고 한 마디 던진 후, 먼저 발걸음을 뗐다. 

뭐야~~~

점심을 내겠다는 선배가 메뉴까지 정해놓은 것을 독단적으로 바꾸어버리는 것에 일단 비위가 틀어졌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은 순간 멈칫하다가 이내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슬쩍 웃음을 나누며) 앞장 서는 B선배의 뒤를 쫓았다.

그 때부터 나는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만약 그때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면 나중에 그런 '지랄'은 하지 않았으리)

간 곳은 된장 비빔밥집이었다. 아주 어수선한 이층에 엉거주춤 앉아 메뉴판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메뉴도 눈에 띄었다. 다행이넹.

근데 B선배가 주문을 해버리는 것이다.

'여기 된장 비빔밥 일곱이요.'

반찬이 날라오는데 내가 말했다.

'저는 다른 거 먹겠어요.'

'왜? 된장비빔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저는 된장 싫어해요.'

'아니, 된장을 싫어하다니?'

'저는 녹두부침개 주세요. 아까 빵 먹어서 배불러요.'

'거참 이상하네. 이곳은 내가 자주 와서 먹는 곳인데 아주 맛있어요.'

'이상한게 아니라 다른 거죠.'

B선배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만 계속 그 음식의 좋은 점을 열거했다.

'하여튼 난 싫어욧!'

내 목소리가 조금 앙칼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이도 많은 B선배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에게 된장비빔밥 안 먹을 자유도 좀 주세요!'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하여튼 그런 비슷한 나의 항변이었다)

그때부터 열불이 난 나는 속을 다스리기 힘들었다. 아, 담배, 담배....

내가 주문한 녹두빈대떡은 나 한 쪽 먹고 다른 분들이 맛나게 드셨다. 다른 반찬은 먹을 것이 너무 없었던 탓이리라.

 

만약 A선배가 된장비빔밥집을 예약했더라면 나는 아무 소리 없이 따라갔을 것이다. 그래서 메뉴판을 보고 분명 다른 음식을 시켰을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될 수 있으면 안먹을 자유는 있지 않은가? B선배는 (내가 생각하기에)몇 가지 실수를 했다.

A선배가 생각하고 전화까지 해서 알아놓은 음식점을 그 누구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하다못해 점심을 내려고 하는 A선배에게조차) 음식점을 바꾼 점, 다른 메뉴가 있음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메뉴를 다른 사람도 좋아하겠지하는 웃기지도 않은 단정으로 일방적으로 주문 한 점, 다른 메뉴를 고르는 타인에게 자신과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상하다고 매도한 점....

엄밀하게 말한다면 나는 된장비빔밥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B선배의 독단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보였다) 정작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식인답지 않은 생각이었다. 나도 맛대가리 없는 된장비빔밥 한 끼쯤 그냥 먹는 시늉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기 싫었다.

신앙인일수록 사람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고, 더욱 배려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담양에서 그 찬란한 웰빙식단을 거부하고 날마다 라면과 빵으로 산 나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 바로 다양성이란 말이다^^;;

(물론 나의 잘못도 인정한다. 좀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주 겸손한 표정으로, 그리고 에둘러서 '아, 나는 며칠 전부터 녹두빈대떡 먹고 싶었는데 저는 그거 먹을께요, 한다든지, 요즘 잘 사용하는 애교작렬시키면서 '담양에서 된장 하도 먹어서 완전 질렸거든요'한다던지 해서 B선배를 아주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었는데 나의 표독스러운 목소리를 고대로 드러낸 점...기타등등) 

하지만.....

 

교회에서 내가 끝없이 투쟁하는 것도 결국 이것일 것이다.

모든 인간들이 웰빙식단으로 일제히 눈길을 돌리고 달려가는 중에서도

된장비빔밥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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