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바이블스터디에 갈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작년 7월, 나는 많이 슬펐다.
누구나 인생에서 그런 기간 있지 않은가? 내 생애의 최악의 해라고 꼽을만한 2011년이 중간 쯤 지나자 나는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하나님은 점점 희미해지고, 술은 점점 가까와지고, 내 영혼은 어딘가 팔아먹은 것처럼 들락날락했다. 원하는 글은 안 써지고 생활고에 시달렸고 삶의 방향은 갈 바를 알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처없이 방황하는 나의 마음이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설교를 듣고 수없이 기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뭔가 해답이 보일 듯 하다가도 얄밉게 사라져버리는 해결책들... 긴가민가 하면서 여러 곳을 더듬어 보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꽝이었다. 그리고 실수 연발의 삶....아아, 나는 점점 황폐해지고 있었다...
그 때, 우연히(하나님의 언어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선배 소설가이자 교수이자 문예지 발행인을 만나 술 한 잔 나누게 되었다.
그 분은 나의 문학의 방향에 대하여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모두 필기해야 할 정도로 좋은 말들이었다.
둘이 마주 앉아 이런 저런 문학적 고뇌를 토로하다가 문득 선배님이 물었다.
"혹시 교회 다니나?"
"네...."
내 소설책을 꼼꼼이 읽었다는 그 분은 작가의 말에 써있는 나의 고백을 유심히 보셨던 모양이다.
악착같이 하나님을 붙들고 있다는 글 말이다...
"그러면..."
"?"
"성경공부하는데 한 번 가보지 않겠나?"
"아, 네...가고 싶네요..."
그러면서도 몇 주가 그냥 흘렀다. 어느 날 술에 거나해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그분께 전화를 했다. 좀 늦은 시각이었다... 당시 내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도가니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그분께 전화를 한 것은 무의식이었다. 순간적으로 성경공부가 떠올랐고 무슨 구원처럼 그 끈을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선생님. 제가 내일 성경공부를 가려고 하는데요, 지금 술에 취해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요...만약 제가 내일 가게 되면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약간 혀가 꼬부라진 주정 아닌 주정을 그분은 자알 들어주셨다.
다행히 다음 날 숙취가 심하지 않았고, 나는 그분께 연락을 하고 그 먼 창덕궁 앞까지 달려갔다.
럭셔리한 카페 지하에 모인 분들은...대략 일곱 명...?
연세 지긋하신 목사님 부부와 무슨 무슨 다양한 직업(교수나 주로 예술가 쪽)을 가진 분들이었다.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매우 쌀쌀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에게 쓸데 없는 질문은 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들은 내가 있는 것에 개의치 않고 그들의 방식대로 성경공부를 진행하는 듯 했다.
그런데...참 의아했다...
거의 한 시간 가량을... 잡담으로 보내고 있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누구나 편하게 말을 했고, 누구나 그 말을 경청했다. 무슨 조언이나 지침 같은 말은 없었다. 그냥 자신이 겪었던 일이나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킬링타임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아주 편안하게 건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대학에서의 일을 이야기하고, 지난 일을 꺼내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대체 언제 성경공부를 시작하나 하면서 기다렸기 때문에 그 시간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얼추 한 시간 가량이 지난 후에야 짧은 기도를 했고 찬송가를 부르게 되었는데...그 찬송가를 부르는 방법도 참 특이했다.
누군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말하면 목사님이 먼저 그 찬송가의 가사를 조용히 천천히 낭독하셨다. 그런 다음 찬송가를 불렀다. 그런데... 목사님의 낭독하는 그 찬송가 가사를 듣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매일 소리높여 찬송가를 부르기만 하다가 시처럼 읊는 소리를 들으니 그것은. 모두, 기가 막힌 기도가 되었다....
눈물이 살짝 났지만 참았다. 찬송가의 매력을 더 깊게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자 목사님의 두 세장의 프린트물을 나누어 주었다. 고린도 전서를 몇 년 째 진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목사님이 말씀을 하시는 도중에 수많은 대화가 오갔다. 누구든지 생각이 나는 것은 즉시 말했다. 저는 이렇게 느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왜 이 말씀이 있는 거죠?....
나는 건성으로 들으면서 대체 이 석장짜리 프린트물을 언제 끝내려고 이렇게 중간에 초(!!)를 치나 조바심을 냈다.
하지만 목사님은 모든 질문에 같이 마음을 드러내는 그 시간을, 그 좀 엇나간 듯한 질문들도 정중하게 받아들였다. 신중하게 듣고, 모두의 생각을 듣고 말했다. 목사님이 결론을 내주지는 않았다.
더 이상했던 것은 누구도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이거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합시다, 라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오픈된 끝이 없는 대화였다.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지기도 했고, 얼추 자리를 찾아오기도 했고, 다른 의문이 곁가지를 쳐서 그 속에서 또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장소를 제공한 교수님이 야채 샐러드를 준비했고, 어떤 분은 김밥을 들고 왔고, 어떤 분은 삶은 고구마를 가져왔다... 커피메이커에서 계속 커피를 리필해 마시면서 자유롭게 화장실도 하고, 전화도 받았다. 늦게 오는 분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늦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먼저 가는 분이 계셔도 웃는 모습이었다.
아, 정말 자유로운 성경공부였다...
1시가 넘어가자 음식을 시켰다. 냉콩국수, 그런 분식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한담을 나누다가 프린트물을 들추었다. 시간은 2시를 넘어갔는데 아직 반도 하지 못했다. (그 성경공부 시작시간은 11시였다) 나는 속으로 대체 언제 끝나는 시간인가하고 조바심을 쳤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목사님이 몇 줄 진도를 나가면 또 누군가가 딱히 그 구절에 어울리는 말이 아닌데도 목사님의 말을 끊고(!) 묻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주 솔직했다.
결국 2시 반이 훨씬 넘어가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자,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 합시다. 오늘 못한 것은 다음에 만나서 하기로 하지요."
아무 미련없이 프린트물을 덮고 목사님은 각자의 기도 제목을 물었다. 그런데 그 기도제목을 대답하는 사람들이 또한 너무 희한했다. 간단하게 기도제목을 말해야 하는 것 같은데, 그 기도제목을 갖게 된 이유가 또 장황하게 늘어졌다. 한 사람이 무려 십분을 넘기면서 기도제목에 대하여 말하기도 했다.
기도제목을 말하려다가 금방 떠오른 어떤 생각을 말하는 분도 있었다. 아..... 참으로 신기하여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려 다섯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같이 보냈다...
첫날의 느낌은 '참 이상한 성경공부다' 였다. 그리고 너무 루즈해보였다.
이제껏의 성경공부는 정해진 시간, 그러니까 한 시간이나 두 시간안에 주어진 교재의 계획대로 차질없이 진행하고 깊어지는 질문이 혹시 나오면 모두 난색을 표하고는 했다. 가르치는 분이나 배우는 분이나 모두 시간이 없기 때문에 다음에...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 역시 타고난 <질문녀>였지만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많은 물음을 내뱉지 못하고 해결하지도 못하고 미진하게 성경공부를 마친 기억이 너무도 많앗었다. 그런데 창덕궁 성경공부는 달랐다. 단순한 성경공부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 살아가는 것, 느끼는 것 모두를 성경공부 안에 포함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몇 주간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점점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새삼 눈이 떠지는 느낌이었다.
세상적으로 보면 상당히 하이소사이어티에 속하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가식이 없고 솔직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을 아주 편안하게 내보이면서 아주 유치해 보이는 질문도 진지하게 했고, 그 질문에 대하여 가장 진솔하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그냥 그리스도인만 존재했다. 목사님이나 평신도의 구분도 없었다.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갈등을 포장하지 않고 내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반 년 넘게 그 성경공부를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다. 덕택에 토요일은 정말 행복해졌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참관자의 모습에서 드디어 벗어나 나도 한 마디 말을 했다. 그것이 나의, 진솔하다못해 남들이 생각하기에는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은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그들이 열린 마음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신뢰이기도 할 것이다...
비록 술자리에서 그 성경공부를 권유받았지만(^^)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나를 그곳에 보내주셨다. 아무 것도 없는 나를(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돌아보게 하고, 다시 깨우치게 하고, 그리고 당당하게 살게 만드는 귀중한 시간이 나의 앞으로의 토요일에도 보석처럼 박혀 있을 것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시간!
아마, 2012년은 나에게 새로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그리고 2012년의 마지막 날의 나는 아마 멋지게 변해있을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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