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매우 잘난척 하는' 책을 읽었다.
겸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자신의 방대한 철학과 예술세계를 거침없이 토해놓은 책이었다. 마치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것처럼 무식하게 펜을 휘두르는 작가의 쫌팽이 기질에 대하여 대체 이 작가는 무슨 결핍이 있어서 이렇게 지식으로 중무장하면서 세상사람들에게 핏대를 올리나 했더니... 알고보니 고졸 중퇴 출신이었다....
학력 컴플렉스가 과도한 지식 사냥에 나섰고, 그리하여 자신의 앎과 지혜을 미사일 정도로 인식하고는 사정없이 사방에다 쏘아댄 것이었다. 그것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아주 유명한 속담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 몇 페이지는 광활하게 펼쳐지는 그의 지식세계를 좀 배울까 하고 넘겼지만 이내 식상해졌다. 일단 독자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의 각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우습기 짝이 없는 자신감 넘치는 글빨이 나를 너무 지루하게 만들었다. 그 작가가 조금이라도 머리를 썼더라면, 좀 더 지혜로웠더라면 자신의 오만을 겸손으로 포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처럼 '교만한 모습'은 옆에서 보아주기 매우 힘들다. 차라리 그럴 때는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겉으로나마 겸손한 '척'이라도 좀 해야 읽는 사람이 소화가 될 것 같다.
결국,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이긴 하지만 그 잘난 척 하는 책은 반도 채 읽지 못하고 던져버렸다. 볼수록 기분 나쁜 책이어서 눈에 뜨이지 않게 멀찌감치 던졌다. 그러면서 새삼 깨달은 것. 사람들은 누구에게인가 지도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참을 수 없어한다는 것이다. 누가 나에게 훈계를 하면 맞는 말이라고 해도 일단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반항부터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그리고 또 깨달은 것은... 결핍이 있는 사람일수록 포장을 두껍게 한다는 것. 자격지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외부의 반응에 민감하다는 것. 그리고 특별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
내 생각인데 사람들은 <특별>이라는 단어를 아주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뿐인가.
사람들은 자기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하나님은 결코 특별한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는데 말이다. 하나님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각자 특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몽땅 똑같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말을 즐겨 쓰고 즐겨 듣기를 원하는 것 같다.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여 주셔서, 우리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여 주셔서
아니,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면 다른 교회는 덜 사랑한다는 말?
하나님이 우리만 특별히 더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은 우리보다는 덜 사랑한다는 말?
때로는 이런 말도 자주 사용한다.
특별한 이 시간에, 특별한 이 기도 시간에, 오늘 특별히 모인 이 곳에, 특별한 이 모임에...
아...이제 특별이라고 하면 좀 신물이 난 것이 나에게는 있다.
특별 새벽기도회, 라는 말이다.
그 특별 새벽기도회는 일년에 한 번 있는 특별한 새벽기도회는 절대 아니다.
작년에 세어보다가 말았는데 특별한 특별새벽기도회는 한 달에 거의 한 번씩은 있었다.
(올해는 꼭 세어볼 생각이다. 일년에 몇 번이나 특별 새벽기도회를 하는지)
하다못해 부흥회를 위한 특별 새벽기도회, 교회 104주년 105주년 성회를 위한 특별새벽기도회, 새생명축제를 위한 특별새벽기도회.... )
특별 새벽기도회가 정해지면 기도 명단과 맡은 구역 명단과 특송 명단이 주보 사이에 간지로 끼어져 있다.
그런데...그 특별새벽기도회라고 해서 특별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명칭만 다를 뿐이다. 게다가 특별새벽기도회에 나오는 교인들도 거의 똑같다. 믿음이 충만한 분들이고 순종잘하는 분들이고, 새벽에 나올만한 여건이 허락되는 분들이니 공통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5년 전, 우리 교회에 새로운 목회자가 부임해 왔을 때, 이런 말을 했다.
교인들에게 한 가지 직분에 집중하도록 하겠다. 여러가지 직분을 겹치지않게 하겠다....여러 사람이 한 가지 직분에 충실하도록 하겠다.... 모두 같은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흥분할 정도로 감동받았다. 감동을 얼마나 받았는지 며칠 가슴이 벅차올라 진정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동안 나는 교회일에 좀 과로(?)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5년 동안, 이십 몇 년 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혹독한 <뺑뺑이>를 경험해야 했다.
허술하게 신앙생활을 한 댓가였는지 모르지만 온 교인이 재교육을 받느라 정신없이 뛰었다.
거의 한달에 한 번 꼴로 대형 집회가 있었고, 그 집회를 위한 특별새벽기도회가 있었고, 수많은 모임이 생겼고, 수많은 교욱이 생겼고, 수많은 기도회가 생겼고, 수많은 훈련이 생겼다. 정말 대단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매 해 사순절이 되면 복음의 기초를 다시 재재교육을 받는다.
40일동안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와 작년에 들었던 말씀과 별반 다름없는, 재작년에 들었던 말씀과 별반 다름없는, 재재작년에 들었던 말씀과 별반 다름없는, 교육적인, 기본적인, 복음적인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런 비유를 해도 될까?
고등학교 들어갔는데 유치원 교육을 재교욱 받는기분?
로그 함수 배우고, 미적분 배워야 하는데 여러분~ 일 더하기 일은 이 입니다. 구를 삼으로 나누면 삼입니다.
덧셈 곱셈 나눗셈을 잘해야 합니다. 한 번 해볼까요? 손을 드세요, 하나씩 세어봅시다, 그런....거?
솔직하게 말한다면 교회의 특별새벽기도회를 나오는 사람중에서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복음의 기본원리를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고(있었다 하더라도 몇 년 동안의 재교육을 통해 다 습득했겠지), 죄와 죄사함과 십자가와 부활과 그런 아주아주 기본적인 말씀을 들으면서, 아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서 넘 기쁘다, 할 사람은 거의 얿을 것이다.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하지만.
몇 년 째 하신 말씀을(아니 평생 계속하실 말씀이시겠지) 난생 처음 여러분에게 가르쳐준다는 표정으로, 듣는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래는 표정을 짓기 바라는 듯한 표정으로, 감격스럽게 단호하게 열심히 전파하시는 목사님을 뵈노라면 아주 가끔은 슬픔이 앞서기도 한다....그냥...슬픈 것이다....
물론 나를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새롭게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확신에 거하고 다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올해를 단단한 믿음생활로, 멋진 성공의 삶으로 가고 싶어하는 비전을 가지고 참석하리라고 믿는다. 그래도....
나는 새벽의 말씀이 좀 더 살아있는, 리얼한, 라이브이기를 바란다.
신자들이 영 못미더워서 재학습, 재교육을 하는 것이라면 그 재학습 재교육에, 우리의 생존적 삶에 적용이 되는 생생토크도 좀 곁들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랑해야하는 거 누가 모르나? 전도해야 하는 거 누가 모르나?
그 멋진, 그 기가막힌 복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넘어지고 깨어지고 부서지고 망가지고 실패하고 멍들고 고통당하고 여전히 미워하고 속상하고 눈물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대체 무엇으로 기쁨을 행복을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으로 모든 것을 가진 자처럼 살 수 있을까, 에 대하여 실천적인 말씀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앞으로 남은 사순절 특벽새벽기도회는 우리를 절망에서 소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눈물을 씻고 웃음으로 변화될 예수님을 잡고 싶다.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버림받고 고통당하고 배신당하는 이 세상에서 헤진 옷을 입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닌 예수님처럼, 있는자 가진자에게는 혹독한 말씀으로 없는자 주린자 슬픈마음 있는 자들에게는 위로와 사랑과 끌어안음으로 세상을 섬기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살아갈 수 있게끔, 그리하여 날마다 매 순간이 특별한 시간으로 꽉 차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단 말이다, 나는.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손과 발도 행동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과 예수님처럼 이웃을 바라보는 실천은 또 많이 다르다.
교회에서 목청껏 기도하는 것과 가족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것과 나를 미워하는 이웃을 위해 사랑의 편지를 쓰고 화해하는 것은 또 많이 다르다.
아는 사람끼리 반갑게 인사하는 것과 모르는 사람에게도 고개를 숙이는 것과 뺨을 때리려고 하는 사람에게도 웃음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이 다르다.
내일.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에는 아주 <특별한>하나님의 은혜로
구몬수학처럼 같은 문제를 백번씩 푸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합쳐서 괄호안의 답을 천진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눈가를 축축하게 적시는 감성의 하나님을 만나고 내 안에서 역사하는 예수를 만나고 싶다. 그분을 끌어안고 사랑합니다, 하고 고백하면서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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