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블로그 정리하는 중. 올 1월의 일기가 하나 있어서 긁어왔다. 1월 11일의, 유다의 하루^^)
세 통의 전화가 나의 하루 리듬을 깨버렸다. 타인과의 소통 방식으로 전화는 매우 유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글쓰기 작업에 집중해야 하는 나로서는 그보다 더 큰 데미지가 없다. 글을 쓸 때, 글을 쓰려고 할 때 오는 전화는 모두 스팸 분류를 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하다.
카톡이나 카카오 스토리도 대단한 공해다. 기계치인 나는 카카오 스토리를 할 수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사람들은 급한 용무를 제외한다면(나에게 급한 용무의 전화는 일년에 한 두 통에 불과하다) 모두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대화. 사람이 마음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보냐. 하지만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머리를 굴려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결코 아름다운 일은 아니다.
나는 전화 안하기로 유명하다. 지인들은 그려려니 한다. 지인들은 나에게 전화를 할 때 몇 번 망설인다고 한다. 혹시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괜찮다고 전화를 받지만 실은 괜찮지 않다. 이왕 온 전화이니 포기하고 받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매우 냉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참 어쩔 수 없는 것이, 나는 소통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문제다. 말의 허망함, 교류나 소통의 허망함, 일껏 대화를 나누었는데 끊고 나면 뭔가 헛도는 대화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나의 허망함. 그런 것들이 나로 하여금 대화하기를 꺼리게 만드는 것이다.
여럿이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모임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도무지 그 자리가 즐겁지 않다. 예전에 술 깨나 마실 때는 술을 마시는 것이 즐거워, 오로지 술을 마시기 위하여 모임을 거부하지 않았던 적도 꽤 있었다. 나의 대화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술이었던 것이다. 아이고야...
오전의 전화는 미국에 사는 쏘울 메이트로부터였다.
카톡으로 몇 번이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전화해도 되느냐고 하길래 포기하고 집으로 오는 전화를 받았다. 쏘울 메이트이므로 당연 나누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혼의 살찌는 느낌? 그녀의 말은 시처럼 아름답고, 내가 말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유 또한 깊어서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끊고나니 그 친구에 대한 수많은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바람에 결국 한 시간 이상 거실을 헤매면서 다시 글의 리듬을 찾기 위해 쌩고생을 해야했다.
겨우 마음을 잡고 글을 이어가는데, 문자가 왔다. 다시 답문자를 보내고 그 답문자의 답문자를 보내고 답의 답문자가 와서 다시 답의 답의 답문자를 보내니 그 시간도 반 시간은 족히 흘렀을 것이다.
다시 거실에서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기 위하여 서성이는데 또 다른 전화.
이번에는 엊그제 홈피에 올린 글을 읽은 어느 권사님의 전화였다.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반갑지 않았다. 하지만 이왕 온 전화이므로 성실하게 대꾸했고, 그녀의 생각을 잘 들어주었고 나의 의견도 말해주었다. 소통은 중요하다. 내가 일부러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오는 전화까지야 어쩌겠는가.
해가 졌고, 어두워졌고, 밤이 이슥해가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문우였다. 얼마전 소소한 상을 받은 축하인사를 받고, 같은 모임에서 일어난 이야기, 자신의 문학에 대한 결심, 그리고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자신이 지금 나에게 그 악역을 감당하는 것을 모르고)에 대하여 말하는 문우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물론 나의 새해의 의지와 고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려 50분 가까운 시간동안 나눈 이야기들은 나름 의미도 있고, 생각하게 하는 요소도 많았지만 끊고 나니 마음이 아득해졌다. 글은 결국 혼자 고민하고 혼자 쓰는 것이다. 그녀는 알토란 같은 나의 저녁 집중 시간을 갉아먹은 그 죄(!)를 모를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짐을 싸들고 산골짜기 절간으로 들어가거나 지방에 있는 집필실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면벽수행은 수도승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들도 마치 면벽수행을 하듯 노트북을 앞에 놓고 끝없는 번뇌의 삶을 탈출하여 자신이 만들어 놓은 창작의 세계로 잠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힘든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니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지?
아직 밤 열시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진이 빠져버렸다. 오늘 가장 유익했던 시간은 새벽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고, 인터넷 성경 필사를 한 것밖에 없더란 말인가. 온종일 골방에 만들어 놓은 나의 작업실과 거실과 부엌을 왔다갔다 하면서 작업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그토록 노력했건만!
그래도 참 감사한 것은, 하루의 작업량을 아주 최소한으로 잡아놓은 덕택에 오늘의 미션은 간신히 턱걸이로 넘어섰다. 정말 오늘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마음을 다시 바꿔야 할 것 같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세 명의 훼방꾼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고 있으며 당신의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며, 당신과 대화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런 싸인이 아닌가. 내가 대체 누구관대 그들이 나를 찾아 속내를 드러내며 이야기를 하는가.
누구에게인가 전화를 하고 싶어하는 그 '누군가'에 당첨(?)된 것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사랑스러운 내 친구. 사랑해, 진심으로 사랑해.
참 나...연애질도 이쯤 되면 아주 깊은 사이일 텐데 그 애정표현이 이처럼 지독하다니...
그래, 고맙다, 오늘 나에게 전화를 걸어준 인간들이여.
전화 3통에 조금은 마음 고생도 하고 안달바가지를 떨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오늘의 작업량을 마치게 되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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