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아홉시를 알리는 새가 울었다. 경쾌하고 발랄하다못해 경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목청 높은 새소리다. 우리집의 거실에 있는 버드클락. 하루에 열두번씩 다른 소리를 듣는다. 그렇군. 아홉시는, 마음을 맑게 밝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로군, 저 새의 기쁨에 찬 노래처럼.
가끔 새소리를 들으면, 언어가 주는 무상함이 느껴지곤 한다. 언어의 의미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그 의미를 누군가에게 전달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대화를 할 때, 혹은 강의를 할 때, 그 언어의 얄팍한 전달력에 많은 실망을 하곤 한다. 결국,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은 언어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몸짓이 더 강하게 전달할 것 같다. 그냥, 내 느낌이다.
요즘, 하나님께 무언의 기도를 드린다. 침묵.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무한한 절규와 반항과 감사와 찬양과 눈물이 섞여 있는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
저, 아홉시의 새처럼 밝게 속삭이기도 하고, 두시의 새처럼 음울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침묵의 기도는 입술로 하는 기도보다 더 넓고 더 깊다.
매일, 매순간 저 아홉시의 새처럼 살 수는 없겠지. 내가 바라는 것은 늘 그렇게 가볍게 세상을 뛰어다는 모습은 결코 아니다.
무엇인가 충만한 삶. 많이 느끼고 많이 감각하는, 그래서 나의 영혼의 내피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이제껏 구축해왔던 나의 감각, 나의 생각, 나의 취향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이상했다. 지금 하나님은 나를 서서히 부서뜨리고 계시는 중이신가? 야금야금 나의 정체성을 갉아내고 무엇인가 내가 알지 못했던 어떤 것으로 새롭게 덧입히시려는 것일까?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지만, 엊그제 강의에서 '감정은 너의 것이 아니다'는 강력한 선언을 듣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요즘 나는 여러 가지의 공격적 강의에 함몰당하거나 전복당하고 있다. 매일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가장 힘든일은...하나님은 나를 부끄러움속에 잠기게 하신다는 것. 좀 더 강력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수치.
그 수치 속으로 자꾸 나를 밀어넣으신다. 그 단어는 너무 수치스러워서 다시는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아마 좀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부끄러운 순간이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 화끈거리는 얼굴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여전히 화끈거린다. 지금도!
그것은 나에게 나의 부족함을 다시 일깨워주었고, 나 혼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다시 절감하게 만들어 주었고, 약하고 어리석은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다. 어느 정도 '실수'를 통해 알았으니 이제는 그 부끄러움이, 그 부끄러운 기억이 사라지면 좋겠는데, 아직도 선명하게, 너무도 명확하게 나의 영혼까지 부끄럽게 만든다. 그래서, 좀 고통스럽다...
아홉시의 새 소리를 들으니, 저렇게 씽씽하고 명쾌하고, 아무 걱정없는 듯한, 그러니까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기도 하다. 이것은 기도 제목이기도 하다. 비록 짧은 기도, 얄팍한 기도밖에 못 했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덧입어
오늘, 그렇게 살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