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부터 22일까지 꿈같은 3박 4일 남해일주를 마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6월 20일이 결혼기념일이었는데 결혼기념 여행은 난생처음이었다^^;;
꿈이어서 더욱 좋았고 현실 속에 내가 기어들어갈 집이 있다는 것도 좋았다.
3박 4일 동안은 나의 하루의 모든 리추얼을 끊어버리고
(예배도, 성경읽기도, 시집필사도, 음악듣기도, 카톡도, 각종 전화질이나 문자질을 보지고 않고 하지도 않은 채) 휴대폰은 오로지 시간을 확인하거나 사진 찍는 용도로만 사용했다.
좋았다.
왼손이 좀 불편한 남편은 굼뜬 손으로 (안드로이드 사용법은 전혀 모르고, 화면을 문지르는 것조차 서툴어하는) 어설프게 사진 몇 장을 찍어주었는데 거의 모든 사진이 흐릿했다.
나는, 그 흐릿함이 좋았다.
너무 명료한 세상이어서 멀미가 나는 참이었으니.
일상과 여행의 차이점은 뭐니뭐니해도 익숙한 것과 잠시 결별하는 것 같다.
낯선 곳을 걷고, 낯선 곳에서 잠을 자고,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만났다.
그들은 나를 전혀 모르고 나도 그들의 지난 세월을 모르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가끔 아무도 없는 곳이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살고 싶었던 욕망이 이번 여행으로
조금은 해소되었다.
남편은 떨리는 손으로 나의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여수의 한 호텔 앞에서 걸어오는 나를 찍어준 순간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어슴프레한 하늘과 이제 막 빛을 뿜어내는 호텔(정말 낯설고 아름다웠던 곳)과 희미한 모습을 걸어오는 그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거의 완벽하게 행복했던 3박 4일을 허락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올려드립니다.
희미해서 더욱 아름다운 시간이여, 희미해서 더욱 빛나는 시간이여, 희미해서 더욱 행복한 시간이여, 희미해서 더욱 명징한 시간이여! 지나갈 어느날 나는 흐린 사진 속을 걸어가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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