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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라 60

지하철 유리문에 머릿고기처럼 눌린 얼굴, 에게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7. 6. 13.

 

(내일새벽에 일이있어서 황지우의 시집을 필사하는데 내일의 필사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지하철 유리문에 머릿고기처럼 눌린 얼굴; /막에 닿아 있다, 터질 듯한 충만으로'

으으 ..... 나는 머리카락을 잡아뜯었다)
 



한달 여 전 이사한 곳은 버스 종점 근처여서 버스는 거의 언제나 좌석이 텅비어 나에게로 온다.
나는 모든 좌석에 대한 선택권이 있는 느긋함으로 짙푸른 나무, 멀리보이는 산, 더할나위없이 파랗고 높은 하늘, 그런 자연에 대한 감탄으로 버스여행을 하곤했다. 불과 서너 정거장을 가는 동안이라도 그 기쁨은 줄어들지 않았다. 잘 정비된 도로와 단정한 보도블록, 할머니 흰 가르마같이 쪽 뻗은 차선들이 아름답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그 즐거움은 오늘 이후로 이전처럼 완벽하게 되찾게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오늘, 이른 아침에 약속이 있었다.
도봉산역에서 8시 반에 만나자.
그래.

늘 시간보다 서둘러 일찍 나서는 습관으로 7시 반 즈음에는 이미 집앞정류장에 서 있었다. 통상 30여분이면 충분한데도 한 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늘 텅비어 있던 정류장에 수십명이 몰려있었다. 사람들은 계속 길을 건너고 뛰어오고 해서 점점 늘어났다.
버스 하나가 오면 열명 이상이 서둘러 탔고 다른 번호의 버스가 오면 또다시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탔다.
윽! 활기차다못해 치열했다. 치열하다못해 무섭기까지 했다. 

'출근 전쟁'이라고 하는 단어를 곰곰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과연 전쟁은 전쟁이 확실했다.
마침내 내가 타야할 버스가 왔는데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종점에서 나온 버스가 서는 거의 첫 정류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탄다면 열 정거장을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탈까. 입을 여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들의 목적은 빨리 버스에 타야하는 것이고 제 시간에 목적지(아마도 직장이겠지)에 도착하는 것뿐인 것 같았다.
얼결에 버스 한 대를 그냥 보냈다. 그리고나서 일분 간격으로 버스 정류장에 머무는 버스를, 그 버스에 올라타는 수많은 사람들을, 계속 횡단보도를 건너 정류장쪽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결국 다음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탄 버스정류장에서 모든 좌석이 꽉차고 두어 사람이 목좋은(?)곳에 섰다. 그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서는데 차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벌떼처럼 모여드는 모습이 보였다.
두번째 정류장에서 차는 만원이 되었다.
다섯 번째 정류장은 이전에 내가 살던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려고 몰려들었다가 계단아래까지 발딛을틈도 없이 포개져있는 사람들을 보고 거의 포기했지만 회사에 늦으면 사표쓸 것 같은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가 기어이 승객들을 뚫고 올라섰다.
그 다음 정류장부터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가슴이 울렁거려 두 손으로 가슴어귀를 꾹 누르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아서. 나의 왼손이 나의 오른손을 꼭 붙잡고 자꾸 어루만지고 있었다.
정말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밀착이 되어 있는 타인과 타인의 빈틈없는 간격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편안하게 앉아있는 내 자리가 부끄러웠다.


단 한번도 지하철 유리문에 머릿고기처럼 눌린 얼굴이 된 적이 없는 나는 내 인생이 수치스러웠다.

지하철 유리문에 머릿고기처럼 눌린 얼굴들께 사죄하고 싶었다

무섭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미안했다.

나는 너무 편하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