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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가로되

인정합니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9. 1.

이만큼 살아보니 삶의 여러 부분에서 좌표가 세워졌다.

모든 표준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자면

우선은 나의 몸을 사랑해야 하고 몸의 형태를 갖춘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 정리해야 할 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단어의 신앙적인 의미(국어사전에 나오는 의미가 아니라)도 다시금 정리해야 한다.

예수님의 물음처럼 네 이웃이 누구이냐, 에서의 답도 나름 마련해 놓아야 하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하여도 확실한 카테고리가 성립되어야 하며

내가 아닌 모든 사람들 중에서 누구를 이웃이라고 칭해야 할지 그것도 고민해야 할 문제이며

살인자도 이웃인가, 말도 안되는 말만 씨부렁거리는 보수꼴통도 이웃인가, 옆집에 분란을 일으킨 내연녀도 이웃인가 하는

복잡미묘한 인간관계도 돌아보아야 한다...아, 어려운 일.

 

어느 방송에서인가 조영남이 나와서

내 마누라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내 자식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는 요지의

말을 침튀기면서 떠들어대는 모습을 보았다.

수긍하기 싫었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내가 생각한 나를 사랑한다는 그것이 맞는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거니와.

 

어제, 바람난 이모(바람났던 이모라고 하면 나을까 모르겠다)와 이야기하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모에게 이웃은 누구인가, 그런 것까지도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였다. 지금 이모는 상황이 그닥 좋지 않기 때문인데

갑자기 돈이 많아진 조카새끼(욕을 먹어도 싸다)가 이모와 통화 중에 무슨 년, 소리를 했다는 말을 듣고 입이 딱 벌어졌다.

갑자기 그 맛있던 불판위의 갈비를 집을 수가 없었다. 이게 뭐지?

정말 너무 힘들었다. 아니, 어떻게 조카가 이모에게 욕을 할 수 있는거지?

그런데 이모는 그 모든 이유는 이모가 돈이 없기 때문이며, 그 조카새끼는 돈이 많아져서 세상을 이모를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모는 그게 세상이라고 아주 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해탈한 듯한 표정의 의미가 달관인지 낙관인지 포기인지 모르겠다.

아, 그렇구나.

돈이 있으면 (돈이 억단위로 있다고 큰소리나 쳤지 신사임당 한 장 준 적도 없으면서) 이모도 개떡같이 생각하는구나.

불우이웃 돕기하는 심정으로 도와도 도와줄 사람인데

욕만 디립따 하고는 끝이로구나.

 

내 생각에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아마도 이 세상 인간들은 하기 힘들 것 같다.

사랑은커녕, 자선이나 적선은커녕 거지 동냥 쪽박이나 차지 않으면 다행인 것 같다.

오늘 새벽 천변을 걸으면서 들었던 말씀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

다 똑같아요. 누구나 다 그래요. 나는 아니야, 나는 아닌 척 하지 말아요.

인간은 다 그렇게 더티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이고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우리는, 나는, 그런 인간이에요. 그것을 인정하세요.

 

인정합니다.

나도 그런 인간입니다.

이모를 무슨 년이라고 욕하는 그 조카새끼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나의 그 한계에서 예수님이 비로소 살아 역사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나의 악함과 약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도와주세요,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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