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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설, 2015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5. 3. 29.

일주일 전, 토요 성경 공부에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를 프린트해서 가지고  갔다.

그 가스펠은 내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가장 먼저 펼치는 곡이었다.

그 노래는 평안하지 않을 때 그러므로 평안을 갈망할 때 더욱 많이 부르던 곡이었다.

검색해서 보니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그 악보가 아직 있어서 고대로 몇 장 복사했다.

 

 

 

참 이상한 경험이기는 한데, 나는 그 성경공부 자리에서 유독 찬양을 많이 불렀다.

잘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 성량은 가늘기만 하고, 자주 목소리가 떨리고 숨이 가빠 다음 음을 잇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게도 그다지 부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자주 자리에서 일어나 이 곡을 부르고 싶어요, 했다.

평균 연세가 장난아니게 높아서 복음성가를 잘 모르는 분위기였고 몇 년 동안 찬송가만 불렀다.

나는 몇 년 동안 나를 살리게 해 준 복음성가 500곡 책에 있는 수많은 가스펠을 소개해 드리고 싶었다.

 

그 중 가장 나의 마음을 적신 곡이 바로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였다.

이 곡은 하나님의 사랑의 선언이 아닌가. 나에게 평안을 주겠다는 것이다.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그런 평안을 나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결코 평안할 수 없을 때 이 노래를 부르면서 피아노를 치면서 생각했다. 하나님, 정말 평안을 주실 생각이 있으시기는 한 건가요?

지금 이런 고통과 절망과 불안을 덮어버릴 수 있는 그런 메가톤 급 평안을 정말 나에게 주신다는 약속이 맞나요?

울면서도 부르고, 기도하면서도 불렀다.

노래하면서 마음이 평안해졌느냐고?

천만에.

나는 다만 하나님의 약속을 거의 미친듯이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준다니까 주세요. 주신다며요. 지금 주세요. 빨리 주세요. 나 죽기 전에 주세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부르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해졌다. 평안해 진 것이 아니라 뭔가 속풀이를 한 느낌 정도였다. 하나님이 주신다니까 언젠가는 주시겠지, 평안인지 뭔지. 그런, 거의 체념 비슷한 심정으로 피아노 뚜껑을 닫곤 했다.

...지금은 그 평안을 느낀다. 누리고 감사한다. 하지만 지금의 평안은 평안을 모를 때의 그 심정을 충분히 겪었으므로 더욱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대비>가 되는 것이겠지.

 

일주일 전 토요모임에서 나는 그 곡을 가르쳐 드렸다. 먼저 천천히 노래를 불렀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떨었고, 훨씬 못 불렀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가 들려드리고 싶은 것은 내 목소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였으므로.

두 번을 부르고 같이 불렀다. 

"일곱 번 쯤 불러줘야 할 것 같아요."

감독님이 조용히 말했다. 일곱 번이라니.

공부 중간에 다시  이 찬양을 했다. 처음보다 더 좋았다. 다시 또 부르고 또다시 불렀다.

 

어제 성경공부 시간에 성경책 찬송가(그곳에는 늘 비치되어 있다)와 함께 보관해 둔 이 노래 프린트를 다시 펼쳤다.

공부 시작 전에 먼저 이 찬양을 불렀다. 1절 평안을 주노리. 2절 사랑을 주노라.

마침 어제 성경공부에서 이 찬양을 만들게 한 성경구절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 기쁨!

부활 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첫마디로 바로 이 말씀이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속에서 살기를 원하신다.

 

어제 목사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이란 어떤 것인지, 세상이 줄 수도 없는 평안이란 대체 어떤 것인지 설명 좀 해주세요."

"아...."

나는 바보처럼 입을 헤 벌렸다.

"그것이야 말로  나로서는 필설도 형언할 수 없다, 가 될 것 같아요. 정말 그 평안은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언어 너머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작가님이니까 어떡하든 설명 좀 해보세요."

"음..."

그럴 때, 나는 작가가 얼마나 무능력한가를 절감한다. 하지만, 그래도 하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감히 설명한다면, 나에게는.... 그러니까 깊은 병에 걸리고 자식들은 엉망이고, 모든 사업은 망하고 친구에게 배신받고 등등의 고통을 하나님의 평안이 확 덮어버리는 것이죠. 해일처럼 완전히 그 고통을 싸매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 밑에서 그 고통이 꼼짝 못하는 것이죠...모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죠...그래서 사람들이 아니, 저렇게 사는 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아? 어떻게 그런데 그토록 평안할 수가 있어? 하면서 놀라워하는 거죠.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만이 할 수 있지요.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안은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어요"

대강 그런 의미의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그토록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한심했다. 나, 작가 맞아? 그런 평안을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어떡하든 표현하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어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았는데 오늘도 그러하다. 종려주일을 이토록 평안하게 보내다니...

 

지금, 나에게 평안을 주시는 나의 하나님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