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bis Pacem>은 가톨릭 미사곡의 하나인 <神의 어린 羊:Agnus Dei>의 가사 끝 부분으로, 영어로 "Grant us Peace", 즉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를 의미합니다.
사순절을 기념하여
내가 좋아하는 떼제 공동체 성가 50곡 모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가끔 이런 모습을 그려보곤 합니다.
끝없는 들판을 홀로 걸어갑니다. 공동체 신부들처럼 커다랗고 길고 검은 망또를 둘러쓰고 한 여자가 걷고 있습니다.
멀리 보이기 때문에 그 여자가 어떤 표정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새벽인가요, 늦은 저녁인가요
엷은 안개가 여자의 실루엣을 더욱 희미하게 만듭니다. 여자는 실은, 매우 슬퍼요. 그 슬픔은 그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는
비밀한, 내밀한 슬픔입니다. 그 여자는 나일까요?
여자가 거닐고 있는 배경은 점차 무채색으로 바뀌어갑니다. 생에서 색감이 사라지는 때는 언제일까요.
루오의 그림처럼 거친 질감의 삶의 테두리는 얼마나 견고하던지 여자는 이제는 더 이상 그만, 이라고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비명.
평화는 더불어 나누는 것이라면 지금 여자는 충분히 불행합니다. 하지만 혼자인 것이 슬프다는 뜻은 아니어요.
떼제 공동체 성가를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세상과 격리된 어떤 장소에 숨어들어 고요히 살고 싶다...
십 몇 년 전일까, 충청도에 있는 어느 수도원에서 일박이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 공동체에서의 시간은 정말 좋았어요.
나무도 얼기설기 매달아 놓은 십자가와 무릎 꿇을 수 있는 작은 방들, 그리고 허리를 구푸려 일하고 있던 공동체 여자들의 검은 옷차림과 단순한 부엌, 여러 농기구들이 모아져 있던 작은 광과 손수 일구어 낸 밭에서 자라는 식물들, 그리고 야트막한 동산의 십자가와 비아돌로로사, 그리고 그리고 침묵의 시간들.
지금 친구 두 사람을 생각합니다.
일주일 전부터 줄곧 떠오르는 얼굴입니다.
이삽십년을 지켜온 만남인데 어째서 더 이상은 그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지 모르겠어요.
'부질없음'이라는 말이 계속 입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나의 부질없음의 의미는 앞으로 함께 하는 시간에서 '樂'이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 나는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은 고난 주간이 되었습니다.
이 고난 주간에는 관계망에 대하여 새롭게 정리하고 싶어요.
내가 새롭게 될 수만 있으면 그 모든 것도 다 새롭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떼제의 성가가 주는 평화에는 어째서 고독과 슬픔이 함께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
고독과 슬픔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겠죠?
그런 감성도 충분히 누리라는 말씀이시죠?
고독 속의 평화
슬픔 속의 평화
하나님은 모든 것에서 평화를 만드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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