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지 말자, 화나지 말자.
어제 오후부터 계속 그런 생각만 했다.
더우면 짜증나고, 짜증나면 그 짜증을 듣는 사람이 있고, 그 짜증을 내는 사람옆에서 짜증을 듣는 사람은 짜증이 곱배기로 난다. 나는 (내 주장에 따른다면) 거의 짜증을 내지 않는 사람으로서, 불필요한 순간에도 짜증을 달고 사는 인간과 평생 해로를 하고 있는 바, 내 짜증도 몸속에서 해소하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전혀 짜증이 나지 않는 상황임에도 화끈하게 짜증을 내는 인간(왜 나는 남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지)이 짜증에 짜증을 덮어씌우는 형태로 몇 번을 이렇게 저렇게 겪다보면, 사람은 왜 입이 있어야 하는거지, 하면서 화살이 하나님께로 돌려지게 되는 것이다. 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짜증을 듣는 사람은, 짜증을 내고 싶지만 참고 있던 터에 짜증을 내는 사람이 옆에 있음으로 해서 자신의 내면에 참고 있던 짜증이 폭발해버리는 데 그 대상이 멀고도 가까운 곳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좀 이상하기는 하다. 거참. 간장공장 공장장 같은 문장이네^^
(원인 제공한 남편은 너무 더워서 짜증이 난 것이라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곧 죽어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오로지 더위 때문이라고, 더위탓을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성격탓이다)
오늘도 서울 낮 최고기온이 33도라는데 놀래버려 아침부터 기운이 쏙 빠져 있던 차에, 달달 냉커피 한 바가지 마시고, 얼음 아삭거리고, 끈적한 레자소파에 등덜미가 붙도록 누워 헤매다가 모처럼 짜증을 듣는 인간과 짜증을 내는 인간이 의기투합하여 짜증의 원인을 제거하기로 격렬하게 동의했다.
에어컨 사자.
33도 폭염을 뚫고 둘이 손잡고, 문 연지 한 달도 되지 않는 집 앞 하이마트를 갔다. 남편의 비상금을 10만원 협찬받고 나의 생활비 거의 전액을 투자하여(대체 8월 20일까지 어떻게 살려구!)벽걸이 에어컨을 하나 질렀다.
하나님, 앞으로는 짜증 안내고 잘 살께요. - 이건 남편의 반성문.
어제, 고스톱을 치러 온 우리 하나와 아드님은 뚱뚱사이즈여서 엄청 땀을 많이 흘렸다. 11층이어서 현관문만 열어놓으면 맞바람이 쳐서 에어컨 없어도 괜찮으려니 했는데 완전 오산이었다. 후텁지근의 지존.
십수년 사용했던 에어컨은 작년 여름 이사오면서 아들 집에 던져주고 왔다. (아들과 하나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연이틀째 우리집으로 행차하신 우리 하나는 완전 더위먹은 얼굴이었다. 계속 얼음을 아드득 씹어먹고, 아이 더워를 오분 마다 한 번씩 되풀이해서 말했다.
에어컨은, 그러니까 우리 가족의 친목도모의 시간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빡빡 긁어서라도 에어컨을 구비할 수 있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옵고,
앞으로는 화내지 않고, 화나지 않고 잘 살게요.
쾌적한 실내에서 딴짓하지 않고 효용성 있게 보낼께요. 지지부진한 퇴고도 열심히 할 것이고, 스토리텔링 이런 것도 연구해 볼께요. 아무튼 잘 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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