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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성지순례

1. 떠난다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영혼의 어둔 밤

-나의 제이에게

 

 

제이.

나는 당신을 모른다, 하지만 느낀다.

나는 나를 확신하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느낄 뿐이다. 그렇게 당신은 느낌으로만 존재한다. 제이, 당신은 내 마음속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지난 일 년 동안 필그림 하우스를 다섯 번이나 찾아갔다. 순례자의 집에서 나는 접어지지 않는 당신을 접으려고 시간마다 메디타치오 룸에 들어가 신에게 엎드렸다. 신은 나의 눈물을 기억하겠지. 당신으로 가득 찬 영혼의 페이지를 더 이상 넘기고 싶지 않았다. 견고하고 두꺼운 당신의 책을 덮어 책장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싶었다. 다시는 열어보고 싶지 않는 당신.

나의 삶의 에너지는 당신이 내 마음속에서 빛날수록 소멸되어가고 있었다. 당신을 향한 맹목의 끝을 알기에 어떤 순간에 이르러서는 소멸을 소망하기도 했다. 진정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가? 신이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눈물을 흘렀다. 도리질했다. 나는 제이를 잃고 싶지 않아요. 제이가 우상이 되어버렸던 지난날의 나를 용서하세요. 나를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잠시 동안이라도 내 영혼이 비워지게 하여 주십시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어느 곳으로 나를 떠나게 해 주십시오, 나의 신이여.

 

고통의 한가운데서 신음하는 나에게 신은 열이틀 동안의 성지순례를 허락했다. 그리하여 적어도 나의 몸은 제이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이틀 전, 나를 또 다른 제이로 느끼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이름 모를 중국 요리를 앞에 놓고 작은 잔에 술을 한 잔씩 마셨다. 오래 동안 묵묵히 앉아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용서하시오. 나는 그의 제이가 될 수 없다는 말을 그는 수긍했고 자신의 무모한 열정을 사과했다. 그는 빈약한 내 주머니에 두둑한 여행경비를 넣어주었다. 마치 중세의 기사처럼 나의 손등에 입을 맞춘 그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제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영혼의 쓸쓸함을 안다.

 

제이, 당분간 당신의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나 신의 품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아늑하고 편안한 품속에서 정말 당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지 그것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신은 나에게 낯선 곳에서의 침잠을 허락했다. 제이, 나는 신을 사랑한다. 당신만큼.

 

제이.

이곳은 인천 공항의 면세구역이다. 복잡한 수속을 끝내고 나는 게이트 111 앞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당신을 부른다. 공항 안쪽에 지하철이 있다는 사실은 오늘에야 알았다. 나를 태우고 갈 비행기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지하철이 있었다니. 그러고 보면 보이지 않은 곳에 참 많은 것이 존재한다. 평생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겠지. 로비는 넓고 쾌적하다. 공항이라는 곳은 사람들에게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십몇 년 전, 집을 나온 적이 있었다. 추석 전 날이었다. 지극히 사소한 일로 남편과 말다툼을 하던 나는 갑자기 모든 것에 진력이 나 버렸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환멸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나는 절망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자! 밀가루를 묻히고 전을 부치고 고기를 재던 손을 닦지도 않고 코트 하나만 걸치고 도망쳤다.

리무진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항공사마다 들러 여분의 티켓이 있는지 확인했다. 빈 좌석은 없었다. 추석 연휴였으므로. 관망대로 올라갔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끊임없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몇 시간이나 지켜보았던가. 해가 기울고 날이 저물고 가로등 불빛이 밝혀질 때까지. 정신적인 가출은 결국 그날 자정 즈음 끝이 났다.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르면서 생각했다. 이륙하던 어느 비행기 속에 나는 나의 영혼을 두고 왔다고.

 

제이. 나는 늘 떠나고 싶어 했고,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채 결국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집에 누군가 있어서가 아니라, 꼭 돌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갈 곳이 없었다. 나는 나를 지탱해 줄, 나를 살게 해 줄 어떤 능력도 없었다. 나는 평생 누군가에게 기대어 그의 도움으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야 하는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수하에 있어야 했다.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삶의 치열함을 가르쳐 주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했다.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서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리거라.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내가 삶의 현장 속에서 남을 타고 넘고, 일등을 하고, 무엇인가 승리를 쟁취하는 삶을 살기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나를 보호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눈을 뜨면 늘 세상은 아름다웠고 흥분과 기대가 넘쳤고 크고 작은 기쁨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삶의 환희를 느꼈던 세월은 내 몸에 처음으로 피가 비치던 초경의 순간부터 깨졌다. 그 때부터 대체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무리 보아도 낯설기만 한 남자의 옆에 누워 밤이면 늘 어디론가 떠나는 꿈을 꾸었다. 꿈을 깨면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 자국이 뺨에 말라있었다.

제이. 이번 여행의 동반자는 열여덟 사람이다. 내가 태어난 동네에 있는 교회를 나는 사십 년을 다녔다. 사십 년. 나는 신을 사랑했고, 고향 같은 교회를 사랑했고, 그 교회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럼에도 그런 오랜 세월동안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성격이기도 하겠지. 그들은 나를 잘 모를 것이다. 다행이다. 내가 일주일에 몇 번씩 술을 마시고,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제이, 너를 미친 듯이 갈망하면서도 손을 잡을 수 없어 고통당하는 나를 끝까지 모르기를 바란다.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웃어줄 수는 있지만 먼저 말을 걸고 싶지는 않다. 무엇이라고 인사를 하나? 안녕하세요, 좋은 여행 되세요, 같이 가게 되어 반갑습니다?

 

면세점에서 큼직한 초콜릿 두 박스를 사서 순례자들에게 돌렸다. 스낵코너에서 포테이토칩도 몇 개 사서 나누어주었다. 줄 때의 기쁨을 나는 안다. 그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나의 작은 선물을 받고 맛있게 먹었다.

제이. 나는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돈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생각이다. 열세 살 이후, 나는 늘 궁핍했고, 그것은 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지독한 억제기제가 되어 나를 조종했다.

그 가난이라는 현실은, 그 결핍은 제이, 당신에게 가는데 맹렬한 에너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가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테이블 다이어리에는 당신을 향한 약속 대신 카드 결제 날짜가 빼곡하게 적혀 있을 것이고, 늘 텅 빈 손인 나는 라면과 샴푸와 담배를 사기 위하여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로비 의자에 편하게 앉아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들을 보고 있다.

제이.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할 때는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다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지? 지금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저들은 다 행복하구나. 타인의 눈으로 본다면, 나도 행복하게 보이겠지? 그들이 보기에 나는 옷을 잘 차려입었고 작가이며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당당한 모습에서 부러움을 살 수도 있겠지. 나보다 백배는 부자일 사람들에게 초콜릿을 나누어 주면서 미소를 건네는 나의 표정도 아주 편안해 보이겠지.

그들에게는 나에 대한 관용이 있다. 작가라는 직업이 주는 자유로움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랄까.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화기애애한 수다 자리에서 벗어나 홀로 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그러려니>한다. 고마운 일이지. 내가 이번 여행에서 편하려면 컨셉으로라도 그런 포지션을 유지해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좋아하니까 한 발짝 떨어져서 그들을 관망할 것이다.

제이, 나도 당신을 그렇게 관망하면서 살고 싶다. 한 발짝 떨어져서 시야를 넓게 하고 하늘과 나무와 숲과 거리 속으로 당신을 밀어 넣고 싶다. 내 삶 풍경 속의 한 점이 될 수는 없나, 당신은?

 

수속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다. 열이틀의 자유를 나는 어떻게 보낼까.

탑승하면 제일 먼저 성경을 펼칠 생각이다.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것이 교회 순례자들이 정한 이번 여행의 모토이다.

터키와 그리스에 아직도 남아있는 바울의 행적을 따라가고 싶다. 순례자들(이번 여행에 동행하는 사람들을 모두 순례자라고 부르기로 했다)은 준비 기간 동안 숙제처럼 사도행전을 읽었다. 사도행전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데 나는 감격한다. 예수의 이야기들은 믿음의 글이라면, 사도행전은 많은 부분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었다. 성경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는다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1945년 유대인들이 이천 년의 디아스포라 생활을 청산하고 팔레스틴 땅을 강제로 점령하여 자신들의 나라 이스라엘을 재건한 것은 오로지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성경은 사실적인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려고 애쓰는 <창조 과학회> 같은 단체는 나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 그들의 투철한 믿음에는 존경을 표하지만 좀 우습다고나 할까.

 

사도행전은 참 액티브하다. 마치 소설처럼 그것은 드라마틱하고 리얼하며 흥미진진하다. 특히 바울이 로마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는 장면은 압권이다.

수십 번 읽은 사도행전이지만 나는 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읽으려고 한다. 그렇게 사도행전을 읽고, 다음에는 시집을 펼치고, 수면안대를 하고 잠을 잘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음악을 들을 것이다. 이 땅을 떠난들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최대한 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신이 지혜와 성령을 주셔서 좋은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제이, 당신을 잊어버리고 신이 준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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