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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성지순례

3. 바울의 고향 다소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터키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리무진급 최신형 관광버스가 순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화장실과 침대시설까지 구비된 그야말로 최고급 버스였다. 열여덟 명의 순례자와 인천공항에서부터 동행한 가이드, 필립 선교사 가이드, 그리고 터키 현지 가이드와 기사 그렇게 스물 두 명이 타기에는 너무도 쾌적하고 넓은 버스였다. 순례자 중에서 부부 동반팀은 나란히 앉고 나처럼 솔로들은 이인용 좌석을 혼자 차지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나는 시집과 헤드폰과 노트북이 든 가방을, 마치 다정한 친구처럼 나의 옆자리에 모셔놓았다. 방에서는 혼자 잘 수 없지만 버스에서는 옆 사람과의 대화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거의 삼천 킬로를 달려야 하는 그 긴 시간 동안은 나만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길 수도 있고, 그 누구와 대화를 나누지 않을 자유도 있고, 혼자 사탕을 먹을 수도 있고, 눈물 섞인 기도를 할 수도 있고, 피곤하면 잘 수도 있고, 창밖을 볼 수도 있고, 시집을 읽을 수도 있고 노트북 작업을 할 수도 있고, 메모를 할 수도 있고, 헤드폰을 끼고 엠피쓰리를 들을 수도 있다니!

나는 버스에서의 시간을 사랑하기로 했다.

 

첫 여행지는 바울의 고향인 다소. 지금은 인구 2만 정도의 소읍인 타르수스가 이천 년 전 바울이 살던 다소였다. 때마침 흩뿌리는 찬비를 맞으며 <바울의 우물터>를 찾았다.

길은 돌바닥이었다. 유적지 옆에서 작은 수레를 끌고 터키 빵을 파는 사내를 만났다. 나는 조금은 시장한 순례자들을 위하여 빵을 사기로 했다. 이곳에서 나는 부자로 살기로 했다. 사고 싶은 것은 사고 먹고 싶은 것은 먹을 것이다. 사내에게 물었다. 얼마예요? 호떡의 서너 배는 됨직한 빵이 차가운 비를 피해 옹색하게 늘어져 있었다. 크고 검은 눈동자의 청년은 젖은 머리카락을 긁적였다. 얼마나 바가지를 씌우면 통할까, 하고 궁리하는 눈치였다.

나는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미소를 띠며 다시 다정하게 물었다. 얼마예요? 4. 내가 달러를 꺼내자 사내의 어깨가 살짝 들었다 내려갔다. 그가 말한 화폐의 단위는 터키 화폐였나. 사내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12개의 빵을 주었다. 분명 바가지였을 것이다. 미지근한 빵을 한 아름 안고 바울의 우물터에 모인 순례자들에게 돌렸다. ,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나는 바울 생가의 우물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다소에 있었던 오래된 우물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겠지. 그렇다 해도 그것은 감격적이었다. 그 옛날 바울은 이런 모습의 우물에서 물을 마셨겠구나, 하는 감동.

바울이 열 몇 개의 서신을 통해 나에게 준 수많은 은혜를 기억했다. 바울의 편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밑줄을 쳤던가. 그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명색이 작가인 나는 새삼 부끄러워지곤 했다. 유려한 문체, 이천년 동안 예수를 증거한 설득력, 그의 단단한 믿음. 가슴이 뻐근해졌다. 바울, 그대는 정말 실존인물이었구려.

 

<클레오파트라의 문>은 바울 생가 근처에 있었다. 돌 틈마다 잡초가 비어져 나온 낡고 퇴락한 문이었다. 초라하기 그지없는 허물어져가는 문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여자의 아름다움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나는 아름다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의 정의를 쉽게 내리지 못하겠지만 여자는 아니 모든 사람은 아름답고 싶지 않던가. 나만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나는 이번 여행에 입을 옷을 잔뜩 준비해 왔다. 매일 아침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인 것처럼 살고 싶었다. 나는 변할 수 없지만 내가 입는 옷 정도야 변하게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아침마다 옷을 골라 입으면서 새로운 유적지를 가는 거다. 어제와는 다른 내가 이국의 땅에서 내가 나에게 만족하는 거야. 나는, 또 한 사람의 클레오파트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순례자 중 한 사람이 인천공항에서 이륙직전, 팔을 다치는 바람에 예정에 없는 병원을 들르게 되었다. 낙후된 의료시설은 팔에 기브스를 하는 아주 쉬운 조치조차 병원에서 하지 못하고 더 큰 병원을 찾았고 그래도 시설이 미비해서 결국 세 번째 병원을 찾아서야 겨우 엑스레이를 찍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순례자들은 예정에 없는 터키병원을 구경했다. 어디서나 아픈 사람은 많다. 북적거리는 병원 로비를 어슬렁거리다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병원 옆 초라해보이는 가건물에 찻집이 있었다. 비닐 문 밖에 서너 명의 수염을 기른 터키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버스에 가득 앉아있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 담배.

나는 가방에 있는 담배가 떠올랐지만 이내 포기했다. 대신, 찻집에 들어갔다. 물론 나 혼자였다. 나는 너무 용감하다. 버스에서 기다리던 순례자들이 찻집에 들어가는 나를 모두 신기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어 이외에 바디 랭귀지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대화인 미소도.

맨 땅 그대로인 찻집은 참으로 소박하고 허술했다.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던 몇 명의 터키 남자들이 눈이 동그래져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커피 있어요?

갑자기 그들은 부산해졌다. 나는 찬찬히 실내를 둘러보았다. 한국의 포장마차와 다를 것이 없었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 몇 개. 울퉁불퉁한 땅바닥은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로 만질만질했다.

주인인 듯한 남자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였다.

나는 달러를 꺼냈다.

나는 분명히 터키 화폐로 1 리라, 라고 써 있는 가격표를 보았지만 못 본 척 했다. 나는 달러밖에 없었고, 분명 그들은 환율도 제대로 모를뿐더러 알더라도 마주 보면서 환율을 따지기에는 저 멋진 수염의 터키남자나 나나 고역일 것이 분명하므로.

뜻밖의 횡재에 기분이 좋아진 주인과 덩달아 기뻐하는 그들의 표정이 참으로 순진했다. 커피 맛을 보니 그냥 그랬다. 그래도 따뜻한 것이 몸속으로 들어가니 피로가 좀 풀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버스에서 무료하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커피 배달을 부탁했다. 대화는 참 간편했다. 버스를 가리키고 커피를 가리키고 숫자는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 끝이었으니까.

조금은 수줍어하면서 커피 몇 잔을 들고 버스에 오른 터키 남자를 보면서 순례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레지가 아주 멋지다.

단 돈 몇 달러에 심심하던 순례자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나는 부자다.

제이.

물질이 풍족하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조금은 슬픈 자각이었다. 이번 여행이 끝나면 나는 마치 무도회가 끝난 신데렐라처럼 허겁지겁 낡은 옷으로 갈아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아궁이 옆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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