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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터키 성지순례

2. 이스탄불행 비행기

by 이숙경(2011canna@hanmail.net) 2014. 12. 16.

이스탄불 행 비행기 안에서.

 

제이.

사람들이 신앙과 일상을 어떻게 접목시키는지 궁금하지 않나? 사도행전에서의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이천년이 지난 사도들의 후손인 우리들은 대체 어떻게 그 행적을 쫓아가야하는지 알고 싶지 않나? 매 순간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살갗에 내장에, 가슴에, 눈에, 입술에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 알고 싶지 않나? 그리스도인이 되어 한국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열이틀 동안 여행을 함께 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을 당신에게 고스란히 들려줄 것이다.

그것에 대한 나의 마음가짐도 있지.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노력한다는 것. 속으로 비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신앙과 별개인 약간의 음주나 흡연, 또 보편적인 한국의 교인들이 금기시하는 것들을 이곳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하다.

제이!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고, 그 은혜 때문에 엊그제도 그토록 괴로웠던 것이지.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을 근심하게 만들지는 말아야하는데 나는 늘 하나님을 근심케 한다. 나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워 할 거야.

 

지금 기내에 자리 잡은 순례자들을 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나에게는 모두 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번 여행에 아슬아슬하게 동참을 희망했을 때 접수를 받은 장로님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원이 홀수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독방을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떡하지요?

-실은 제가 부탁하려고 했어요. 혼자 방을 쓰고 싶다고요. 감사합니다.

뛸 듯이 기뻐하는 내 모습이 장로님에게는 좀 이상하게 비춰졌을 수도 있겠다.

나는 몇 년 전 하롱베이에서의 이틀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널찍한 호텔 방에 혼자 잠을 잤던 기억은 나로 하여금 여행을 가고 싶은 가장 중대한 이유로 만들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누워있기도 하고 가장 최소한의 옷만 걸치고 넓은 방을 거닐기도 하고 창문을 열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해 했던가! 일생 동안 혼자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그것이 슬픈 나의 로망이 되어버렸다. 혼자 잠들고 싶다, 혼자 울고 싶다, 혼자 눈뜨고 싶다...

쓸쓸하지 않았느냐는 도반들의 아침 인사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생애 최고의 밤이었어. 혼자 호텔방을 쓸 수 있다니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여행 내내 그냥 호텔방에 틀어박혀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꿈은 사라졌다. 한 순례자의 예기치 않은 사고로 인원이 짝수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과 한 방을 쓴다? 아는 사람과 한 방을 쓰더라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룸메이트가 누구냐에 따라서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아예 망쳐버릴 수 있는데 이를 어떡하지...

하지만 이내 내 마음을 다시 붙잡았다. 여행을 가게 해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누군가와 방을 같이 쓰게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 아닌가. 그럴 때 신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순종합니다. 기꺼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의 나는 교인들과 친교를 나누는데 심각한 알레르기가 있다. 하나님은 이번 기회에 그 알레르기를 치료해 주시려는가?

 

인천공항 로비에서 일행들을 만났을 때 나는 좀 당황했다. 어째서 그들은 다른 여행객들보다 더 큰소리로 떠들고 더 큰소리로 웃고 더 큰소리로 타인들의 시선을 끄는 것일까. 일테면 카트에 타고 밀어준다던지 하는 일곱 살 아이 같은 행동들. 어째서 그들은 다른 승객들보다 수다스럽고 명랑하기 짝이 없으며 쾌활한 것일까. 물론 좋게 말하면 천진하다. 하지만 그것은 예의 없음과 비슷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들이 신앙을 가짐으로 그렇게 철부지처럼 변해버린 것일까.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그들의 유치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과 두 좌석쯤 떨어져 앉아 있던 나는 가방 속에 있는 담배 생각만 간절했다. 그들과 떨어져 바람 부는 게이트 밖으로 나가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담배 한 대만 피웠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누르느라 고생 좀 했네.

 

나는 그들의 내면을 알고 싶다.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 무엇이 변했는지. 이 여행은 그들의 믿음에,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객관적인 시각으로, 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나는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나의 이 순례여행에 대하여 바울의 사적지를 따라간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두 번째 의미정도에 불과할 것 같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보고 싶다. 오래 동안 얼굴을 마주했던, 그러나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던, 안다고 하면 아는 사람이고, 모른다고 하면 모르는 사람일 수 있는 아주 모호한 관계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싶다. 실은 이 여행이야말로 교인들 간의 사이, 혹은 친밀감을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잣대가 아닐까.

 

곁에서 지켜보기에는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친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농담하고 웃고 신변에 대한 근황을 물어보기도 하고, 같이 과일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한순간도 조용히 있지 못하고 계속 대화(해야만)하고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지독한 친밀감?

그 친밀감에 대하여 나는 유독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것을 껍데기뿐인 친밀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야 물론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오랜 기간 동안 느껴 온 것이므로 그런 나의 생각에 대해 편협하다고 매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 교회를 사십년을 다녔고, 이번 여행에 동행한 사람들도 수십 년 동안 보아온 사람들이었다.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고 또 단서를 달아야 하겠지만. 또 단서를 달아야 할 것은 그들에게 나의 선입감은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 라는 나의 인생의 철칙에 의하여, 단 한 사람도 미운 털이 박힌 사람이 없다는 것, 그러므로 더욱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덧붙여야겠지.

 

나는 될 수 있으면 말을 하지 않으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혼자 앉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야말로 참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일행이 나 때문에 분위기를 망쳤다고 생각하게 만들기는 싫지만 그들 때문에 내가 원하는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나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고 즐겁게 떠들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잖은가.

혼자 얌전히 앉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황량하기 짝이 없는 111번 게이트 앞 소파에 앉아 삼사십 분 정도 나 역시 즐겁게 노트북 작업을 했다.

남의 눈치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 그것이 신앙적인지 아닌지는 꼭 판단해보아야겠지만.

 

열두 시간의 비행. 이제 한 시간 후면 도착이다.

자정 가까운 시각에 출발한 비행기는 밤에서 밤으로 날아갔다. 어두운 창밖은 마치 우주에 있는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창밖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도착하면 현지 시각은 새벽이라고 했다. 길고 긴 밤이다. 영혼의 어둔 밤을 견디어왔던 나로서는 친밀감까지 느껴진다.

기내에서 작고 귀여운 사이즈의 포도주 한 병 마셨다. 다른 순례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상관없었다. 술은 나에게 많은 위로를 준다. 한 병 더 마시려다가 도착 후의 일정이 빡빡한 것을 감안해서 참아야했다.

두 번의 식사를 거의 모두 먹어 치워버렸다. 한결 같이 맛있었다. 나는 무슨 음식이든 잘 먹으니까. 나에게 외국 여행은 음식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국에서보다 적응을 잘한다. 김치는 관상용 장식용에 불과할 뿐이고 밥 보다는 빵이나 치즈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외국 호텔에서의 아침 뷔페가 가장 나의 입맛에 맞았다.

내가 좋아하는 스크램블 에그와 얇게 자른 햄과 두텁게 자른 치즈와 무한 리필 되는 진한 커피, 과일을 넣은 요플레와 그리고 접시 그득하게 담아 먹는 바싹 튀긴 베이컨!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야채샐러드는 형식적으로 담고) 그렇다고 매일 그런 아침을 먹으려고 평생 호텔을 전전할 수는 없겠지.

다른 순례자들은 모두 고추장이나 김, 젓갈,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을 싸왔다고 했다. 나의 준비물은? 담배 세 갑. 나의 고상한 취미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있기를 바라면서 들고 왔다. 짐 속에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의 충족을 느꼈다.

사람들이 도착 준비를 하고 있다. 양치도 하고. 화장실도 들락거리고 있다. 나도 화장실에 가서 가그린을 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좀 부어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열 두 시간 가까이 있었더니 벌써 몸의 변화가 보인다.

집을 떠나고, 가족을 떠나고, 한국을 떠나고, 그 안에서 지지고 볶았던 모든 일들을 떠나고, 그리고 오롯이 나 혼자만 존재하면서 여행을 즐기고 싶다. 때문에 휴대폰을 로밍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아예 가져오지도 않았다. 터키나 그리스의 해변을 걸으면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의 소식을 알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한 때는 영원히 그들을 잊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지난 북미 여행에서는 휴대폰을 로밍해 가는 바람에 몸은 캐나다에서 뉴욕에서, 마음은 한국의 곳곳에서 방황해야만 했다. 이번에는 절대 그런 바보 같은 여행은 하지 않으리.

 

터키 시각 새벽 4시 반, 서울과의 시차가 7시간. 무려 11시간 30분 동안 비행기 안에 갇혀 있었다. 견디기는 힘들었지만 <감옥>의 맛을 느끼게 해 준 것은 감사했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터키 남부 아다나까지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대기 시간은 두 시간 반.

낯 선 곳에 도착했을 때의 설렘이 내 마음을 휘감았다. 그것은, 집을, 한국을 떠났다는 것에 대한 환희일 수도 있겠다. 거기에... 제이, 당신을 떠났다는 것에 대한 미묘한 감정도 숨어 있겠다. 제이. 이번 순례의 시간동안 최대한 당신을 잊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이천 년 전의 바울과, 정신분열 직전에 있는 것 같은 혼란스러운 나를 잊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나의 신과 제이를 놓고 저울질하는 나를 온전히 비워버리기 위해서만 그 시간을 보낼 것이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었다. .....

공항로비에서 현지 가이드를 만났다. 선교사이기도 한 가이드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이슬람교도가 98퍼센트라는 터키에서 그는 누구를 전도하는 것일까. 새삼 그의 인생여정이 궁금해졌다. 첫눈에도 그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엿다. 그의 신앙과 지식은 어떻게 접목되어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다나 공항으로 가기 위해 공항 로비 의자에 피곤한 몸을 뉘었다. 의자 두 칸에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있으려니 새삼 웃음이 나왔다. 마치 홈리스 같은 모습이다. 새벽 시간이어서 승객들은 많지 않았다. 허리며 다리가 욱신거리고 눈이 감겼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나고 말았다. 짬이 있으면 글을 써야하는 강박이 도졌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열고 무엇인가 쓰려고 하는 순간, 맞은편에 앉은 터키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료한 시간을 견디는 모습. 이럴 때는 또다시 무모함이 도지는 나는 면세점에서 산 초콜릿 공세에 나섰다. 나는 당신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는 표정으로 다가가서 초콜릿을 나누어 주었다. 터키 남자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보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어 초콜릿을 받으면서 이내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땡큐 정도는 알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 언어로 나에게 인사했다. 나 역시 한국말도 말했다. 터키 입국 기념 선물이에요.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한국의 위상은 대단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로비 상점들의 점원들이 나와서 손뼉을 치는 것이었다. ~한민국. ~한민국.

그들에게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나 똑같은 모습으로 보였을 텐데 어떻게 한국인인 것을 알아차렸는지 궁금했다.

 

나의 해외여행은 세 번째이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문우들과 동행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 넷이 함께 한 여행은 문우의 냄새보다는 동네 아줌마의 냄새가 더 강했다. 여행지에서 그녀들로부터 어떤 문학적 관점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면에서는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두 번째는 가족과 함께 했다. 서른 살이 되어가는 다 큰 아들과 열흘 남짓한 패키지여행을 했는데 아들이라기보다는 동반자에 가까웠다. 우리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배려했다. 참 좋은 경험이었다. 나는 엄마의 노릇을 철저하게 배재했고, 아들에게도 아들의 역할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한 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나에게는 여러 면에서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같이 잠을 자야 비로소 친해진다고 하는데 이 기회에 그들과 친해질지는 모르지만, 친해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그들의 속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반자라고 누군가 말했듯 마음 편한 동반자가 가장 좋은 동반자라면 그런 면에서 나는 마음이 편하다. 그들은 다름을 인정하는 똘레랑스를 가지고 있는 <지성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길고 긴 여정을 끝내고 다시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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