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 내가 나를 바라볼 때
묵상.
<원수들은 말합니다.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드렸는데 무슨 응답이 있느냐고, 기도하나 하지 않으나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그들은 묻습니다. 지푸라기만도 못한 우리 자신의 몰골을 확연히 보게 하여, 우리 같은 존재들이 드리는 기도가 과연 하나님께 올라가기나 할는지 좀처럼 믿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에 대고 속삭이거나 소리치는 영적 원수들에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무기는 하나님의 복된 말씁입니다.> 아멘!
나에게 필요한 말씀을 직빵으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지극히 양심적인 듯 하나 결국 가학적 자기 비판으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는 원수들의 술수라는 것을 잊지 말자. 나는 하나님이 너무도 이뻐하는 딸이다! 어리석고 실수투성이인 나를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잠잠히 바라보시는 그런 아버지가 바로 하나님이다!
사도행전 6장.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집사. 그 중에서 스데반은 은혜와 능력이 충만했고, 그리고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다고 적혀있다. 속에 있는 것들이 충만하니 얼굴도 천사의 모습으로 바뀌는 거 같다.
15절. 공의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 같았다는 것은, 설마 예쁘고 잘생기고 멋지고 날씬하고 그런 차원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근데 요즘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 비슷하게 말한다.
교회에서 만나는 어르신마다 나를 붙잡고 칭찬을 늘어놓으시는 것이다. 얼굴이 똥똥해진 것을 보고 <은혜 살>이 라고들 말씀하신다. 요즘처럼 마음이 편할 때가 일찌기 없었으므로 그 편한 상태가 좋은 표정이나 모습으로 표면에 나타나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세속에 나가면 내용이 틀려진다. 술살이 많이도 붙었구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안주살이라고 빡빡 우기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 더 넓게는 기독교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 같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얼굴에서 느끼는 분위기를 말함은 물론이다. 화가 나도 꾹 참고 표정관리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천사도 만들어진다. 웃으려고 노력하고, 친절하려고 노력하고,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용서하려고 노력하고. 세상에 노력없이 되는 일은 은혜로 받은 구원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 언니 전화. 웨스턴 유니언으로 한국 여행비 송금했다고. 대강 걸쳐입고 동네 은행으로 달려가 구좌 하나를 열어놓았다. 이번에 오는 언니 돈은 절대 손대지 말아야지, 결심에 결심을 거듭하면서 아예 딴 통장을 만들었다.
마악 노트북을 켜려는 순간, 남편이 불렀다.
"여기 좀 와 봐."
남편이 쇼핑 백 하나를 방구석에서 발견했는데 그 속에 잊었던 사진들이 한 무더기 들어있었던 것이다. 부모님 사진, 나 어릴 적 사진, 스무 살 때 사진, 증명사진, 행사 사진 등이 두서없이 섞여있는 사진을 보고 가슴이 울컥했다. 사진은 잔인하다. 그 때 그 시절 그 사연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가 지나간 시절의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지독하게 슬퍼진다.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얼굴을 가리고 싶어진다.
그것은 상처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시절은 나에게 고통을 주었다.
다섯 살 쯤 된 내가 언니와 함께 한복을 입고 마당에서 찍은 흑백사진도 보였다. 참으로 오래된 기억들이 솔솔 떠올랐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스무 살 이후의 사진은 불행해 보였다. 그 속에 찍혀있는 나의 모습은 웃고 있어도 우울해 보였고,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빠져 들어가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소망없이 사는 삶이 어떠한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일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조금은 안다.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옛날 기억을 더듬으면서 사진들을 넘겼다. 나는 다시는 젊어지고 싶지 않다. 스무살 어귀였던 나는 빨리 늙고 싶었고 그리고 빨리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나에게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쓴 뿌리들이, 그것도 매우 억센 쓴 뿌리들이 남아있었다. 그것들은 가끔 내 가슴을 후벼파고, 과거로 인하여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녁, 남편과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양송이 버섯, 양파, 마늘, 신김치에 파무침까지 곁들어 제법 풍성했다. 아무리 천천히 먹으려고 해도 그냥 술술 넘어가는 술.
결국 토요일 번개, 비 오는 주일 저녁 남편과, 그리고 어제 우연히 만난 시인과, 그리고 오늘 연짝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 반성. 양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것은 좀 문제가 된다. 반성.
밤 열시 다 되어 단골 선술집에서 수필 쓰는 문우 한 명 만남. 아일랜드 술과 분홍색 머플러, 그리고 흑사탕을 선물 받았다. 한 시간 가량 (술 없이) 문학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 나누었다. 글쓰기는 중년에서 노년에 즐기기에 최고이지 않나, 하는 이야기도.
글쓰기를 즐긴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를 즐긴다, 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하긴 요즘처럼 글쓰기에 부담 없으면 즐긴다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겠지만.
그녀의 차를 타고 스테레오 빵빵하게 울리는 음악 조금 듣다 집에 왔다. 모두 잠들었는지 조용하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발그레하다. 그녀가 준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거실에서 혼자 춤을 추었다. 살풀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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