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 실패는 일상적인 경험이다
늦잠 자서 묵상 기도 성경시간이 딜레이 되다. 새벽의 필만큼 멋지지 않다. 요즘 늦잠을 많이 잔다. 늦잠을 자게 되는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내 양심이 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새벽에 못 일어날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마음도 풀어져 있는 상태라고 느껴진다. 결국.... (술 때문에) 이번 주는 완전 엉망으로 시작하고 계속 엉망이다.
오늘은 교회 두 번 가는 날.
오전 기도회가 있다. 반성의 의미로 일찍 가서 기도 많이 하기로 했다. 부지런히 준비하고 교회로 뛰어갔다.
그런데 막 기도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선배 권사님이 부르신다.
"지금 뭐 할 일 있어요?"
"그냥 기도 좀 하려는데요."
"그럼 나 좀 도와줘요. 화분을 옮기려고 하거든."
"넵."
그리하여 미화위원인 권사님과 대형 화분을 낑낑거리면서 일층에서 지하로 운반.
맨날 머리 쓰고 기껏해야 손목 쓰는 일만 해봤지 육체적 노동은 거의 안 해본 터라 무지하게 힘들었지만 꾹 참았다. 두 번째 화분을 나르는데 또 다른 선배 언니가 나를 불러 세운다.
"대 걸레 가져다가 여기 좀 닦아라. 내가 흘렸는데 누가 미끄러지면 큰일이니까. 나 빨리 병원에 가야하거든."
"넵."
교회 봉사라면 첫째 둘째를 꼽는 왕언니는 카트 가득 무엇인가 싣고 병원 선교 가는 길이다.
나는 정말 난생 처음 화장실을 뒤져 대걸레를 찾아냈다. 그런데 정말 놀라웠다. 대걸레가 그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질질 끌면서 겨우 청소 자리로 갔다. 흥건하게 고인 물기를 닦는데 보기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미화위원 선배 권사님이 나를 보고 웃었다.
"기도하려는 사람 불러서 일 꽤 시키네."
"뭘요, 이것도 다 기도지요."
교회에 가면, 특히 주방에는 늘, 언제나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서 무엇인가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실은 그 분을 교회에서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분이 한 분 계신데, 언제인가 보니까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계셨다. 그 후로 계속 보았는데 그 분 거의 언제나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고 계셨다. 고약한 말버릇 때문에 약간 왕따를 당하는 분이었는데 변함없는 봉사의 모습을 보고 나는 마음을 바꾸기로 하였다. 욕도 잘하고 남 흉도 잘보고 시험주는데는 거의 일등을 도맡아 하는 분이지만 나름대로 봉사에는 열정적인 것이 나에게는 아이러니이기도 했지만 사람마다 좋은 점 나쁜 점이 공존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매일 철야하는 그 분에게 떡 한 봉지 사다 들이면 꽤 좋아하실 것 같다. 조만간 떡 선물할 결심이다.
교회에는 많은 일꾼이 필요하다.
성경에서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하였고, 나는 마리아의 기질을 타고 났다.
성경 공부, 기도, 말씀 듣기, 예배, 찬양을 좋아하는 나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좋은 것을 택한 것이 틀림없다. 결국 나의 사역도 그 쪽의 일을 많이 하게 된다.
하지만 일하는 마르다의 역할이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도실에서 기도하다 보면 부엌에서 도란거리면서 일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 나는 누구인지 모를 식당 봉사자를 위하여 아주 잠깐이지만 화살기도를 한다. 그분들이 기도를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도 시간을 빼 내어 누군가 남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다.
기도회 때 찬양이 참 좋았다.
<여기에 모인 우리>를 찬양드릴 때 또 다시 가슴이 울컥했다.
주님이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언제나 주 뜻안에 내가 있음을 아노라...
아멘, 주여. 내가 언제나 주 뜻안에 있음을 확신하게 해 주시옵소서.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 인도. 그런데 그 서두가 이러했다.
<개척교회 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포장마차 바로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포장마차에서 누군가 나오는데 딱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술 한 잔 하시고 나오는 길인 것 같습니다. 나는 반가워서 집사님~ 하고 반갑게 불렀지만 그 집사님은 안절부절이었습니다. 황당한 모습으로 적당하게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헤어진 그 집사님은 그 후로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술 한 잔 하고 목사를 만났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아니, 남자가 술 한 잔 할 수도 있는 것인데, 나는 그 집사님을 충분히 이해할 마음이 되어 있었습니다만 문제는 그 집사님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지요....>
으악!!
나는 놀랐다. 아침 내내 술 때문에 반성모드로 가고 있는 줄 어떻게 아시고 저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 솔직하게 말한다면 여선교회 기도회에서 술 이야기는 그다지 연관이 없는 소재이지 않던가! 남성들만 모이는 남성 집회라면 또 모르지만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로 서두를 꺼낼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또 목사님의 말씀이 굳세게 이어졌다.
<여러분. 실패는 일상적인 경험입니다. 성경에는 실수, 실패에 매우 적나라합니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선물까지 받아 챙긴 모세, 남의 아내를 범하고, 남편을 죽이기까지 한 다윗,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 전도하다 싸움박질이 일어나 다투고 갈라선 바울... 수도 없지요.
하나님은 수리공이고 정비공입니다. 우리의 허물을 고쳐주고, 싸매주고, 다시 리모델링 해줍니다.
이 세상에서 죄인들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까지) 오라고 하는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이사야 서를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우리는 뻔뻔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뻔뻔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 중 제일 뻔뻔스러운 사람이 바로 목사입니다....>
그래, 나는 더욱 뻔뻔해지련다. 요즘 내 소행이 비록 주홍빛 가까이 물들었다고 해도 어느 한계에 이르면 내 안의 성령이 나를 다그치고, 다시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을 믿으련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하나님이 좋고, 예수님이 좋으니!
마무리 찬송이 나를 감격하게 하였다. 214장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나는 나를 합리화시키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제껏 억눌리고 매일 하나님께 야단 맞는 듯한 나의 모습에서 뻔뻔하고 떳떳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싶다. 삶의 모습을 본다면 이전의 내가 더욱 견실하고 신실하고 그리고 마음과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지만 그것은 야단맞지 않으려고, 벌 받지 않으려고 가슴 두근거리면서 눈치 본 것이었다. 그래, 나는 좀 더 뻔뻔해 질 것이다.
기분이 좋아 집에 오는 길에 점포 정리하는 옷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두벌 샀다. 두 벌 다 만 얼마 하는, 아주 싼 가격이었지만 내 마음에는 동그라미 하나 더 붙여도 납득이 될 만한 좋은 옷이었다. 옷을 사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 샌들까지 옆구리가 터지는 바람에(수선해서 한 달 신었고, 엊그제 강력 본드로 붙여서 신었지만 기어이 또 뜯겨져 나갔다. 이제는 더 이상 재활용이 힘들게 된, 작년에 만원주고 산 그 샌들) 다시 만 얼마짜리 샌들을 하나 사서 신고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신발에서부터 마음까지 완전 변신에 성공했다.
두 시간 가량 집에서 쉬었다. 아들 저녁으로는 햄버거 세트. 어떻게 해서 햄버거 하나에 오 천원씩 하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좋아하니까. 여분으로 산 햄버거를 반으로 잘라서 남편과 내가 나누어 먹었다. 맛있었다. 햄버거라면 보기만 해도 끔찍해하던 남편이 어쩐 일인지 서운한 표정이다. 다음에 온전히 한 개를 사다 주겠다고 약속. 아들 책상에 프렌치프라이, 콜라, 햄버거를 올려놓으니 가슴이 뿌듯해진다. 아들이 와서 보면 신나라, 하겠지. 프렌치프라이는 나도 무척 좋아하지만 아예 포장을 뜯지도 않았다. 슬금슬금 빼먹다 보면 아들 줄 것이 없어지니까.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햄버거 세트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꼭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쓸데없는 가격 대비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 금액이면 닭이 한 마리네, 저 금액이면 불고기를 해먹을 텐데, 하는 지극히 아줌마스러운 계산방식 말이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하여 많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곰곰이 지난 역사를 더듬어보면 그렇게 정신이 자유롭지는 않아 보인다.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결핍도 사실 굉장한 데미지다. 나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껏 하나님이 나에게 인색했으니 앞으로는 좀 쓰시겠지. 펑펑.
나에게 누군가 용돈 이십 만 원쯤 주었으면 좋겠다. 마음대로 쓰라고 말이다. 들으셨죠, 하나님!
다시 교회에 가는 전철에서 <씨크릿>을 읽음. 꼴보기 싫어서 안 읽으려고 했지만 어쨌든 책이므로 자꾸 손이 가게 된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결론을 맺었다. 좋은 생각을 해라, 그게 뭐 나쁜 말인가. 당근 그렇게 살아야지!
교회에 일찍 가서 예배당에서 십여분 묵상. 호주에 가서 컨퍼런스 참석하고 온 전도사님의 열정적인 말씀.
차세대의 예배 형식은 아무래도 많이 바뀔 것 같은 조짐이 느껴졌다. 문화에 따라 적극적인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 좋은 변화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로서는 정통예배, 특히 가톨릭적인 예배 형식이 마음에 든다. 경건하고 조용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 말이다. 시끄럽고 아우성치고, 손뼉치는 분위기에는 아직도 접근하기 좀 꺼려지는 감이 있다.
성가대 연습 한 시간, 금쪽같은 시간이 흘러가고, 그 시간을 나는 충분히 누렸다. 늘 나를 태워주는 후배 권사님 차에서 아무 말 없이 합창 시디만 들었다. 클래식의 매력을 흠뻑 느낀 좋은 시간이었다. 집에 다 올 때쯤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사정없이 비가 쏟아졌다. 비, 비, 비...
그렇구나, 이번 주일 이렇게도 술을 많이 마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비 때문이었구나. 왜 비가 오면 사람들은 술 생각이 나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성찰이 담긴 논문이라도 있는지 검색 좀 해봐야겠다. 비와 술의 상관관계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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